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움은 누가 정했나”… 70년 제주미술, 이번엔 그림 뒤 구조까지 꺼낸다
제주미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불려 나온 건 늘 풍경이었습니다. 현무암, 바다, 해녀, 바람. 너무 오래 반복된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보다 배경이 먼저 소비되곤 했습니다. ‘제주다운 그림’이라는 말은 많았지만, 정작 누가 그 흐름을 만들었고 무엇이 기록에서 빠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오래 비어 있었습니다. 작품은 남았는데 그 구조가 흐릿했습니다. 오는 14일 제주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제주미술 70년의 흐름과 구조’ 컨퍼런스는 바로 그 비어 있던 안쪽을 공개 무대 위로 꺼내놓습니다. 전시보다 구조를 먼저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누가 제주미술을 만들었는지, 왜 어떤 흐름은 중심이 됐고 어떤 이름들은 지워졌는지, 그리고 지금 제주미술은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자리입니다. ■ ‘지역 미술’은 있었지만… 정작 기록 체계는 약했다 제주미술은 분명 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제주동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활동부터 제주미술협회와 장르별 단체들, 회화·조각·공예·디자인·서예까지 지역 안에서는 꾸준한 축적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외부 정착 작가들과 새로운 전시 공간, 독립 프로젝트들이 더해지면서 제주미술의 언어 역시 계속 달라져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변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남기고 정리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기에 흐름이 꺾였는지, 공공지원 확대 이후 생태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주 작가 유입 이후 지역 미술의 감각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왜 지역 미술의 세대 연결은 반복해서 약해졌는지 같은 질문들은 대부분 곳곳에 산재된 채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70년을 기념한다는 상징성에 앞서, 그동안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던 제주미술의 구조 자체를 처음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김영호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제주미술의 시기별 흐름을 정리하고,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섬문화와 자연환경이 지역 미술의 감각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습니다. 강민석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는 공공과 민간 영역의 균형 문제를 중심으로 지역 미술 생태계 구조 전환 가능성을 다루고, 강주현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는 ‘제주성(濟州性)’ 개념 자체를 다시 질문할 예정입니다. 특히 마지막 발제인 ‘확장된 장에서의 제주미술’은 지금 제주미술이 마주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제주미술은 더 이상 출신 지역만으로 설명될 단계가 아닌 탓입니다. ■ 지역 예술이 흔들리는 건 재능 부족 때문이 아니다 최근 지역 예술계 안에서는 비슷한 위기의식이 반복해 불거져 나옵니다. “작가는 계속 등장하는데, 생태계는 점점 얇아지고 있다.” 전시는 열리지만 기록은 남지 않고, 프로젝트는 많아졌지만 축적이 약하고, 공간은 늘 불안정한 기반 위에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제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광도시라는 강한 이미지 안에서 제주미술은 오랫동안 ‘풍경 소비’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 안쪽은 훨씬 복합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외부 정착 작가들이 빠르게 늘었고, 장르 경계는 흐려졌으며, 전시 중심 구조보다 협업과 플랫폼 기반 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역 미술의 비평 구조와 아카이브 체계는 여전히 안정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안팎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결국 지금 제주미술이 붙잡고 있는 건 ‘무엇을 그릴 것인가’ 이전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어떻게 이어지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가 다음 구조를 떠받칠 것인가에 더욱 절박하게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 ‘제주성’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이번 논의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은 ‘제주성’입니다. 예전에는 제주 자연을 담거나 지역 정서를 드러내면 비교적 쉽게 제주미술로 묶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제주에 정착한 외부 작가들을 어디까지 포함시켜야 할지, 디지털 기반 작업이나 플랫폼형 프로젝트도 제주미술인지, 지역성과 동시대성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합니다. 때문에 이번 컨퍼런스는 미술 행사이면서도, 동시에 지역 문화 생태계 전체의 미래 구조를 묻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림은 이미 그 자리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습니다. 이제 제주미술은 그림 뒤 구조를 함께 꺼내 같이 묻기로 했습니다. ‘제주미술 70년의 흐름과 구조’ 컨퍼런스는 14일 오후 3시 제주아트플랫폼 5층 다목적홀A에서 열립니다. 사단법인 한국예총 제주자치도연합회가 주최하며, JDC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2026-05-1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