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과 생쥐에게도 자리를 내줬다… 예미킴이 데려온 ‘이상한 요정’
분홍 홍학은 한쪽 다리로 서 있습니다. 그 옆으로 긴 귀를 가진 흰 형상이 비스듬히 떠 있습니다. 분홍 꽃과 초록 클로버는 금세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도톰하게 솟았습니다. 환한 바탕에는 느닷없이 초승달까지 떠 있습니다. 낮인지 밤인지부터 따지는 일, 이 그림 앞에서는 별 소용 없어 보입니다. 길게 솟은 두 귀, 흰 몸, 점 두 개처럼 찍힌 눈. ‘미몽(MiMoN)’입니다. 세상을 구할 재주도,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습니다. 화분에 살다가 책상 서랍으로 숨어들고 어느 날은 침대 위를 차지합니다. 고양이나 비둘기는 물론 꽃잎과 생쥐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갑니다. 친구를 고르는 법부터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 천진한 무원칙을 따라가다 보면 제법 먼 데까지 가게 됩니다. 우리는 대체 어디까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예미킴(YEMIKIM)의 개인전 《MiMoN 그 밤 이야기》가 오는 9월 1일부터 제주시 원노형로 시몽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이 작고 기묘한 풍경을 조금 달리 읽게 만드는 작가의 이력이 있습니다. 지난 7월 개막한 2026 서울청년비엔날레에서는 《POST-HUMAN》을 내걸고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 ■ 서울의 ‘POST-HUMAN’, 제주에서는 말랑해졌다 서울청년비엔날레 본전시에는 청년 작가 22명이 참여했습니다. 예미킴은 ‘인간 너머의 감각: 유동하는 존재들의 연대(Senses Beyond the Human)’를 주제로 서로 다른 작업들을 한 전시장에 불러들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언제나 문장의 주어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식물과 사물, 기계와 데이터까지 인간의 주변에 가만히 놓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가 움직이면 곁의 무언가도 달라지고, 그 변화는 다시 전체의 풍경으로 번집니다. 사람 역시 그 복잡한 얽힘 속 한 자리로 내려옵니다. 제주에서는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부터 달라집니다. 포스트휴먼을 설명하는 대신 미몽을 돌아다니게 합니다. 복숭아가 가지마다 터질 듯 열린 숲에서는 소풍이 한창입니다. 꽃밭에 돗자리를 펴고 케이크와 차를 나눕니다. 누군가는 책에 빠졌고, 다른 미몽은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물가에는 작은 형상이 한가롭게 머뭅니다. 버섯과 열매, 새와 물결까지 저마다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려고 나머지를 세워두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에는 엑스트라가 없습니다. ■ 그런데, 미몽이 먼저였다 포스트휴먼을 기획하고 미몽을 만든 게 아닙니다. 예미킴은 이미 지난해 서울 pnc토탈갤러리에서 《MiMoN’s Journey》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미몽이 먼저였습니다. 이 시간의 순서가 이번 전시를 읽는 방향을 슬쩍 틀어놓습니다. 올해 서울에서 ‘인간 너머’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이 작은 요정의 놀이터에는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했습니다. 작가는 미몽이 우리 가까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주위의 것들을 애정을 가지고 살피다 보면 발견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화분과 서랍, 침대처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곳까지 머물 자리가 됩니다. 최근에는 8비트 블록의 ‘픽셀몽’으로 모습을 바꿔 와이파이를 타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자격은 훨씬 더 느슨합니다. 살아 있는지, 말을 하는지,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지부터 따지지 않습니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친구가 됩니다. 그래서 올해 비엔날레에서 여러 작가의 작품으로 펼쳐낸 ‘인간 너머’의 감각은 거창한 담론을 좇다 갑자기 발견한 새 길이라기보다, 예미킴이 오래 그려온 풍경에 뒤늦게 붙은 이름처럼도 읽힙니다. 철학이 그림을 데려온 게 아니라, 그림이 먼저 철학 근처에 가 있었습니다. ■ ‘귀엽다’고 말한 뒤, 눈이 배반한다 첫눈에는 미몽이 이깁니다. 희고 둥근 몸에 길게 솟은 귀, 점 두 개로 끝낸 얼굴이 먼저 시선을 낚아챕니다. 그런데 오래 보면 눈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캐릭터에 머물던 눈길이 옆으로 미끄러집니다. 솟아오른 꽃잎의 두께를 훑다가 푸른 바닥의 거친 결에 걸리고, 색이 겹친 흔적을 따라 어느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갑니다. 그때 그림의 서열도 흐트러집니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지, 어디까지가 장식이고 어디부터가 주체인지 쉽게 잘라내기 어려워집니다. 붓으로 칠한 것과 붙여 올린 것이 한 표면에서 부딪히면서 평평했던 캔버스에는 작은 높낮이가 생깁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손끝의 감각까지 슬쩍 끼어듭니다. 미몽도 한가운데서 왕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끌어온 눈길을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흘려보냅니다. 주연으로 등장해 주연의 자리를 독점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미몽을 보는 동안 미몽 아닌 것들의 해상도가 올라갑니다. ■ 공학도가 건너온 칸, 캔버스에서는 지웠다 예미킴은 KAIST에서 건설환경공학과 산업공학을 공부한 뒤 한남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레지던시와 창작 활동을 거쳐 제주에서 작업을 이어왔고 지금까지 개인전 15회와 70여 회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2023년 제주 빛의벙커 미디어아트 전시 《피어나다》에 참여했고, 2024년 서울청년비엔날레에서는 미술평론가상을 받았습니다. 2년 뒤 같은 비엔날레에는 예술감독으로 돌아왔습니다. 공학과 회화, 창작과 기획. 이력에서는 서로 다른 칸을 여러 차례 건너왔는데 정작 자신의 캔버스에서는 칸을 지우는 쪽을 택합니다. 닮아야 어울리는 것도, 쓸모가 있어야 초대받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정확히 분류해 제자리를 지정하기보다 전혀 다른 것들이 한데 놓였을 때 생기는 낯선 균형을 즐깁니다. 예상 밖의 이웃이 자꾸 늘어납니다. ■ 미몽을 따라갔더니, 그 곁이 보였다 전시를 오래 보고 나면 처음 무엇을 보러 왔는지 헷갈립니다. 미몽을 따라 들어왔는데 눈은 자꾸 다른 데서 멈춥니다. 서울에서 여러 작가와 ‘인간 너머’를 향했던 예미킴은 자신이 오래 그려온 작은 요정에게 돌아왔습니다. 미몽에서 포스트휴먼으로, 다시 미몽으로. 한 바퀴를 돌아오자 작은 요정의 주변까지 그림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미몽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세상에 없던 친구를 만들어주는 요정이라기보다, 이미 곁에 있었지만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합니다. 꽃잎과 생쥐에게 자리를 내준 까닭도 이제사 읽힙니다. 무엇이 중심이고 주변인지 정해놓은 오래된 좌석표를 슬쩍 흐트러뜨립니다.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그림이 아니라, 너무 오래 사람만 앉아 있던 자리를 조금 넓히는 그림입니다.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집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목요일은 휴관입니다. 전시장을 나선 뒤 평소 무심히 지나던 풀 한 포기나 담벼락의 새 한 마리 앞에서 공연히 걸음이 느려질지도 모릅니다. 어제도 거기 있었는데 오늘 처음 본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면, 그림 속 미몽을 찾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몽이 건넨 건 새로운 친구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던 것들을 알아보게 하는 눈인지 모릅니다. 예미킴의 미몽을 만났으니 이제는, 나의 미몽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2026-08-25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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