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더 주겠다? 못 믿겠다”… 삼성 노사, 결국 ‘성과 공식’에서 깨졌다
“성과가 나도 결국 회사 마음대로 아니냐.” 삼성전자 노조가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은 건 성과급 액수보다 계산 방식이었습니다. 이틀 넘게 이어진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은 13일 새벽 끝내 결렬됐습니다. 시장은 협상 결과보다, 오는 21일 예고된 총파업이 실제 현실이 될지 그 가능성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성과급 분쟁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회사가 실적에 따라 “더 줄 수도 있다”는 구조를 유지할지, 아니면 아예 고정된 보상 체계를 만들 것인지. 노사는 그 지점에서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현행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제도화하자고 요구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는 13~14% 수준까지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전해졌지만 핵심은 같았습니다. 실적이 나면 회사 판단이 아니라 일정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보상이 연결돼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존 EVA(경제적부가가치) 기반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업황과 경영 상황에 따라 보상 구조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마지막까지 충돌한 건 돈의 규모보다 ‘누가 기준을 정하느냐’였습니다. ■ “SK는 되는데 왜 삼성은 안 되나”… 달라진 내부 분위기 이번 갈등 뒤에는 SK하이닉스 충격도 깔려 있습니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 앞서간 SK하이닉스는 최근 업계 최고 수준 성과급과 보상 체계를 내놨습니다. 그 뒤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도 빠르게 흔들렸습니다. 특히 DS(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실적은 같이 만들었는데 보상 체계는 여전히 회사 재량 아니냐”는 불만이 누적됐습니다. 노조 요구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됩니다. 올해 성과급 몇 퍼센트를 더 받느냐보다, 앞으로도 실적이 나면 자동으로 따라오게 만들자는 요구였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부담스럽습니다.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하기 시작하면, 반도체 업황이 꺾였을 때 다시 기준을 낮추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급이 사실상 준고정 비용처럼 굳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마지막까지 제도화 요구에 선을 그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 “4만 1천 명 참여 의사”… 삼성 밖까지 흔들 수 있어 노조는 현재 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이 4만 1,000명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5만 명 참여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그만큼 실제 총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영향은 삼성전자 내부에만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삼성전자 생산라인은 국내 반도체 공급망 한가운데 연결돼 있습니다. 수많은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생산 일정과 직접 맞물려 있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삼성 메모리 공급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고객사들은 공급 차질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파업 장기화 시 영업이익 감소 규모가 40조 원을 넘길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제 생산라인 차질 규모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반도체 공정 특성상 자동화 비중이 높고, 일부 핵심 라인은 제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시장 분위기는 무겁습니다. ‘무노조 경영’으로 상징됐던 삼성전자에서 대규모 장기 파업이 반복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예전의 삼성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정부도 압박 수위 높여… 긴급조정권 카드까지 거론 정부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3일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추가 협상을 촉구했습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긴급조정권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됩니다. 긴급조정권은 국민경제에 중대한 피해 우려가 있을 경우 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발동되면 30일 동안 쟁의행위가 중단되고 중노위 중재 절차가 강제 진행됩니다. 다만 정부는 아직 공식 검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노동계 반발 가능성이 큰 데다, 정부 개입이 갈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부담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법원 판단 역시 변수입니다. 수원지법은 삼성전자 측이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를 총파업 예정일 하루 전인 20일까지 내놓을 예정입니다. 가처분 결과에 따라 파업 범위와 강도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변수는 내부 확산입니다. 그동안 반도체(DS) 부문 중심으로 보였던 성과급 불만이 최근에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으로도 번지는 분위기입니다. 2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DX부문에 대한 별도 보상안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사측 대응을 비판했습니다. 이번 갈등이 특정 사업부 성과급 논란을 넘어, 삼성 내부 전반의 보상 체계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 지금 재계가 보는 건 삼성 파업이 아니다 재계가 이번 사태를 숨죽여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전자 사례가 앞으로 국내 대기업 성과급 협상의 기준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 IT·통신·플랫폼 업계에서는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보장하라”는 요구가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LG유플러스와 카카오 등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성과급이 더 이상 회사 재량에 따라 조정되는 보상이 아니라, 실적과 함께 자동으로 따라오는 권리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성과를 어디까지 공식처럼 묶을 것인지, 지금 재계 전체가 그 계산식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2026-05-14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