“입히지 못한 옷이 끝내 남았다”… 시멘트로 굳은 의복, 소비의 마지막 장면을 남겼다
옷이 걸려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접히지도, 흘러내리지도 않습니다. 시멘트로 굳은 표면입니다. 전선과 금속, 사용을 마친 사물들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몸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옷. 입히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형태입니다. 박선우(Sino Park) 작가의 전시 《STONE COLLECTION 3 in Jeju》가 제주시 애월읍 양종훈 갤러리(구 메르 갤러리)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을 설명하기보다, 어떤 상태를 그대로 놓아두는 전시입니다. ■ 형태는 남고, 기능은 사라진 자리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의복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을 수 없습니다. 시멘트로 고정된 표면은 유연성을 없애고, 결합된 오브제들은 기능을 잃은 채 묶여 있습니다. 부드러워야 할 옷이 가장 단단한 물질로 바뀌는 순간, 익숙했던 기준이 어긋납니다. 입는다는 전제가 사라지면서 옷은 역할을 바꿉니다. 사용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사용 이후 남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기록 작품에 쓰인 재료들, 낯설지 않습니다. 문고리, 전선, 바퀴. 한 번 쓰이고 나면 버려지는 것들입니다. 전시는 그것을 ‘폐기’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시멘트와 결합된 물질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상태로 고정됩니다. 소비는 끝났지만, 물질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 남은 시간이 눈앞에 놓입니다. ■ 재활용이 아니라, 물질의 시간에 대한 개입 겉으로 보면 정크아트(Junk Art)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재활용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버려진 것을 다시 쓰기보다, 그 상태를 그대로 붙잡습니다. 흐르던 것을 잘라내듯 멈추고, 흩어지던 것을 한 지점에 고정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시간의 단면을 다룹니다. ■ 패션에서 구조로 이동하다 작가의 작업은 패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장르 경계 바깥에서 읽힙니다. 뉴욕 패션계에서 활동하는 재스퍼 드러먼드(Jasper Drummond) 패션기술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FIT) 교수는 이를 “의복을 공간적 구조로 확장한 작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옷은 신체를 위한 기능에서 벗어나 공간을 점유하는 구조가 됩니다. 형태는 남고 의미는 달라집니다. 패션과 조각, 설치의 경계가 겹치는 지점입니다. ■ ESG라는 언어 이전의 상태 이번 전시는 기후 위기와 ESG를 배경에 둡니다.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는 지속가능성을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그렇지만 그 언어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결과를 먼저 놓습니다. 버려진 물질과 시멘트가 결합된 상태, 그 자체가 하나의 응답으로 제시됩니다. 설명 없이도 무엇이 남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뉴욕에서 이어진 흐름, 제주에서 밀도를 더한다 제주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선우 작가는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SAIC)에서 패션을 전공했습니다. 현지 예술가들과 연대한 ‘뉴욕–제주 환경 예술 그룹’을 구성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대표작 〈Stone Jacket〉은 2025년 국정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런 흐름이 제주로 이어지면서 작업은 더 또렷해집니다. 도시에서 나온 물질과 자연 환경이 맞닿는 자리, 그 축적이 한 공간에 모입니다. 이번 전시는 5월 24일까지 양종훈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오픈식은 24일 오후 5시 미련됩니다.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전시 기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관입니다.
2026-04-18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