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라 시의성 있다?”… 육영수 저격 다룬 〈암살자(들)〉에 콘진원 ‘A등급’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화 제작 단계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이 작품에 A등급을 매긴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눈에 띄는 건 평가 기준입니다. 콘진원은 2024년 12월 비상계엄 이후 높아진 정치적 관심을 작품의 ‘시의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근거로 들었습니다. 문세광의 사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을 설명하면서는 “어렴풋이 알려진 내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법률 검토 여부는 제작사와의 현장실사 면담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평가위원 4명 가운데 법률 전문가는 없었습니다. 콘진원이 정치적 논란 가능성을 위험 요인으로 적어놓고도 기획과 시나리오 등에 잇달아 A를 준 평가 과정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 “계엄 이전부터 정치적 관심 높아”… ‘시의성’ A 5일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콘진원에서 제출받은 콘텐츠가치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지난해 10월 27일 A등급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영화가 촬영 중이던 시기입니다. 제작사는 지난해 8월 촬영에 들어갔고, 10월에는 출연진과 작품 내용을 공식 공개했습니다. 보고서는 12개 세부 평가항목 가운데 10개에 A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기획의 적절성’을 평가하면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직접 거론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지난 24년 12월 계엄 선포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며 시의성 측면에서도 적절하다는 취지의 평가가 담겼습니다. 콘진원의 콘텐츠가치평가는 제작 중인 콘텐츠의 완성·흥행 등 사업화 가능성을 평가해 투자기관의 투자 검토에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정치적 관심의 고조가 작품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반영된 셈입니다. ■ 대법원 확정 뒤 51년… 보고서엔 “어렴풋이 알려진 내용”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총격을 가한 문세광은 그해 10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가 기각됐고 같은 해 12월 17일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사흘 뒤 형이 집행됐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 사건을 ‘박대통령 저격사건(문세광 사건)’으로 분류하고,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저격에는 실패했으며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콘진원 보고서에는 “문세광의 자백, 사형 집행이라고 어렴풋이 알려진 내용”이라고 적혔습니다. 이어 그 뒷배경을 파헤치는 기획이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취지로 평가했습니다. ■ “법률 검토했다”… 제작사 면담 통해 확인 보고서에는 법률 검토와 관련해 “제작사의 법률 검토 절차를 현장실사 면담 시 확인함”이라고 기재됐습니다. 정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상 평가위원은 4명으로, 법률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콘진원의 콘텐츠가치평가 운영지침은 평가자가 객관성과 전문성, 신뢰성을 확보하고 콘텐츠 가치를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부평가위원은 제작·유통·금융·학계 등의 전문가 4명 안팎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제작사가 제시한 자료의 정확성에 대해 추가 검증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문구도 담겼습니다.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법률 검토 여부는 제작사 면담으로 확인했고, 별도의 법률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 “정치적 논란 휘말릴 가능성”… 위험 적고도 A 보고서 자체에도 논란 가능성이 적혀 있습니다. SWOT 분석의 ‘위협’에는 작품 제목에 내포된 의미가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을 들었습니다. ‘약점’에는 감독의 정치 첩보 스릴러 영화 완성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최종 평가는 높았습니다. 감독 역량과 시나리오, 기획 등 주요 항목에서 A를 받았습니다. 정 의원실이 콘진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이후 가치평가를 받은 영화 67편 가운데 A등급 이상은 21편으로 31.3%였습니다. 〈암살자(들)〉의 평가를 신청한 투자사는 이후 실제 투자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콘진원은 콘텐츠가치평가를 통해 투자기관에 보고서를 제공하고, 투자기관은 자체 검토를 거쳐 투자 여부를 결정합니다. A등급이 실제 투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 제작진 “역사 왜곡 의도 없어” 영화는 지난달 23일 개봉 이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제작진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며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관객은 개봉 11일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정연욱 의원은 “창작은 자유지만 공적 기관이 매기는 등급은 무게가 다르다”며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다룬 콘텐츠는 역사·법률 전문가 검증을 의무화하고, 콘진원은 이번 평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2026-10-05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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