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니었다”… 세계 57개국, 결국 기름값 통제 나섰다
중동 전쟁 장기화가 결국 세계 경제의 금기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던 주요국 정부들이 이제는 유류세를 깎고 가격 상한선을 만들고, 정유사 마진까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차량 운행 제한과 냉방 통제, 재택근무 확대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단지 기름값 문제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쟁과 공급망 충격이 이어지고 생활비 부담과 소비 위축 우려까지 커지자, 각국 정부가 시장 논리보다 물가 방어를 먼저 선택하고 있습니다. 고유가 대응이 경제 정책을 넘어 사실상 국가 비상 대응 체제로 번지는 분위기입니다. 17일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이 공개한 ‘중동 분쟁의 영향 및 해외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전 세계 57개국이 에너지 가격 급등 대응 정책을 시행 중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보고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S&P 글로벌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 “비싸면 덜 쓰게?”… 흔들리는 공식 가장 눈에 띄는 건 가격 통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사한 방식의 가격 상한 정책을 운용 중인 국가는 일본·헝가리·체코·태국·폴란드 등 16개국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은 휘발유 가격을 리터(L)당 170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태국 역시 L당 30바트를 넘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 중입니다. 헝가리는 과거 폐지했던 가격 상한제를 다시 꺼냈습니다. 체코는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갔습니다. 일일 가격 상한제뿐 아니라 주유소 최대 마진까지 법으로 제한했습니다. 디젤 소비세도 인하했습니다. 유가 형성 구조 자체에 정부가 직접 손을 대고 나선 양상입니다. 대만은 국영 석유기업 CPC를 통해 유가 상승 폭을 조절했고, 프랑스는 정유사의 자발적 가격 상한 도입과 함께 마진율 제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정책은 시장 왜곡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시장에 맡기자’보다 ‘국민 부담부터 막는다’ 쪽으로 정책 축이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 유럽 세금 내리고, 미국은 ‘유류세 중단’ 카드 꺼내 세금 정책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유류세 비중이 높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40개국이 세금 인하 방식의 시장 개입에 나섰습니다. 스페인은 경유 유류세를 유럽연합(EU) 허용 최저 수준까지 낮췄고, 부가가치세율도 21%에서 10%로 내렸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웨덴 역시 유류세 인하에 재정을 투입했습니다. 영국은 유류세 인상 계획 자체를 연기했습니다. 대신 주유소 폭리 여부를 직접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역시 연방 유류세 일시 중단 법안을 발의하며 가격 충격 완화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주요국 대부분은 연료 가격 충격을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습니다. ■ ‘덜 쓰게 만드는 정책’까지 등장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제 가격 방어를 넘어 소비 자체를 줄이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40개국이 에너지 절약 정책을 병행 중입니다. 절약 캠페인과 차량 운행 제한이 가장 많았고, 공무 출장 제한과 재택근무 장려, 냉방 온도 제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학교와 대학 운영시간까지 조정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대응 수위는 훨씬 강했습니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는 재택근무와 냉방 제한, 공무 출장 통제, 차량 운행 제한 등을 동시에 시행 중입니다. 연료 부족과 전력난이 겹쳐 사실상 국가 차원의 에너지 비상 체제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과거 고유가 국면은 원유 가격 상승 자체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전쟁과 해상 운송, 공급망, 에너지 안보가 한꺼번에 연결돼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세계 해상 석유 물동량의 약 25%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충격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 “기름값 문제만은 아니다”… 소비 방식까지 변화 현장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더 오르기 전에 넣자”보다 “차를 덜 타겠다”는 반응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출퇴근 거리부터 줄이겠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로 상승 속도를 눌러도, 생활비 부담 자체는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들이 시장 원칙보다 일상 속 생계 충격 관리에 먼저 대응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소비와 이동, 기업 비용, 물류 체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민호 한전 경영연구원 선임은 “중동 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시장 혼란이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더 이상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각국 정부가 소비자 지원과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국가 주도로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26-05-1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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