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기록 지웠는데 아무도 못 걸렀다… 제주 사건이 흔든 ‘수사 안전장치’
제주에서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당사자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사건을 끝내고 전산 기록까지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록 삭제를 걸러낼 상급자의 사전 검증 절차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장미란 씨 실종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주변 CCTV 118대의 영상은 경찰이 제때 확보하지 않으면서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제주자치도에 영상 열람을 요청한 것은 최초 신고 96일 뒤였습니다. 해당 경찰관이 처리한 실종 사건은 모두 298건입니다. 경찰이 전수점검과 관리·감독 체계 감찰에 들어간 가운데 논쟁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 수사를 누가, 어떻게 다시 확인할 것인지로 번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민주당이 안전장치로 제시한 바디캠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이 수사 자체가 누락되는 상황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제주 사건이 보완수사권이 존재하는 현행 체계에서 발생했다며 직접적인 연관성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된 실종 사건 허위 종결 파문이 경찰 내부통제를 넘어 수사기관 사이의 견제 문제로 옮겨붙었습니다. ■ “그냥 지우면 그만이던데요”… 답변 “지금 시스템에는 없다”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경찰청 관계자를 상대로 장 씨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고 기록까지 사라질 수 있었는지를 따져 물었습니다. 장 씨 가족은 지난 5월 15일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담당 경찰관 A 경장은 장 씨와 실제 통화하거나 대면해 안전을 확인하지 않고도 연락이 닿은 것처럼 처리해 사건을 종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현장 수색은 중단됐고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있던 장 씨의 기록도 삭제됐습니다. 한 의원이 집중적으로 물은 것은 삭제가 가능했던 구조였습니다. “그냥 지우면 그만이던데요, 담당자가. 그렇죠?” 담당자가 기록을 입력하거나 삭제할 때 상급자의 검증을 거치는 과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병찬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은 “지금 시스템에는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경찰은 팀장이나 과장이 사후 확인할 수 있는 체계는 있었지만 A 경장이 실종 시스템에서 기록을 임의로 삭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담당자가 기록을 삭제하면 사후 점검망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구조입니다. ■ 298건 다시 연 경찰… 여야 모두 ‘사건 암장’ 질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여야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이 허위로 처리된 경위를 추궁했고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허위 종결과 내부통제 실패”라고 지적했습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경찰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 수사권을 둘러싸고 제기돼 온 ‘사건 암장’ 우려를 제주 사건과 연결했습니다. 이에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민 여러분께 우려를 끼쳐 드린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국회 답변 과정에서 A 경장이 처리한 실종 사건 규모도 공개됐습니다. A 경장이 처리한 실종 사건은 298건으로, 경찰은 전체 처리 과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298건 모두가 허위 종결된 것은 아닙니다. 경찰은 현재 확인된 사례 외에 부적절하게 처리된 사건이 더 있는지 전수점검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감찰도 별도로 시작됐습니다. A 경장 개인의 사건 처리뿐 아니라 당시 지휘와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들여다볼 방침입니다. ■ 처음 신고 때 남아 있던 CCTV 118대… 경찰이 찾은 건 96일 뒤 허위 종결 이후 사라진 것은 전산 기록만이 아니었습니다.한 의원이 제주자치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 씨가 사라진 한림읍 일대에는 방범·교통 CCTV 118대가 있었습니다. 가족이 처음 실종 신고를 했을 당시에는 장 씨 실종 전후의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확보하지 않은 사이 보존기간이 지나 영상은 삭제됐습니다. 경찰이 제주도에 영상 열람을 요청한 것은 8월 19일입니다. 최초 신고로부터 96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장 씨로 추정되는 시신은 24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신원과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감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초 신고 당시 수색이 계속됐다면 장 씨를 구조할 수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 확보할 수 있었던 CCTV 영상은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모든 현장 바디캠’과 법에 적힌 범위 달라 제주 사건을 계기로 한 의원이 겨냥한 것은 민주당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의 안전장치로 제시해 온 범죄현장 영상녹화와 KICS 등재입니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범죄 현장에 출동할 때 바디캠 등을 활용해 영상을 촬영하고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를 KICS에 담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개정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영상녹화 대상은 모든 범죄현장이 아닙니다. 제220조의2는 사법경찰관이 압수·수색·검증을 실시하는 경우 강제수사 개시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영상녹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디캠과 같은 신체 착용형 촬영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영상은 수사기록과 KICS에 남도록 했지만, 신고 접수 단계부터 모든 사건을 의무적으로 촬영하도록 하진 않았습니다. 장 씨 사건처럼 수사 초기에 사건이 허위로 종결된다면 압수·수색·검증과 영상녹화 단계까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찰이 실제 수사에 착수해야 영상도, KICS에 남길 수사기록도 만들어지는 구조입니다. ■ 194억 원 들여 바디캠 1만 4,000대… 형소법 개정과 별개 경찰이 추진하고 있는 바디캠 사업의 출발점도 다릅니다. 경찰청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모두 194억 8,600만 원을 투입해 지역경찰과 교통경찰, 기동순찰대 등 현장 경찰관에게 바디캠 1만 4,000대를 보급하고 무선통신망과 영상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경찰 활동을 촬영해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공무집행방해나 주요 사건의 영상을 증거자료로 확보하는 것이 사업의 주된 목적입니다. 경찰청은 이 사업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계기로 추진됐으며 검찰 보완수사를 금지한 형사소송법 개정과는 별개의 사업이라는 입장입니다. 현재 추진 중인 바디캠 사업과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른 영상녹화·KICS 등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계할지도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행 시점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검사의 보완수사는 오는 10월 2일부터 금지됩니다. 압수·수색·검증 과정의 영상녹화 의무는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됩니다. ■ 한동훈 “견제와 균형 필요”… 한성숙 “지금도 보완수사권 있어” 한 의원은 이번 사건을 A 경장 개인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관 한 명이 잘못 판단하거나 사건을 누락하더라도 다른 단계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검찰 보완수사가 그 견제 장치 가운데 하나라는 논리입니다. 한 의원은 한 총리에게 “이렇게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총리는 제주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짚으며 “지금은 보완수사권이 있는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현행 체계에서도 제주 사건이 발생한 만큼 이번 사안을 보완수사권 폐지와 곧바로 연결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한 총리는 검찰의 문제 역시 형사사법체계 개편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경찰의 실종 사건 처리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에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실종 사건 전수조사를 지시했습니다. 부당·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처벌하고 사건 처리와 종결 담당자를 분리하는 등 관리체계를 바로잡으라고 주문했습니다.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변경 이력을 남기고 상급기관에 자동 통보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내부 검토를 거쳐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2026-08-25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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