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제주] ② ‘사람은 넘쳤는데, 돈이 돌지 않았다’… 여름 제주가 드러낸 냉각 구조
올여름 제주를 지나간 풍경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공항의 도착 게이트는 밤늦도록 열려 있고, 호텔 체크인 라인은 계속 이어졌으며, 바닷가에는 텐트와 돗자리가 빈틈 없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건너 도착한 곳. 남은 숫자는 정반대였습니다. 가장 붐볐던 계절은, 가장 조용한 경제 지표를 남겼습니다. [김지훈의 ‘맥락’] 연속기획 2편에서는, 관광객 증가에도 지역경제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 를 실물 데이터와 현장 흐름으로 살펴봅니다. ‘외국인 증가·내국인 감소’의 이중 구조가 숙박시장에서 시작됐다면, 소비 전체가 왜 얼어붙었는지, 그 연결고리 를 추적합니다. ■ 관광객은 최고 수준이라는데… 소매판매·서비스업 “동시에 마이너스” 최근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2025년 3분기 제주지역경제동향 결과는 여름 제주가 얼마나 ‘비대칭적인 회복’을 겪었는지 명확히 드러냅니다. 7∼9월 제주 방문객은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외국인은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고, 국내선 역시 성수기 효과가 뚜렷했습니다. 그러나 핵심 소비 지표는 오히려 꺾였습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분기 대비 1.3% 감소했고, 서비스업생산지수는 8% 넘게 떨어졌습니다. 표면의 활기와 실제 소비는 완전히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 여행비 부담, 지출 구조 바꿔… ‘짧게 오고, 적게 쓰는’ 내국인 현장에서는 올해 내국인 여행 패턴이 확실히 바뀌었다는 말이 계속 나왔습니다. 숙박업계는 여름 내내 “오긴 오는데, 더 짧게 머문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체류일수가 줄면 렌터카·식음료·쇼핑이 바로 타격받습니다. 제주 경제가 가장 크게 기대는 소비축이 동시에 약화된 셈입니다. 한 렌터카 업체 대표는 “예약 건수만 보면 성수기 같았지만, 실제 매출은 예년보다 약했다”며 “2박 3일이 1박 2일로 바뀌는 흐름이 아주 뚜렷했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의 양과 속도 자체가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 중저가 숙소 ‘가동률만 높은 계절’… 가격 경쟁 심화→수익성 악화 숙박 플랫폼의 흐름을 보면 중저가 숙소는 가동률은 유지됐지만, 객단가는 확실히 약해졌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공통된 진술입니다. 성수기임에도 특가 경쟁이 이어졌고, 소비자들은 항공료 부담을 감안해 숙박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지출 구조를 바꿨습니다. 가동률은 높지만 남는 돈은 적은, 이른바 ‘움직이기만 하는 시장’이 된 이유입니다. ■ 제주시권은 외국인 효과로 버텼고, 서귀포는 더 식어 한국은행 분석을 보면 외국인 증가가 두드러지는 업종 즉 호텔·카지노·면세점·도심형 F&B의 경우 증가 흐름을 보였지만, 반대로 내국인 중심 소비가 많은 소매판매는 여전히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지역별 산업 분포에 대입하면 외국인 수요가 집중되는 제주시권은 상대적으로 버티는 흐름, 내국인 의존도가 높아 소비 축소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는 서귀포권은 회복세가 더딘 흐름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외국인 프리미엄 소비’와 ‘내국인의 절감·단축형 여행’이라는 1편의 구조가 숙박을 넘어 외식·상권 전체에서 실제 매출 패턴으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올해 제주 경제의 양극화는 한층 분명해진 셈입니다. 여기에 프리미엄 시장으로 쏠림도 뚜렷했습니다. 제주시권의 드림타워와 같은 대형 복합리조트는 9·10월 연속 6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카지노 중심으로 외국인 VIP 수요가 강하게 유입되며, 상층부 시장만 회복이 가속화된 구조입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뜨거운 회복’. 이 불균형이 올해 제주 경제의 핵심 진단 중 하나입니다. ■ 관광객 늘어도 지역경제가 살아나지 않은 이유 여름 제주가 남긴 결과는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였습니다. 데이터와 업계 흐름을 종합할 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우선 여행비 부담이 제주 내 소비 여력을 직접 깎아냈습니다. 이어 내국인의 짧은 여행·적은 소비 패턴은 고착화된 양상입니다. 그리고 외국인 수요가 프리미엄 호텔과 카지노 등 상층부 업종에만 집중되며 지역 전체로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즉, 관광객 수는 움직이며 규모도 키우면서 ‘회복’을 기대하게 했지만 정작 지역경제를 끌어올리는 체력은 약해졌습니다. ■ 지금 직면한 질문… ‘전환의 제주’를 만들기 위해 외형의 회복이 내부 경제로 번지지 않는 이 구조는 더 이상 계절적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제주는 관광 생태계 자체가 전환기를 맞았다는, 거의 경고에 가까운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제주관광포럼에서도 같은 진단이 나왔습니다. 한 관광정책 전문가는 “수요는 돌아왔지만, 소비의 파급력은 오히려 줄었다. 지금 구조를 그대로 두면 ‘많이 오는데도 경제는 나빠지는’ 역설이 더 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내년엔 단순 둔화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피로가 올 가능성이 크다”며 “관광당국이 먼저 구조 개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책·마케팅·플랫폼 등 관행적인 방식이 더는 지역경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광 당국 역시 대응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외형적인 통계만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이 간극을 더 이상 메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체류 패턴, 업종별 매출 구성, 여행비 구조, 그리고 관광당국과 지자체의 정책 대응을 연결해 제주가 왜 ‘사람은 늘어도 돈이 돌지 않는 구조’가 되었는지, 그 근간 을 해부합니다. 통계 뒤에 숨어 있던 제주 경제의 진짜 구조 를, 더는 피할 수 없는 질문들과 함께 드러냅니다.
2025-11-2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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