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왼쪽) 벌목되기 전 벚나무가 살아있던 제성마을 모습(사진=주민 제공), (오른쪽)공사 확장을 이유로 벌목된 벚나무(사진=제주참여환경연대) [사진 2] 17일 열린 제주시 도두동 인근 옛 몰래물 마을 일원에서 열린 몰래물 혼디거념길' 행사. © JIBS 제주방송
제성마을 '정주목' 40살 벚나무 하루아침에 '싹둑'
공항 확장, 도시 개발로 마을서 쫓겨난 실향민 설움 폭발
주민들 대책위원회 구성, "공식 사과하고 대책 마련하라"
벚꽃이 거의 져버린 요즘 제주에선 여전히 벚나무가 '뜨거운 감자'인 곳이 있습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는 제성마을이라는 곳입니다.
지난 3월 이 마을에서 벚나무 6그루가 관할 시청에 의해 잘려 나갔습니다.
도로 확장이 명목이었습니다.
근데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했습니다.
시청을 방문해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행정의 행태를 규탄했습니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한 할머니는 '차라리 내 목을 베라'며 통곡했습니다.
일견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반응.
그러나 사연을 알고 보니 조금은 마을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이번에 벌채된 나무들이 '고작 나무 몇 그루'가 아니었습니다.
벚나무 등 12그루 싹둑, 무슨 일 있었나?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1년 8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주시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추진하며 제성마을 입구 동쪽에 있던 벚나무 4그루와 팽나무 2그루를 베어냈습니다.
당시 마을회장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자 시청 담당자에게 공사 중단을 요청하는 한편, 며칠 후인 8월 21일에 마을 임시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은 벌채된 벚나무가 마을 역사를 상징한다며 '도로 완공 후에는 동종의 나무를 식재하라'는 요구를 제주시 측에 전달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또 당시까지 벌채되지 않은 마을입구 서쪽지역 벚나무의 경우 도로공사 완공 후에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 그대로 보존하라는 입장을 제주시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습니다.
이에 제주시 측으로부터 알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마을회는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15일 마을입구 서쪽에 있던 6그루의 벚나무가 또 다시 벌채되면서 논란은 더 크게 재점화됐습니다.
주민들은 잠시 중단된 듯 보였던 공사가 주민들과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급작스레 재개됐다고 주장합니다.
제주시는 지난해 말로 임기가 종료된 마을회장 대신, 마을 통장의 동의를 얻어 나무를 베어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마을회는 통장은 행정기관의 하부조직으로 마을 주민의 대표성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마을회칙에 여타 이유로 총회가 열리지 않을 경우 마을회장의 임기가 종료되지 않고 연장된다는 내용이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마을의 '정주목' 벚나무,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
제주에는 '정주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인데요.
옛 제주에는 집에 대문이 없었습니다. 삼무(三無)의 섬 특징 중 하나입니다.
대신 대문 위치에 말이나 소가 마당으로 들어와 널어놓은 곡식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정낭'이라는 나무를 걸어 놓았습니다.
이때 이 정낭을 걸어 놓기 위해 대문 입구 양옆에 설치한 지지대가 정주목입니다. 나무(정주목)로도 만들지만 돌(정주석)로도 만듭니다.
제성마을 양 입구를 지켰던 이 벚나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주목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잘려 나간 나무들은 이 마을이 세워질 당시인 설촌(設村) 기념으로 1980년대 초반에 마을 어귀에 심어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멀리 꽃놀이를 갈 수 없던 주민들에게 이 나무들은 유일하게 벚꽃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였습니다.
당시 나무를 직접 심었던 분들은 몇 분 남아있지 않지만, 이들의 가족들 중 일부는 여전히 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을이 세워진 이후 마을과 함께 성장해 온 나무였던 것입니다.
이런 나무가 하루아침에 마을회의 동의도 없이 잘려 나간 겁니다.
실향민의 희망이 담긴 나무
제성마을은 1970년대에 실향민들이 세운 마을입니다.
현재 제주시 도두동 하수종말처리장 인근에는 '몰래물'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자어로는 사수동(沙水洞)이라고 불렸습니다.
지금도 사수항이라는 옛 이름을 이은 작은 항구가 남아 있습니다.
몰래물 애향회가 이 인근에 세운 애향비에 따르면 몰래물은 약 410년 전 현재 제주시 도두2동 사수항 일대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수백 년간 터를 가꾸며 살아가던 몰래물은 일제강점기 격동의 시대에 강제로 양분됩니다.
일제강점기 말엽인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현재 제주국제공항 자리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정뜨르비행장을 개항, 주민들은 농지와 가옥이 강제 수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몰래물 마을은 동쪽과 서쪽, 옛 사수마을와 새 사수마을로 나뉘게 됩니다.
수난은 계속됩니다.
1978년 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공항 확장 공사가 추진되는데, 옛 사수마을은 완전히 수용당하고, 새 사수마을은 공항 소음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도 1987년에 생긴 도두 하수종말처리장 때문에 다른 마을로 떠나야 했습니다.
몰래물은 결국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공항 확장과 신도시 개발의 양향으로 주민들은 '실향민' 신세가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을이 이번에 벚나무가 잘렸던 제성마을을 비롯해, 신성마을, 동명마을 등입니다.
특히, 제성마을은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이주한 마을이었습니다.
맨손으로 처음부터 마을을 일궈낼 수밖에 없었던 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개발은 마을을 갈가리 나누고, 새로 이주한 마을의 심은 나무마저 앗아가 버린 겁니다.
"그저 개발, 개발, 뭔 놈의 개발입니까"
마을 주민들이 움직였습니다.
기자회견을 넘어 대책위를 조직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성마을 왕벚꽃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는 벚나무가 잘려 나간 지 한 달쯤 지난 어제(17일) 오전 10시 제주시 도두동 사수항에서 '몰래물 혼디거념길'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는 제성마을이 생기기 전 제주공항 건설 등의 이유로 삶의 터전을 반강제적으로 옮겨야 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입니다.
올해 96세인 이 모 할머니는 몰래물에 있는 홀캐(홀천 앞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여한 이 할머니는 "1980년대 신제주가 생기고 연동, 또 옆으로 노형동이 생기는데 그때 홀천으로 똥물이 내려와서 힘들었다"며 "바닷물로 내려오는 똥물을 괄락괄락 마시면서 물질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도가 생기기 전에 우리는 흘러 내려오는 똥물을 먹고 살았다. 똥물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 물은 어떻게 먹나. 똥을 걷어두고 나오는 물을 바가지로 떠서 먹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벌채된 벚나무와 관련해 "벚꽃 심은 사람 따로 있고, 자르는 사람 따로 있고 이건 아니"라며, "벚나무를 심을 때 있었던 할머니가 있는데 오늘은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파서 못 나왔는데,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나무만 잘라봐라 너희 집에 가서 목 매달아 죽겠다'라고 말했다"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그러면서 "개발, 개발 무슨 놈의 개발입니까. 완전 주민들 다 개발이지"라고 비토했습니다.
권 모 할머니(88)는 "벚나무를 자르고 나서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다"며 "내가 오늘 아침에도 이거 보다가 그냥 눈물이 확 났다"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갔는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제성마을로 갔을 때 허허벌판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대책위원회는 시장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보상, 앞으로의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오면신 대책위원회 위원장(제성마을회 전 회장)은 "(고향을 등져야 했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실향의 아픔을 간직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의지를 담아 터를 잡은 제성마을에 설촌을 기념해 심은 왕벚꽃나무마저도 제주도정은 무참히 베어내고 짓밟았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오 위원장은 이어 "우리 대책위는 짓밟아도 끝끝내 싹을 틔우는 들풀처럼 베어버린 벚꽃을 다시 여기 조상이 얼이 깃든 몰래물 고향에 심어 우리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 숨 쉬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홀캐와 몰래물 혼디다님' 순서에 이어,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생명 돌봄을 기원하기 위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마을 신당에서 제문을 낭송하는 '고랭이당, 왕돌앞당 혼디비념', 시낭송 및 퍼포먼스를 펼치는 '몰래물 혼디열림'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특히, 몰래물 혼디열림에서는 벚나무 묘목 나눔이 있었습니다. 이 묘목은 베어진 나무에서 거둔 가지를 화분에 심어 다시 새순이 돋게 한 것이라 한층 의미를 더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항 확장, 도시 개발로 마을서 쫓겨난 실향민 설움 폭발
주민들 대책위원회 구성, "공식 사과하고 대책 마련하라"
벚꽃이 거의 져버린 요즘 제주에선 여전히 벚나무가 '뜨거운 감자'인 곳이 있습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는 제성마을이라는 곳입니다.
지난 3월 이 마을에서 벚나무 6그루가 관할 시청에 의해 잘려 나갔습니다.
도로 확장이 명목이었습니다.
근데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했습니다.
시청을 방문해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행정의 행태를 규탄했습니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한 할머니는 '차라리 내 목을 베라'며 통곡했습니다.
일견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반응.
그러나 사연을 알고 보니 조금은 마을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이번에 벌채된 나무들이 '고작 나무 몇 그루'가 아니었습니다.
벚나무 등 12그루 싹둑, 무슨 일 있었나?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1년 8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주시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추진하며 제성마을 입구 동쪽에 있던 벚나무 4그루와 팽나무 2그루를 베어냈습니다.
당시 마을회장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자 시청 담당자에게 공사 중단을 요청하는 한편, 며칠 후인 8월 21일에 마을 임시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은 벌채된 벚나무가 마을 역사를 상징한다며 '도로 완공 후에는 동종의 나무를 식재하라'는 요구를 제주시 측에 전달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또 당시까지 벌채되지 않은 마을입구 서쪽지역 벚나무의 경우 도로공사 완공 후에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 그대로 보존하라는 입장을 제주시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습니다.
이에 제주시 측으로부터 알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마을회는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 15일 마을입구 서쪽에 있던 6그루의 벚나무가 또 다시 벌채되면서 논란은 더 크게 재점화됐습니다.
주민들은 잠시 중단된 듯 보였던 공사가 주민들과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급작스레 재개됐다고 주장합니다.
제주시는 지난해 말로 임기가 종료된 마을회장 대신, 마을 통장의 동의를 얻어 나무를 베어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마을회는 통장은 행정기관의 하부조직으로 마을 주민의 대표성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마을회칙에 여타 이유로 총회가 열리지 않을 경우 마을회장의 임기가 종료되지 않고 연장된다는 내용이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마을의 '정주목' 벚나무,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
제주에는 '정주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인데요.
옛 제주에는 집에 대문이 없었습니다. 삼무(三無)의 섬 특징 중 하나입니다.
대신 대문 위치에 말이나 소가 마당으로 들어와 널어놓은 곡식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정낭'이라는 나무를 걸어 놓았습니다.
이때 이 정낭을 걸어 놓기 위해 대문 입구 양옆에 설치한 지지대가 정주목입니다. 나무(정주목)로도 만들지만 돌(정주석)로도 만듭니다.
제성마을 양 입구를 지켰던 이 벚나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주목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잘려 나간 나무들은 이 마을이 세워질 당시인 설촌(設村) 기념으로 1980년대 초반에 마을 어귀에 심어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멀리 꽃놀이를 갈 수 없던 주민들에게 이 나무들은 유일하게 벚꽃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였습니다.
당시 나무를 직접 심었던 분들은 몇 분 남아있지 않지만, 이들의 가족들 중 일부는 여전히 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을이 세워진 이후 마을과 함께 성장해 온 나무였던 것입니다.
이런 나무가 하루아침에 마을회의 동의도 없이 잘려 나간 겁니다.
실향민의 희망이 담긴 나무
제성마을은 1970년대에 실향민들이 세운 마을입니다.
현재 제주시 도두동 하수종말처리장 인근에는 '몰래물'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자어로는 사수동(沙水洞)이라고 불렸습니다.
지금도 사수항이라는 옛 이름을 이은 작은 항구가 남아 있습니다.
몰래물 애향회가 이 인근에 세운 애향비에 따르면 몰래물은 약 410년 전 현재 제주시 도두2동 사수항 일대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수백 년간 터를 가꾸며 살아가던 몰래물은 일제강점기 격동의 시대에 강제로 양분됩니다.
일제강점기 말엽인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현재 제주국제공항 자리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정뜨르비행장을 개항, 주민들은 농지와 가옥이 강제 수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몰래물 마을은 동쪽과 서쪽, 옛 사수마을와 새 사수마을로 나뉘게 됩니다.
수난은 계속됩니다.
1978년 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공항 확장 공사가 추진되는데, 옛 사수마을은 완전히 수용당하고, 새 사수마을은 공항 소음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도 1987년에 생긴 도두 하수종말처리장 때문에 다른 마을로 떠나야 했습니다.
몰래물은 결국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공항 확장과 신도시 개발의 양향으로 주민들은 '실향민' 신세가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을이 이번에 벚나무가 잘렸던 제성마을을 비롯해, 신성마을, 동명마을 등입니다.
특히, 제성마을은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이주한 마을이었습니다.
맨손으로 처음부터 마을을 일궈낼 수밖에 없었던 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개발은 마을을 갈가리 나누고, 새로 이주한 마을의 심은 나무마저 앗아가 버린 겁니다.
"그저 개발, 개발, 뭔 놈의 개발입니까"
마을 주민들이 움직였습니다.
기자회견을 넘어 대책위를 조직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성마을 왕벚꽃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는 벚나무가 잘려 나간 지 한 달쯤 지난 어제(17일) 오전 10시 제주시 도두동 사수항에서 '몰래물 혼디거념길'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는 제성마을이 생기기 전 제주공항 건설 등의 이유로 삶의 터전을 반강제적으로 옮겨야 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입니다.
올해 96세인 이 모 할머니는 몰래물에 있는 홀캐(홀천 앞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여한 이 할머니는 "1980년대 신제주가 생기고 연동, 또 옆으로 노형동이 생기는데 그때 홀천으로 똥물이 내려와서 힘들었다"며 "바닷물로 내려오는 똥물을 괄락괄락 마시면서 물질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도가 생기기 전에 우리는 흘러 내려오는 똥물을 먹고 살았다. 똥물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 물은 어떻게 먹나. 똥을 걷어두고 나오는 물을 바가지로 떠서 먹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벌채된 벚나무와 관련해 "벚꽃 심은 사람 따로 있고, 자르는 사람 따로 있고 이건 아니"라며, "벚나무를 심을 때 있었던 할머니가 있는데 오늘은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파서 못 나왔는데,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나무만 잘라봐라 너희 집에 가서 목 매달아 죽겠다'라고 말했다"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그러면서 "개발, 개발 무슨 놈의 개발입니까. 완전 주민들 다 개발이지"라고 비토했습니다.
권 모 할머니(88)는 "벚나무를 자르고 나서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다"며 "내가 오늘 아침에도 이거 보다가 그냥 눈물이 확 났다"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갔는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제성마을로 갔을 때 허허벌판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대책위원회는 시장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보상, 앞으로의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오면신 대책위원회 위원장(제성마을회 전 회장)은 "(고향을 등져야 했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실향의 아픔을 간직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의지를 담아 터를 잡은 제성마을에 설촌을 기념해 심은 왕벚꽃나무마저도 제주도정은 무참히 베어내고 짓밟았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오 위원장은 이어 "우리 대책위는 짓밟아도 끝끝내 싹을 틔우는 들풀처럼 베어버린 벚꽃을 다시 여기 조상이 얼이 깃든 몰래물 고향에 심어 우리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 숨 쉬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홀캐와 몰래물 혼디다님' 순서에 이어,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생명 돌봄을 기원하기 위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마을 신당에서 제문을 낭송하는 '고랭이당, 왕돌앞당 혼디비념', 시낭송 및 퍼포먼스를 펼치는 '몰래물 혼디열림'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특히, 몰래물 혼디열림에서는 벚나무 묘목 나눔이 있었습니다. 이 묘목은 베어진 나무에서 거둔 가지를 화분에 심어 다시 새순이 돋게 한 것이라 한층 의미를 더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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