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가격을 깎았고, 한국은 겨울을 묶었다
교토의 숙박비 하락은 남의 얘기도, 전망도 아닙니다. 22일 기준으로 검색해도 교토 시내 중심에서 10만 원 아래 숙소가 다수 노출됩니다. 일부는 5만~7만 원대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렇다고 외곽도, 비인기 지역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형성된 시장 가격입니다. 외교의 충격파는 통계보다 늦지 않았고,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가격으로 번역됐습니다. 앞서 일본 TBS뉴스 등 현지 매체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교토 시내 중심부 호텔의 1박 요금이 1만 엔(한화 약 9만 5,000원) 이하인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숙소는 3,000엔대(약 2만 8,000원)까지 가격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글맵 기준으로도 과거에는 찾기 어려웠던 저가 객실이 도심 곳곳에 등장했고, 이런 상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시조 가와라마치에서 벌어진 가격 조정, 변명할 여지가 없다 교토 시조 가와라마치(四条河原町)는 시조도리와 가와라마치도리가 만나는 교차점을 축으로 형성된 교토 최대 번화가입니다. 한큐 가와라마치역과 주요 버스 노선이 집결한 교통의 중심지이며, 쇼핑·식사·숙박이 동시에 몰리는 핵심 상권입니다. 기온과도 인접해 관광 동선의 출발점으로 기능합니다. 이 지역의 숙박 가격은 교토 관광 수요의 체온계로도 불립니다. 이곳에서 10만 원 아래 객실이 다수 노출된다는 것은, 변두리가 아니라 핵심부터 가격 조정이 시작됐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 외교 변수는 관광에서 가장 먼저 ‘가격’을 친다 이번 하락의 배경으로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지목됩니다. 중·일 관계 경색 이후 중국 내 일본 여행 자제 기류가 형성됐고, 항공 노선 운휴와 단체 수요 축소가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한 인바운드 업계 관계자는 “단체 비중이 큰 도시는 버틸 시간이 길지 않다”며 “공실이 생기는 순간, 기다림 대신 가격 조정이 먼저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관광은 감정의 산업이 아니라 재고의 산업이라는 설명입니다. ■ 같은 시간, 한국에선 ‘가격’이 아니라 ‘경험’이 움직였다 교토의 가격표가 내려갈 때, 한국의 겨울 여행 수요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전 세계 숙박·교통·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 집계에 따르면 이달 초중순 겨울 투어·액티비티 상품 트래픽은 전월 대비 약 29% 증가했습니다. 대만·싱가포르·홍콩·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자국에서 눈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이 수요를 이끌었고, 국내 스키 상품은 예약 전환율이 높아 실제 방문으로 이어진 비율이 두드러졌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할인 효과가 아니라 계절적 결핍을 채우는 경험 소비가 작동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 강원은 ‘눈의 밀도’, 제주는 ‘풍경의 대비’라는 다른 해법 강원은 스키와 설경을 중심으로 숙박형 상품을 키웠고, 체류가 늘며 이른바 ‘N박 투어’가 확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제주는 다른 조합을 갖고 있습니다. 한라산 설경과 오름의 겨울, 바다와 눈이 동시에 존재하는 대비입니다. 지역 관광 기획에 참여해 온 전문가는 “제주의 겨울 경쟁력은 눈의 양이 아니라 동선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며 “공항 도착 이후 48시간 안에 설경이나 트레킹·실내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체류형 상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눈이 있느냐보다, 움직임이 설계돼 있느냐가 선택을 가른다는 진단입니다. 최근 기후 변수 역시 콘텐츠 구성에 따라 충분히 흡수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 제주의 외국인 시장은 ‘회복 중’…그래서 더 위험하다 제주의 외국인 관광은 이미 반등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올해 누적 기준 외국인 방문객은 200만 명을 넘어서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대만·동남아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한 개별 여행 수요가 늘며, 성수기 외 지역에서도 외국인 유입이 확인됩니다. 동시에 제주~후쿠오카 직항 취항 등 국제 접근성을 넓히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책 방향만 놓고 보면, 제주는 이미 “외국인이 들어오게 만드는 조건”을 확장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항공·관광 분야 한 관계자는 “노선이 늘어나는 순간부터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며 “접근성은 수요를 데려오지만, 체류 설계가 없으면 그 수요는 곧바로 가격 경쟁으로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외국인 숫자가 늘수록 구조적인 취약점도 함께 확대된다는 의미입니다. ■ 전문가들이 본 교토 사례의 본질은 ‘의존도’ 항공·여행 산업 관계자들은 교토 사례를 외교 리스크의 실물화로 규정합니다. 한 전문가는 “특정 국적 의존도가 높을수록 정치·외교 변수에 노출되는 순간 가격 방어선이 흐려진다”며 “회복을 기다리는 사이 할인 경쟁이 먼저 시작되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교토의 경우 일본 관광 전체가 꺾인 게 아니라, 구성의 취약함이 가격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이런 하락은 단기 반등보다 구조 점검을 요구하는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 교토의 오늘은, 제주에 보내는 ‘경고문’ 시조 가와라마치의 5만~9만 원대 객실은 싸게 자는 팁이 아닙니다. 정책과 구조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관광이 어떻게 먼저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실물 사례입니다. 제주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외국인 수요가 늘어나는 국면에서 가격으로 버틸 것인지, 아니면 계절·체류·경험을 묶어 구조를 만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교토는 전자를 택한 결과를, 오늘의 가격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국적사 관계자는 “이번 겨울을 기점으로 한 인바운드 경쟁은 관광객 수가 전부가 아니다”며 “변수가 흔들릴 때 무엇이 먼저 무너지느냐가 관건이다. 교토는 이미 답을 낸 것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제주는 아직 선택할 시간이 ‘있다고 믿고’ 있다”며 “얼마나 정확히 선택하고, 실제로 실행하느냐가 결국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25-12-2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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