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제주] ③ 관광은 반등했는데, 정책은 제자리… ‘속 빈 성과’가 만든 위기
제주 관광은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뚜렷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 ‘11월 제주지역 실물경제 동향’은 소비 부진이 완화되고 취업자 증가세가 이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10월 한 달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33만 6,259명, 전년 대비 12% 늘었습니다. 내국인(9.8%)·외국인(24.9%) 모두 상승한 결과였습니다 9월까지 누적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17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2025~26년 동계 항공 스케줄에서 제주 도착 항공편이 월평균 573편(8.9%) 늘어난 점도, 시장 확대에 회복세를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속기획 [김지훈의 ‘맥락’] 마지막 편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이처럼 “관광은 반등했는데, 왜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일까?” 지금 호황은 분명 반가운 흐름이지만, 제주가 말하는 ‘전환’의 조건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관광객 늘었는데… 지역 소비는 여전히 느리다 관광객 증가는 또렷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동향은 “소비 부진이 완만하게 개선”됐다고 해석합니다. 이 표현은 사실상 관광객 증가와 소비가 정비례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현장에서 나타난 흐름을 보면 항공은 일반운임·고운임 구간이 먼저 회복해 항공사 실적이 개선됐습니다. 숙박은 4성·5성급 고급업태가 ADR·점유율을 견인했지만, 중저가 업태는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즉, 회복된 영역이 지출능력이 높은 상위 시장에 집중된 편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지역 소비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외식, 레저, 체험, 교통처럼 지역경제와 직결되는 소비 항목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10월 ‘호황’이 점(點)처럼 반짝이는 게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는 늘었지만, 정작 지역경제가 체감하는 회복은 절반 정도에 그치는 이유입니다. ■ ‘나우다’, 아직 성과가 아니... 행정의 조급한 성과주의가 만든 공백 제주관광공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업 중 하나가 디지털 관광증 ‘나우다(NOWDA)’입니다. NFT 기반 기술, 공영관광지 할인, 미션형 멤버십 등 구조만 보면 ‘새로운 관광 플랫폼’을 표방한 사업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건 가입자 수나 제휴업체 정도입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지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우다’가 관광객 소비 패턴을 바꿨다는 데이터는 아직 없고, 체류 기간 증가·방문 동선 변화 등 정량적 변화 근거는 찾지 못합니다. 한국은행 실물경제 동향·관광객 입도 통계 모두 나우다 효과 언급은 없습니다. 관광공사도 “효과 측정은 향후 검토”라고 밝히는 상황입니다. 시범단계를 거치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수순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나우다’는 아직 정책적 실체가 입증되지 않은 초기 실험 단계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행정은 이를 이미 ‘전환의 성과’로 포장하는 모습입니다. 사업이 먼저 등장하고, 데이터는 나중에 붙는 방식. 성공하면 공로를 말하고, 실패하면 자칫 ‘아니면 말고’로 끝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 사이에서 정책 순서는 흐트러지고, 실효성 검증은 뒷순위로 밀려날 우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외국인 폭증했지만… 높은 중화권 의존도, 위험 키워 9월까지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174만 명 중 85.2%가 중화권입니다. 이 정도면 시장 구조에서 ‘경고등’이 켜져야 합니다. 중국·대만·홍콩 수요는 △외교 갈등, △입국 정책 변화, △항공 공급 상황 등 외부 변수에 가장 민감한 시장입니다. 하지만 제주 정책에서 중화권 편중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대안·전략·전환 시나리오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홍보 확대’나 ‘현지 마케팅 강화’처럼 기존 접근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관광객 수 증가에 가려져 있지만, 지금 제주가 가장 빨리 손대야 하는 지점이 바로 시장 위험의 분산입니다. 관광산업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한 시장에 대 의존도’라는 사실을 코로나 기간 내내 경험했음에도 변한게 없습니다. ■ “숫자가 아니라 구조 바꿀 때” 문제는 결국 하나로 수렴됩니다. 제주는 지금 회복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전환의 시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광객 수 중심의 성과주의, △실험적 플랫폼 사업의 과도한 포장, △중화권 편중이라는 구조적 위험, △지역 소비 회복률 정체, △산업 간 격차 심화.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관광객 수만 늘리고 여기에 희비가 엇갈리는 방식은 또다시 외부 변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 “효과 없는 사업은 빨리 판단해야” 관광정책 부문의 한 전문가는 “플랫폼이든 조례든 효과 검증이 먼저이고 홍보는 나중이다”라며 “‘나우다’ 같은 사업은 1년 내 평가 기준을 제대로 세우고, 성과가 없으면 접거나 전면 재설계하는 전제가 깔렸어야 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지금처럼 성과를 먼저 만들고 데이터를 뒤에 끼워 맞추는 방식은 정책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광객이 늘었다는 말은 현장에서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라며 “소비 전환, 체류 확장, 이동 동선 개선처럼 산업의 구조를 직접 바꾸는 정책이 나와야 시장이 움직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관광은 이미 돌아왔지만, 정책은 여전히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지금 제주가 마주한 진짜 과제는 더 많은 관광객 유치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회복을 구조적 전환으로 연결할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번 호황 역시 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계절로 끝날지 모릅니다
2025-11-2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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