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밭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라, 내 손 닿기도 전에 떨어질라” 제주가 꺼낸 ‘농케이션’… 사라지는 일손의 벽을 흔들까
제주 감귤은 제철에 들어섰지만, 수확할 사람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일정은 자꾸 뒤로 밀리고, 농가의 하루는 해가 짧아진 것과는 반대로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서귀포 감귤밭에서는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도시 직장인들이 장갑을 끼고 밭으로 들어와 감귤을 따고, 저녁엔 지역화폐로 밥을 사 먹으며 그날 흘린 땀만큼의 소비가 다시 제주 안에서 순환했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존재했던 ‘체류형 농촌 봉사’가 처음으로 실제 현장에서 형태를 갖춘 사례였습니다. 농협 제주본부는 23일, 농협유통 임직원 20명이 지난 20~21일 서귀포농협과 자매결연 13주년을 맞아 취약 농가의 감귤 수확을 돕고, 제주도의 ‘탐나는 농케이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수확철마다 반복되는 인력난 속에서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방식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농케이션’은 농촌 체류와 봉사를 결합한 방식으로, 농사일·지역 활동에 참여하면서 제주에서 일정 기간 머무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존 워케이션의 개념을 농촌에 맞게 확장해, 일과 휴식이 함께 이뤄지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 “사람이 없어, 나무에 붙은 열매가 그대로 남아 있을 지경” 서귀포 일대 노지감귤밭은 지금 인력난이 가장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예년보다 작업 일정은 늦어졌고, 계절근로자 수급은 어느 해보다 불안합니다. 취약 농가에는 이 상황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이틀간 투입된 농협유통 직원들은 감귤 수확부터 선별, 박스 작업까지 농가가 가장 힘들어하는 공정을 정확히 메웠습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형태의 일손 지원일 수 있습니다. 이번 참여가 기존 방식과 분명히 갈라지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 “봉사가 끝나자마자 탐나는전이 손에 들어왔다”… 제주가 설계한 순환의 고리 탐나는 농케이션의 핵심은 ‘당일 지급’입니다. 참가자들은 봉사를 마치는 즉시 목욕비·식비 명목의 지역화폐를 받습니다. 그 돈이 그대로 도내 상점과 식당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오전에는 일손 부족 농가를 돕고, 오후에는 지역 경제의 흐름이 움직입니다. 이 구조는 기존의 농촌봉사처럼 ‘일하고, 사진 남긴 후 바로 떠나는 방식’에서 나아가, 봉사·소비·체류를 하나의 흐름 안에 묶어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제주도가 목표로 했던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첫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 “마트에서 보던 감귤… 직접 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 한 참여 직원은 “전국 하나로마트로 나가는 감귤을 직접 따보니, 농가가 견디는 노동의 깊이를 다소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통 일선에서 일하던 사람이 생산의 출발점을 몸으로 겪은 경험은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또 다른 직원은 “봉사와 여행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이 신선했다”고 말했습니다. 도시 소비자와 농가 사이에 놓였던 거리가 짧은 시간이지만 눈에 띄게 좁혀진 순간이었습니다. ■ 인력난 앞에서 생기는 물음… “이 모델, 실제 대체 인력이 될까” 제주 농촌의 인력난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닙니다. 고령화, 인구 이동, 계절근로자 공급 불안정이 겹치면서 수확철마다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농케이션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기업·단체 단위의 체류형 봉사가 확대되면, 취약 농가의 인력 공백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물론 농케이션이 모든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건 현장에서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이번 참여가 그 의미를 인정받는 이유입니다. ■ “도시와 농촌을 잇는 구조가 바뀐다”… 제주가 먼저 보여준 변화 농촌을 더 이상 ‘생산지’라는 한 줄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이곳은 도시인의 체류지이면서, 지역 소비가 일어나는 생활권이고, 봉사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입체적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번 감귤 수확 참여는 그 변화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직장인이 직접 감귤을 따고, 저녁엔 탐나는전으로 지역 상권을 돌리고, 다음 날 다시 농촌으로 들어가는 흐름. 이는 ‘좋은 일 했다’는 경험을 넘어, 앞으로 제주 농업이 어떤 형태로 버티고 재편되어야 하는지 방향을 던지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인력난이란 부담은 여전히 농가를 짓누르지만, 그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는 이미 예전과 다른 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농케이션은 그 출발점이자, 다음 해법을 시험하는 첫 모델로 제주 농업이 향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2025-11-2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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