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제주] ③ 체류가 ‘일’이 되고, 일은 ‘관계’가 된다
체류는 이제 ‘공간’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이 머물고, 일이 들어오고, 관계가 남습니다. 1편에서 리조트는 ‘살 수 있는 공간’을, 2편에서 도심 속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질문은 바뀝니다. “그 머무름이 지역 안에서 무엇을 남기는가.” 제주 남서쪽 끝, 대정읍. 이 물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실험하는 곳이 있습니다. ‘촌피스’ 입니다. ■ 촌피스는 공간이 아니라 ‘연결 장치’ 촌피스는 숙소가 아닙니다. 코워킹 스페이스도 아니고, 관광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외부의 일이 지역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 일이 지역과 연결되고, 남고, 확장되도록 설계된 협업 구조입니다. 관광은 사람이 이동합니다. 워케이션은 일이 함께 움직입니다. 촌피스는 그 일이 지역과 관계를 맺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촌피스 운영 간사를 맡고 있는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는 “체류를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체류가 지역 안에서 어떤 생산으로 이어지느냐가 목적”이라며 “관광도, 워케이션도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해졌다고 느꼈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촌피스는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무엇을 같이 만들었느냐’를 묻습니다. ■ 왜 ‘촌피스’가 필요했나 제주에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체류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안에 남는 구조는 많지 않았습니다. 외부 인력은 와서 일하고 떠났고, 소비는 남겼지만 관계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 산업이 활기를 띠는 것도 잠시였고, 연결되지 못한 순환과 단절이 반복됐습니다. 정태준 촌피스 단장은 “체류가 반복돼도 지역에는 구조가 남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며 “촌피스는 이 단절을 끊어보자는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체류를 소비로 끝내지 않고, 지역의 일과 연결해 공동 생산으로 바꾸는 실험이 ‘촌피스’입니다. ■ 촌피스는 이렇게 작동한다 촌피스는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움직입니다. 외부 기업·기획자·연구팀이 제주에 들어옵니다. 지역의 농업·관광·콘텐츠·공예·청년 조직과 연결됩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합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만듭니다. 그 결과는 보고서가 아니라 제품, 브랜드, 콘텐츠, 프로그램, 연구, 행사 같은 지역 자산으로 남습니다. 김나솔 대표는 “촌피스는 플랫폼이 아니라 과정”이라며 “중간에서 매칭하고, 조율하고, 설계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실제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나 촌피스를 거친 프로젝트들은 하나같이 ‘작지만 연결된 결과’를 남깁니다. 지역 농산물 브랜드 리뉴얼, 제주 마을을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 지역 청년과 외부 디자이너의 협업 상품, 마을 공간을 활용한 팝업 전시와 워크숍까지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참여자는 방문객이 아니라 공동 제작자가 됩니다. 한 참가자는 “제주에 와서 쉬다 간 게 아니라, 제주 안에서 같이 만들고 갔다는 느낌이 처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 촌피스가 겨냥하는 진짜 변화 촌피스가 겨냥하는 것은 관광의 업그레이드가 아닙니다. 지역 경제 구조의 재설계입니다. 외부 인력은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를 가져오고, 지역은 자원과 공간, 관계를 제공합니다. 그 결합이 새로운 산업,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냅니다. 김나솔 대표는 “촌피스는 지역을 소비지가 아니라 생산지로 다시 정의하는 실험”이라며 “지역이 스스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 정책과 만나는 지점 제주도정이 추진하는 체류관광·워케이션 정책과 촌피스의 방향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촌피스는 정책보다 한 발 먼저 구조를 실험합니다. 행정이 숫자를 만들 때, 촌피스는 관계를 만듭니다. 정태준 단장은 “정책은 제도를 만들고, 촌피스는 그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현장에서 실험한다”며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습니다. ■ 체류의 다음 질문 제주의 질문은 이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왔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남았느냐입니다. 체류는 공간에서 시작되지만, 변화는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촌피스는 이 관계를 설계하는 실험입니다. 작고 느리지만, 지역의 작동 방식을 실제로 바꾸는 첫 구조입니다.
2026-01-1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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