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짧아진 휴가 동선… 호텔 안으로 들어간 여행
휴가의 이동 반경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한낮의 거리는 뜨겁고, 밤의 공기도 쉽게 식지 않습니다. 여행객은 더 많은 곳을 돌기보다 덜 움직이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습니다. 호텔업계는 이 변화를 빠르게 상품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객실만 파는 대신 스파와 조식, 수영장, 피트니스, 늦은 퇴실을 한데 묶어 호텔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올여름 호텔가에서 앞세운 ‘스파캉스’는 낯선 이름의 유행이라기보다, 더위가 바꾼 휴가 소비의 방향으로 다가옵니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디에서 얼마나 편하게 머무느냐가 판매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 가장 더웠던 밤, 호텔 안으로 들어간 휴가 11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는 9.7일로 평년 2.8일의 3.5배에 달했습니다. 1973년 관측망 확충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폭염일수도 8.9일로 평년보다 4.8일 많았습니다. 이 정도 더위에서는 휴가의 계산법은 사뭇 달라집니다. 낮에는 야외 관광을 줄이고, 밤에는 숙소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호텔가에서 이런 시간을 객실 안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을 스파와 식사,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색다른 구성으로 다시 짰습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비건 헤어케어 브랜드 아베다와 손잡고 두피와 바디 관리에 초점을 맞춘 패키지를 내놨습니다. 디럭스와 이그제큐티브 객실은 3박 이상 투숙 조건입니다. 두피와 목선, 쇄골 부위를 관리하는 30분 프로그램과 샴푸·컨디셔너를 제공합니다. 5박 이상 머무는 고객에게는 객실 등급에 따라 식음 이용권이나 공항 이동 서비스도 붙습니다. 객실에 화장품을 비치하던 호텔·뷰티 협업이 전문 관리와 장기 투숙을 결합한 체험으로 넓어진 셈입니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은 석촌호수 전망 객실 1박과 60분 스파 트리트먼트 2인 이용권을 묶었습니다. 오후 1시에 들어가 다음 날 오후 1시에 나오는 24시간 체류를 내세웠습니다. 객실 운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인 입·퇴실 시간보다 호텔에 머무는 구간을 앞뒤로 넓힌 구성입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객실 1박에 2인 조식과 실내 수영장, 피트니스 이용을 넣었습니다. 스파에서는 60분 마사지 뒤 30분의 회복 시간을 따로 제공합니다. 파크 하얏트 부산도 객실과 조식, 60분 바디 테라피, 실내 수영장과 사우나 이용을 결합했습니다. 상품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운 시간에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호텔 안에서 일정이 채워지도록 만들었습니다. ■ ‘머무는 시간’을 내세우다 호텔 상품의 중심도 조금씩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호캉스가 좋은 객실과 전망, 조식에 가까웠다면 최근 패키지는 시간을 더 세밀하게 쪼갰습니다. 30분 두피 관리, 60분 바디 테라피, 30분 회복 시간, 24시간 체류, 3박 이상 장기 투숙처럼 이용 시간이 판매 조건의 앞줄에 놓입니다. 고객은 방 하나를 예약하는 걸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호텔 안에서 보낼 일정표를 함께 고릅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객실 예약 한 건을 식음과 스파, 부대시설 매출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투숙객이 건물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 접점도 늘어납니다. 여름 상품이라고 해서 여름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피텔은 토요일을 제외하고 연말까지 투숙 기간을 열어뒀고, 파크 하얏트 부산도 12월 말까지 운영합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판매를 12월 중순까지 진행하고, 투숙과 관리 프로그램은 내년 3월 말까지 이어갑니다. 폭염은 문을 여는 명분일뿐, 실제로는 웰니스 소비를 연중 상품으로 끌고 가려는 전략입니다. 미국의 글로벌웰니스연구소(GWI)가 발표한 ‘2025 글로벌 웰니스 경제 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웰니스 경제 규모는 2024년 6조 8,000억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GWI는 이 시장이 2029년 9조 8,00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고, 연평균 성장률은 7.6%로 전망했습니다. ■ 제주 관광도 야외 일정만으론 버겁다 제주의 경우 올해 7월 폭염일수가 6.5일로 평년의 4.3배에 달해 역대 가장 많았습니다. 해변과 오름, 숲길, 야외 체험 비중이 큰 관광지일수록 폭염은 여행 일정을 바꾸는 변수가 됩니다. 서울과 부산 호텔의 스파 상품을 제주가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숙박과 휴식, 식음, 체험을 어떻게 묶어 여행객의 체류시간을 늘릴지는 제주 관광에도 남은 과제입니다. 도내 관광업계에서도 체류형 상품 구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폭염이 길어지면 낮 시간대 야외 일정은 줄 수밖에 없다”며 “숙박과 실내 체험, 식음 상품을 함께 묶는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관광지나 체험 콘텐츠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예약 가능한 상품 구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숙박을 예약하면서 숲 치유 프로그램이나 차 체험, 지역 식재료 식사, 해양 프로그램을 함께 고를 수 있다면 체류형 관광의 완성도도 높아집니다. 폭염은 여행의 속도와 소비의 위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호텔업계는 이미 그 변화를 객실과 스파, 식음, 체류시간을 한데 묶은 상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제주 관광도 숙박과 체험, 식음을 따로 놓고 팔던 방식만으로는 체류시간을 늘리기 어렵습니다. 더운 시간에 어디서 쉬고, 무엇을 먹고, 어떤 체험을 할지까지 한 번에 고를 수 있을 때 여행객의 하루가 제주 안에서 길어집니다.
2026-08-1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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