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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라는 말이 끝내 사람을 놓아주지 않던 그 밤, 좌혜선의 《안녕.》
사람들은 이제 그림도 빠르게 지나칩니다. 몇 초 안에 읽혀야 하고, 바로 이해돼야 하고, 그러다 금세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작업 앞에서는 속도가 붙지 않습니다. 쉽게 지나쳐지지 않습니다. 제주 원도심 대안예술공간 새탕라움에서 열리고 있는 좌혜선 개인전 《안녕.》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녕.’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자막 같기도 한 짧은 인삿말이 그림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 말은 한 방향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반가운 인사로 읽히다가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전언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에는 하루를 간신히 버틴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겨우 건네는 혼잣말로 남습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마주한 ‘안녕.’은 처음의 문장과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 ‘해피엔딩을 원해.’… 그런데 그림 속 밤은 끝내 밝아지지 않고 전시장 안에는 목탄으로 그린 밤 풍경이 이어집니다. 새벽 편의점, 횡단보도, 불 꺼진 골목, 늦은 귀가길. 한 번쯤 지나봤을 법한 장소들입니다. 그 앞에서는 자꾸 발이 느려집니다. 그 위에 얹힌 짧은 말들 때문입니다. ‘괜찮아’, ‘봄이 왔다’, ‘해피엔딩을 원해’. 결코 사람을 다정하게 달래지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이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 겨우 내뱉는 말이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말들이 그림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자막은 장면을 정리하거나 풀어줍니다. 하지만 좌혜선의 자막은 의미를 닫아버리지 않습니다. 말은 그림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그림 역시 그 말을 완전히 품지 못합니다. 서로 조금씩 어긋난 채 같은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그 앞에서 오래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 흔들리던 종이들 사이로, 지워내지 못한 시간들이 드러난다 공간 구성 역시 제법 인상적입니다. 벽면 작업만 따라가는 전시가 아닙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빨랫줄을 연상시키는 종이들 사이를 직접 지나가야 합니다. 종이들은 공기를 따라 흔들리고, 관람객은 그림 앞면뿐 아니라 손자국과 목탄 자국이 남은 뒷면을 마주합니다. 시선은 완성된 결과에 맞물려 그 이전의 시간을 향합니다. 지우고, 덧칠하고, 다시 문질렀던 자리들. 목탄이 번진 자국에는 오래 눌러두었던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좌혜선의 그림은 매끈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 안에서 오래 마르지 않는 감정을 붙들고 있습니다. ■ 글을 쓰던 사람과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끝내 따로 남지 못한 채 만든 작업 좌혜선은 1984년 제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동양화전공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연구했습니다. 장지 위에 분채를 여러 겹 두껍게 올린 뒤 다시 닦아내는 방식으로, 오래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그려왔습니다. 최근에는 그림과 글쓰기를 함께 이어가며 자신만의 ‘자막 드로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시작에는 작가 스스로도 “난감함”이라고 표현한 오래된 충돌이 놓여 있습니다. 작가는 “쓰지 못할 것이면서 감히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그릴 것을 한가득 옆에 두고 너무 많이 읽고 써버렸다”라며 “매일 쓰면서 또 매일 그리는 일은 나를 느리고 둔하게 만들었지만, 그 어긋남 안에서 이미지와 활자가 함께 떠다니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문장을 버리지 못했고, 계속 문장을 써왔지만 끝내 이미지 바깥으로만 머물지도 못했던 시간들입니다. 작업은 바로 그 오래된 충돌 위에서 움직입니다. 문장은 그림 안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그림 역시 그 말을 끝내 밀어내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남겨진 감정들이 전시장 안을 천천히 떠다닙니다. 작가는 “‘안녕’이라는 글자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말이 스스로 소리를 내며 그림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라며 “가만히 작업을 들여다보다 갑자기 활자가 떠오르고, 이미지와 소리가 한순간 겹쳐지는 때가 있었다”고 돌아봤습니다. 그러면서 “자막 드로잉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라며 “활자와 이미지가 서로 겹치고 스쳐 지나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바랐다”고 적었습니다. 무언가를 선명하게 설명하려 하기보다, 끝내 말로 다 옮겨지지 못한 감정들을 오래 붙들어온 작업입니다. 전시장 안에는 그런 순간들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목탄이 번진 검은 바탕. 늦은 밤 골목 끝 불빛. 그리고 ‘괜찮아’라면서도, 조금도 평온해 보이지 않던 문장 하나. 출구 앞에서 다시 마주한 ‘안녕.’이 그렇습니다. 그 말은 끝내 인사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래 삼키지 못했던 마음이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입 밖으로 밀려 나왔다가, 끝내 입안에 남은 말입니다. 전시가 열리는 새탕라움은 제주를 기반으로 실험적 현대미술을 소개해 온 공간입니다. 전시와 레지던시,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 생산과 비평, 국제 교류를 연결하는 현대미술 플랫폼 역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좌혜선 개인전 《안녕.》은 오는 29일까지 제주시 동문로14길 새탕라움에서 이어집니다. 전시 마지막 날인 29일 오후 7시에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됩니다. 별도 신청 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2026-05-2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이름값 하네"...제주 119구조견 '나르샤', 고사리 채취객 연속 구조 맹활약
이름처럼 날아올라 길 잃은 이를 찾아냈습니다. 제주소방안전본부 119구조견 나르샤가 오늘 낮 표선면 가시리 따라비오름 인근에서 길을 잃은 70대 남성을 수색 시작 1시간여 만에 발견하며 또 한 번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오늘 낮 12시 28분 고사리를 채취하다 방향을 알 수 없다는 70대 남성의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소방 당국은 19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상황실 GPS 위치정보를 토대로 도보 수색에 나섰습니다. 나르샤가 투입된 수색대는 1시간여 만인 오후 1시 54분 구조 신고자를 발견했고, 건강 상태가 양호해 안전하게 귀가했습니다. 나르샤의 활약은 지난 23일에도 있었습니다. 오전 9시 40분쯤 제주시 해안동 어승생 제2수원지 인근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던 60대 여성이 방향을 잃었다며 신고했습니다. 소방 당국이 현장에 도착해 수색에 들어갔고, 10시 10분쯤 구조 신고자를 찾아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나르샤가 현장에서 활약하며 구조에 힘을 보탰습니다. 나르샤는 지난달 14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모구리오름 인근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다 길을 잃은 70대 여성을 20여분 만에 발견하는 등 올봄 고사리철 길 잃음 사고 현장에서 잇따라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말부터 제주에선 고사리 채취 관련 소방 출동 건수는 75건으로, 구조 71건, 구급 4건이었습니다. 고사리 채취 중 길 잃음은 제주 봄철 안전사고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 558건 가운데 41.6%인 232건이 고사리 채취 중 발생했고, 전체 사고의 60.5%가 봄철 3~5월에 집중됐습니다. 기준점이나 이정표를 찾기 어려운 지형에서 바닥만 보고 고사리를 쫓다 보면 순식간에 방향 감각을 잃기 쉬운 데다, 굵고 부드러운 품질로 고가에 거래되는 제주 고사리를 찾아 도민은 물론 외지 관광객까지 중산간으로 몰리면서 사고를 키우고 있습니다.
2026-05-27 제주방송 강석창(ksc064@naver.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