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없고 구름만 남아… 참 이상하기도 하지, 김미란이 한라산에 세운 ‘신전’을 만났다
신전이라는데 신이 없습니다. 대신 구름이 있습니다. 도시의 빌딩 사이를 지나고 숲으로 들어가더니 아래로 쏟아져 폭포가 됩니다. 붉은 땅에는 푸른 물이 흐르고 커다란 나무 뒤로 건물이 솟습니다.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서부터 도시인지 따지는 동안 구름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김미란이 이번 전시에 내놓는 ‘구름의 신전’ 연작입니다. 이상한 이유는 낯선 것을 그려서가 아닙니다. 구름도, 나무도, 빌딩도 우리가 아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리에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구름은 하늘을 떠났고 물은 구름과 몸을 바꾸며 도시와 숲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한 작품에서는 잎을 잃은 회백색 나무가 먼저 시선을 막습니다. 앙상한 가지 너머에는 검푸른 숲이 이어지고 흰 구름이 낮게 지나갑니다. 더 멀리 청록과 초록, 분홍과 보라가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색을 보고 싶은데 자꾸 나무부터 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답을 찾으러 그림 밖으로 나가면 한라산이 나옵니다. 김미란은 지난 2년 동안 윗세오름을 스무 번 넘게 올랐습니다. ■ 산에 갔는데 산이 없어졌다 영실에서 출발할 때는 아직 어둡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해발 1,500~1,600m 부근까지 몸을 끌어올리면 날이 밝습니다. 산 아래와는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고 식생과 바람도 바뀝니다. 특히 좋아한 곳은 어리목 코스 만세동산에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완만한 고원이 넓게 열려 먼 곳까지 보이는 구간입니다. 그러다 구름이 옵니다. 산허리를 타고 올라온 구름이 눈높이까지 내려오면 조금 전까지 있던 산이 없어집니다. 몇 걸음 앞의 길도 흐려집니다. 안개라는 건 압니다. 산 전체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마음은 온통 흐리다.” 계속 걸으면 어느 순간 구름 밖으로 나옵니다. 햇빛이 쏟아지고 젖은 피부가 따뜻해집니다. 뒤를 돌아보면 조금 전 자신을 삼켰던 구름이 산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나온 한마디. “신성함은 구름을 동반한다.” 김미란의 신성함에는 처음부터 신이 없었습니다. 구름에 들어갔다 나온 몸이 있었습니다. ■ 36년 동안 꿈이 하던 일을 이제 구름이 한다 1990년 첫 개인전 이후 김미란의 작업에는 꿈이 질기게 따라붙었습니다. 《무의식의 기호》, 《기계(氣械)의 무의식》, 《5번구역의 반복되는 꿈》, 《자각-몽 질량 없는 형체》, 《자각-몽 차원》, 《이몽사몽》, 《김미란의 꿈여행》, 《Dream Time》, 《몽간》. 제목만 시간순으로 놓아도 얼마나 오래 꿈에 천착했는지 보입니다. 2018년에는 『김미란의 꿈은 알고 있다』를 펴냈습니다. 꿈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의 방에서 문을 열었는데 오늘의 도시가 나오고, 오래전의 시간이 현재 한복판으로 들어옵니다. 현실에서는 함께 있을 수 없는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곳에 나타납니다. 김미란이 계속 다뤄온 것도 이런 꿈의 성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구름이 그 일을 맡았습니다. 한라산에 있던 구름이 도시로 갑니다. 공중에 있던 구름은 비가 되어 떨어지고, 물은 폭포와 강과 바다를 지나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36년 동안 꿈이 하던 일을 이제 구름이 합니다. ■ 어느 날 꿈을 꾸는 쪽이 사람이 아니게 됐다 변화는 2025년 개인전 《숲이 깨어 자각몽을 꾼다》에서 또렷해집니다. 김미란의 지난 작업을 알고 보면 ‘자각몽’은 익숙합니다. 오히려 눈에 걸리는 단어는 ‘숲’입니다. 숲이 꿈을 꿉니다. 꿈을 꾸는 주체가 사람에서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작은 문법의 변화는 이후 작업을 꽤 멀리 끌고 갑니다. 사람이 자연을 바라볼 때만 나무와 동물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사슴과 까마귀와 나무에도 인간의 해석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사슴을 순수의 상징으로, 까마귀를 죽음의 상징으로 곧장 번역해버리면 오히려 재미가 줄어듭니다. 사슴은 산을 걷고 까마귀는 하늘과 땅을 오갑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올립니다. 물은 떨어지고 흐른 뒤 다시 올라갑니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이들의 시간은 이어집니다. ■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데 나무가 자꾸 방해한다 잎을 잃은 회백색 나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뒤쪽의 색은 아름답습니다. 검푸른 숲 너머로 청록과 초록, 분홍과 보라가 이어지고 흰 구름이 낮게 지나갑니다. 눈앞에 앙상한 가지가 있습니다. 먼 곳을 보려면 그 가지 사이로 봐야 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김미란은 “하나의 변화는 다른 존재의 환경이 되고, 한 존재의 소멸은 또 다른 순환의 일부가 된다”고 말합니다. 한라산을 거듭 걸으며 기후와 생태에 대한 불안도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굳이 기후위기를 알리는 경고를 그림에 새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회백색 나무가 남습니다. 눈은 먼 곳의 아름다운 색을 좇다가 다시 잿빛 가지로 돌아옵니다. ■ 구름과 폭포 사이, 이름 하나가 바뀐다 ‘구름의 신전’에서 눈여겨볼 것은 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물이라고 불러야 하는지가 헷갈립니다. 산 위에서는 구름이던 것이 비가 되어 떨어집니다. 땅에 닿으면 물이라고 부릅니다. 경사를 만나면 흐르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됩니다. 강을 지나 바다에 도착한 뒤 증발하면 다시 구름입니다. 계속 같은 물인데 이름은 여러 번 바뀝니다. 〈구름의 신전 1〉과 〈구름의 신전 2〉에서는 이 긴 이동이 한꺼번에 벌어집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와 옆으로 퍼지는 구름이 이어지고, 흰 구름 안으로 푸른 물빛이 파고듭니다. 처음에 묻습니다. 구름인가, 폭포인가. 조금 더 지켜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언제까지 구름이고, 언제부터 물일까. 나누는 선은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습니다. ■ 꿈의 이동과 물의 순환이 만났다 여기에서 김미란의 36년과 제주에서 보낸 시간이 연결됩니다. 꿈은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멀리 떨어진 장소를 붙이고 과거를 현재로 데려왔습니다. 물도 움직입니다. 구름으로 산을 넘고 비가 되어 내려옵니다. 폭포와 강을 지나 바다에 도착한 뒤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꿈의 이동과 물의 순환이 만났습니다. 한쪽은 오랫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좇아온 움직임이고, 다른 한쪽은 제주에서 몸으로 겪은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신령이 되는 법》에서 지난 36년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래 파고든 꿈이 한라산에 이르러 구름과 물을 만났습니다. 잠들어야 일어나던 일이 한라산에서는 눈을 뜬 채 벌어졌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산이 없어졌고, 몇 걸음을 더 걸어 나오자 다시 나타났습니다. ■ 뿌리는 땅으로 가는데 뿔은 하늘로 갔다 2026년 앞서 연 개인전은 《뿌리는 뿔이다》였습니다. 뿌리는 식물의 것이고 뿔은 동물의 것입니다. 하나는 땅 아래로 내려가고 하나는 머리 위로 솟습니다. 생김새를 보면 닮았습니다. 갈라지고 뻗고 다시 갈라집니다. 이번 전시의 조형작품 〈구름을 거느려라 1〉에서는 사슴 머리 형상 위로 거친 뿔이 솟습니다. 매끈하게 정돈된 뿔보다는 나뭇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위에는 작은 흰 구름 형상이 놓였습니다. 땅속으로 가는 뿌리와 하늘로 가는 뿔. 방향은 반대인데 모양이 닮았습니다. 서로 다른 생명을 하나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몸에서 닮은 선이 발견됩니다. 뿔을 보고 있는데 가지가 떠오르고, 가지를 따라 올라가니 구름이 있습니다. ■ 산을 정복하러 갔는데 정작 바뀐 것은 사람이었다 “나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상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산을 정복한다는 말에는 이상할 만큼 분명한 승패가 있습니다. 사람은 올라가고 산은 정복됩니다. 정상에 도착한 인간에게 이야기가 집중됩니다. 김미란이 스무 번 넘게 한라산을 찾으며 겪은 일은 달랐습니다. 고도가 올라가자 식생이 달라졌습니다.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바뀌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났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얼굴이 젖었습니다. 다시 햇빛으로 나오자 피부가 따뜻해졌습니다. 사람이 산을 바꾼 게 아닙니다. 산이 사람의 호흡과 체온과 시야를 계속 바꿨습니다. 그래서 정상에 몇 번 섰느냐보다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산에 들어가기 전의 몸과 나온 뒤의 몸은 같은가. 《신령이 되는 법》의 ‘되는’은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 그런데 구름을 어떻게 ‘거느린다’는 걸까 제목에는 묘한 모순이 있습니다. 산을 정복한다는 말조차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구름을 거느려라”라고 합니다. 옛 신선들은 구름을 타고 다녔고 신화 속 신들은 구름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신령이 되는 법, 구름을 거느려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구름이 누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산허리에 걸렸던 구름은 금세 능선을 넘어갑니다.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비가 되어 떨어지는 순간에는 구름이라는 이름마저 사라집니다. 더구나 윗세오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반대였습니다. 사람이 구름을 데리고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구름은 산을 지웠고 피부를 적셨으며 시야를 흐렸습니다. ‘구름을 거느려라’라는 말은 여기에서 슬쩍 뒤집힙니다. ■ 신령은 명사인데 ‘되는’이 움직인다 《신령이 되는 법》에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신령’입니다. 끝까지 보고 나면 오히려 ‘되는’이 남습니다. 구름이 물이 되고 물은 다시 구름이 됩니다. 뿌리는 뿔과 닮았고 뿔은 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숲에서는 하나의 생명이 사라진 뒤에도 다른 생명이 살아갑니다. 사람의 몸도 산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호흡과 체온이 바뀌고 보이는 거리도 달라집니다. 김미란의 ‘신령’에는 정해진 얼굴이 없습니다. 신령이라는 완성된 존재를 보여주는 대신 무엇인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오래 들여다보면 명사인 ‘신령’보다 동사인 ‘되는’이 더 두드러집니다. 신령이 된다는 건 인간이 신처럼 높아지는 일이 아닙니다. 물과 공기, 다른 생명 사이로 다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 결국 신전에는 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도시와 숲 사이에 구름이 있고 구름 아래로 물이 떨어집니다. 나무가 자라고 사슴이 걷고 까마귀가 하늘과 땅을 오갑니다. 신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변화는 다른 존재의 환경이 되고, 한 존재의 소멸은 또 다른 순환의 일부가 된다.” 한라산에서 얼굴을 적신 구름은 얼마 전 바다였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마신 물은 몸을 지나 다시 다른 곳으로 갑니다. 하나의 생명이 정확히 어디에서 끝나는지 선을 긋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36년 동안 김미란은 꿈을 통해 멀리 떨어진 시간과 장소를 한곳으로 불러왔습니다. 제주에서는 자연이 실제로 서로의 삶을 바꾸며 이어지는 시간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신전의 모양도 달라집니다. 높은 단도 필요 없고 신상도 필요 없습니다. 구름이 물이 되고, 물이 흘러 나무와 숲을 지나 다시 하늘로 가는 곳. 사슴이 걷고 까마귀가 날고 사람도 그 안을 지나가는 곳. 처음에는 신이 없는 신전이 이상했습니다. 다 보고 나니, 왜 신이 없어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 꿈과 무의식에서 숲과 생명으로… 김미란의 36년 김미란은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조각과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해왔습니다. 2012년 9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2025년부터 제주 담소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주요 개인전으로 《무의식의 기호》(1999·2002), 《기계(氣械)의 무의식》(2013), 《5번구역의 반복되는 꿈》(2014), 《자각-몽 질량 없는 형체》(2016), 《자각-몽 차원》(2016), 《이몽사몽》(2017), 《김미란의 몽환시》(2018), 《김미란의 꿈여행》(2018), 《Dream Time》(2019), 《숲, 빛》(2020), 《몽간》(2024),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2025), 《숲이 깨어 자각몽을 꾼다》(2025), 《뿌리는 뿔이다》(2026) 등이 있습니다. 2018년 『김미란의 꿈은 알고 있다』(미술문화)를 출간했습니다. 서울시립대와 전남대, 충남대, 동방문화대학원대 등에서 강의했습니다. 전시는 10일부터 19일까지 제주시 아라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최근 2년 동안 스무 차례 넘게 한라산 윗세오름을 오르며 만난 구름과 물, 숲과 생명의 변화를 회화와 조형으로 선보입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2026-10-06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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