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의 경계] ④ 시내의 침묵… “그래프는 올라도 산업은 식어 있다”
면세 산업은 회복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프만 보면 팬데믹 이전의 활기를 되찾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 곡선 아래, 균열이 있습니다. 공항은 붐비지만 도심은 멈췄습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시내면세점이 여전히 제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회복 숫자는 늘고 있지만, 산업의 체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지훈의 ‘맥락’ 네 번째 편은, 그래프 너머의 산업 내부 를 들여다봅니다. ‘매출 회복’이 아닌 ‘체질 변화’ 가 왜 면세 산업의 진짜 분기점이 되는지를 짚습니다. ■ 공항 ‘급등’, 시내는 정체… 불균형 회복의 징후 14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 시내면세점 매출액은 약 7,366억 원, 지난해 같은 달(9,871억 원)보다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반면 출국장 면세점 매출은 같은 기간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공항점의 회복 속도가 시내점을 앞서고 있습니다. 시내면세점 방문객은 2024년 8월 90만 명 수준에서 올해 8월 약 96만 명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그러나 매출은 줄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는 객단가 하락, 즉 한 사람이 쓰는 돈이 줄었다는 뜻”이라며, “단순히 소비 둔화가 아니라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합니다. ■ 5년 새 10조 원 증발… 시내면세의 체력이 약해졌다 2019년 시내면세점 매출은 약 21조 원대, 2024년에는 약 11조 3,000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5년 만에 10조 원 가까이 증발했습니다. 공항점도 감소는 있었지만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시내 중심 구조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 셈입니다. 이후 일부 면세사는 시내점 구조조정에 나섰습니다. 현대면세점 동대문점의 폐점은 그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회복’보다 ‘축소’가 먼저 온 산업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 소비 패턴의 변화… ‘명품’에서 ‘생활형’으로, 다시 ‘단체형’으로 면세 산업의 핵심 고객이었던 다이궁(代工·보따리상)과 대형 단체관광객의 발길은 엔데믹 이후 한동안 끊겼습니다. 그 자리를 로컬 브랜드와 온라인 플랫폼이 채웠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부터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확대되면서 시장의 공기는 다시 바뀌고 있습니다. 업계는 “다이궁 중심의 과거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단체 수요가 일정 부분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면세점 전체 매출의 약 70%를 중국 관광객이 차지해온 구조는 여전히 산업의 근간을 좌우합니다. 결국 시내면세점은 ‘명품 중심 고객’에서 ‘체류형·경험형 소비자’로, 그리고 다시 ‘단체 관광 수요’까지 아우르는 복합 소비 구조로 변해야 합니다. ■ 흑자로 돌아선 롯데면세점, 전략적 후퇴의 결과인가 면세업계에서 보기 드문 흑자 실적도 나왔습니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2분기 매출 6,685억 원, 영업이익 65억 원을 기록하며 면세사업 부문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실적 반등만이 아닌, 전략적인 구조조정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롯데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에서 철수한 뒤 임대료 부담을 줄이고, 시내점 효율화에 집중했습니다. 매출은 줄었지만 수익성은 개선됐습니다. ‘규모의 성장’보다 ‘체질의 변화’를 택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비용 구조를 철저히 손본 것이 산업의 새로운 생존 모델로 꼽힙니다. ■ 수도권과 제주, 두 얼굴의 시내면세 제주는 시내면세점 중심의 구조가 뚜렷한 지역입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제주의 시내면세점 매출은 2024년 약 451억 원에서 2025년 8월 기준 62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전년 대비 매출 회복은 있었지만, 방문객 증가 대비 객단가 하락이 분명합니다. 제주 한 면세점 관계자는 “관광객이 늘어도 명품 소비가 적은 구조 안에서는 매출이 늘어도 남는 게 없다”며, “이제는 소비 구조와 가치 설계부터 바꿔야 할 때”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공항이 하나인 섬이라는 입지, 외국인 입국의 최전선이라는 특성, 그리고 내국인·외국인 매출 비중이 공존하는 구조 때문입니다. 업계는 “제주는 면세 산업의 ‘바로미터’”라며, “매출 회복에서 나아간, 관광 구조와 소비 행태의 변화를 동시에 검증할 수 있는 실험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 “매출이 아닌 체질을 바꿔야 한다” 지금 면세 산업이 마주한 과제는 명확합니다. 이제는 비용 구조나 판촉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수익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입니다. 브랜드와 송객, 공항 임대와 할인 경쟁으로 얽힌 오래된 틀을 풀지 않는다면, 그래프의 회복은 숫자뿐인 회복으로 끝날 것입니다. 적자가 아닌 기반을 바꿔야 합니다. 시내면세점이 살아야 공항점도 지속 가능합니다. 관광·숙박·로컬 콘텐츠와 결합된 경험형 면세점이 다음 10년의 변곡점을 만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다음 ⑤편에서는 ‘면세 없는 면세’, 가격 경쟁을 넘어 이야기와 경험으로 소비를 이끄는 새로운 면세 산업의 패러다임 을 진단합니다.
2025-10-14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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