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이 예술을 멈춘다… 예술가들, ‘보조금 시스템’에 직접 칼을 뺐다
정산은 ‘나중에’ 미뤄 처리할 뒷일이 아니라, 창작의 속도를 결정하는 앞일입니다. 정산 개선은 자상한 행정 서비스를 요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창작자에게는 생존의 시간표이고, 행정에는 신뢰의 기술입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 “작품보다 정산이 더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누적돼 온 가운데,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정산 개선 TF’를 꾸려 행정 정산 시스템 자체를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기로 했습니다. 국고보조 사업의 집행·증빙·정산 구조가 현장의 작업 방식과 충돌할 때 그 부담이 창작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번 시도는 단지 불편이나 불만을 토로하자는 자리가 아닙니다. 말로만 남겨졌던 문제를 정책 문장으로 압축해, 책임자에게 즉시 전달하겠다는 실행 계획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하소연을 요구안으로 바꾸자는, 예술인 스스로의 방식 전환입니다. 전환이 성공하면 예술 지원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덜 소모시키느냐’로 재정의될 가능성이 큽니다. ■ “정산만 수개월”… 오래된 불편, 정책 궤도 올릴 때 문화예술계에서 정산 시스템을 둘러싼 피로감은 오래전부터 누적돼 왔습니다. 보조금 정산에 수개월이 소요되고, 입력값 하나를 고치기 위해 여러 단계의 확인을 거쳐야 하는 절차는 창작 일정과 정면으로 충돌을 빚어 왔습니다. 현장에서는 “정산에 매달리다 전시 준비가 무너진다”는 말이 반복됐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개인의 숙련도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인식이 현장에 널리 공유돼 왔다는 점입니다. TF 세미나는 이 지점을 감정의 언어로 소비하지 않습니다.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체들이 모여 행정의 허점을 짚고, 창작자 중심의 개선안을 설계합니다. 보조금 집행·증빙·정산이라는 행정 언어를 창작자의 시간표에 맞게 다시 번역하겠다는 실천적 접근입니다. ■ ‘10대 제안’ 완성… 도지사·재단에 전달키로 세미나의 핵심은 ‘10대 제안 도출과 즉시 발송’입니다 현장에서 제안서를 정리해 행사 종료와 동시에 제주도지사, 도의회, 제주문화예술재단 등 행정 책임자와 언론에 이메일과 메시지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말로만 대책을 논하고, 탁상공론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는 지원의 공정성 논쟁이 ‘선정’ 단계에 머물지 않고, ‘집행·정산’ 단계까지 신뢰 사슬을 확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현장에서 분명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AI 시연이 던진 질문… 자동화, 그리고 ‘평가 기준’ 이날 세미나에서는 AI 시연 세션도 함께 진행됩니다. 정산 자동화의 편의성만을 다루는 자리가 아니라, 기술이 개입한 기획과 제작을 공공 영역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공정성과 창작의 자유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공공지원 행정은 ‘증빙 가능성’에 과도하게 기울어져 왔습니다. 기술 도입은 정산을 더 촘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창작의 자율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TF가 이 쟁점을 선제적으로 꺼낸 것은, 다음 국면이 효율 논쟁을 넘어 지원 행정의 목적 자체를 재정의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행사는 29일 오후 5시, 제주시 애월읍 엄수로 63의 애월뮤직팩토리에서 열립니다. 주최 측은 “우리가 직접 닦은 의자에 앉아, 우리가 직접 쓴 제안을 보내는 특별한 여정”이라며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주문했습니다. 온라인 링크를 통해 사전 접수를 받고, 기획자나 예술가는 별도 참가비가 있습니다.
2026-01-18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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