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단속이 끄집어낸 ‘조용한 절규’… 제주공항은 이제 결과로 말해야 한다
제주국제공항 주정차 단속 이후 논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한 층위로 번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불편하다”는 감정적 반응이었다면, 지금은 “정책의 근거와 결과는 무엇인가”라는 검증 문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공항 운영체계를 바꿀 만큼 강한 행정력이 투입된 만큼, 단속을 선택한 주체는 그 선택의 이유와 성과를 공개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질문은 불편이 아니라 “근거와 결과”에 있다 3일, 단속 정책을 둘러싼 여러 반응을 살펴본 결과 가장 자주 등장한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단속 말고 다른 길은 없었나.” 누군가는 이 물음을 “불편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푸념”이라 치부합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이 흐르고 흘러 남긴 지점은 의외로 훨씬 무겁습니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불편 대 편리’로 구분되는 문제가 아니라 자칫 ‘근거 없는 행정 결정’일 가능성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 두 가지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제주공항은 차량 의존도가 높고, 대중교통 접근성이 제한된 구조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행정과 공항공사는 누구보다 먼저 그 조건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면, 그 조건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상식입니다. 질문은 하나에 모입니다. “차량 의존 구조를 가장 잘 아는 곳이, 왜 구조가 아닌 단속부터 선택했을까?” ■ 공항 운영의 원칙은 “구조 먼저, 단속은 그 위에” 공항 운영은 사람과 차량의 흐름을 책임지는 ‘구조 설계’입니다. 픽업과 드롭오프 동선은 공항의 기본 기능이고, 이동 선택권은 공항이 짊어진 공공성입니다. 이 선택권을 전제로 동선을 만들고, 그 위에서 질서 유지 수단으로 단속이 작동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입니다. 해외 공항 사례가 인용되는 이유도 바로 그 원칙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SFO), 시애틀(SEA), 타이베이(TPE), 로스앤젤레스(LAX) 같은 국제 허브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운영 원칙을 병리학처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먼저이고, 단속은 그 구조가 작동한 뒤에 등장합니다. ■ 검증의 핵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숫자’ “단속 이전과 이후의 실제 혼잡도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없다면, 어떻게 신뢰하느냐.” 이런 반론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 한 장면만으로 정책 효과를 단정하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정책 판단의 기준은 사진이 아니라 수치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단속을 시행한 주체가 정책을 밀어붙일 만큼의 근거를 갖고 있었다면, 그 근거는 말이 아니라 실적으로 증명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주시와 공항공사가 최소한 확인했어야 할 항목은 명확합니다. 도착층 차량 통행량이 어떻게 변했는지, 체류 시간은 줄었는지, 외곽을 반복 회전하는 차량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지, 버스·택시·렌터카 흐름의 구조가 바뀌었는지, 공항 주차장의 혼잡과 회전률이 어떤 방향으로 이동했는지, 교통약자 접근성은 개선됐는지 혹은 악화됐는지. 모든 항목이 정책 성과를 판단할 최소 기준입니다. 행정예고를 거쳐 계도기간을 운영했고 단속까지 밀어붙였다면,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뒤 결과를 공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설명은 “혼잡이 줄어든 것 같다”는 막연한 추정뿐입니다. 수치도, 공식 검증도, 변화 흐름을 확인할 데이터도 없습니다. 단속을 ‘안전 정책’이라고 부른다면, 그 안전을 확인할 근거가 따라와야 합니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정책 책임의 가림막은 아닙니다. ■ “안전 논리”의 반론… 구조 없는 단속은 안전이 아니라 책임 회피 단속을 옹호하는 목소리 중 일부는 “불편해도 안전이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일각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의 30km/h 제한을 근거로 들며, “불편하다고 규제를 없애자는 논리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출발 자체가 다릅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규제가 아니라 ‘구조 개선’이 먼저였습니다. 표지판, 노면 경고, 시야 확보, 과속 방지시설, 동선 정비. 위험을 만든 구조가 수정된 뒤, 속도 제한이라는 규제가 마무리 단계에 올라왔습니다. 구조 없이 규제를 얹은 게 아닙니다. 제주공항 단속은 이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택했습니다. 구조가 텅 빈 상태에서 단속이란 틀을 얹었고, 이제 와서 ‘텅 빈 정차장’을 보여주며 “효과가 있다”는 말만 반복됩니다. 그러니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어떤 위험이 있었고, 단속이 그 위험을 어떻게 해소했는가.” 그리고, “구조 개선 없이 단속만으로 안전이 확보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지금 행정과 공항공사의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 “다른 공항도 대기공간 없다” 반박, 제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또 다른 논리를 보면 “청주, 김포, 광주, 김해 같은 국내 공항에도 별도의 픽업 대기공간이 없다”는 경험담입니다. 곧 “다른 공항도 없는데 제주만 예외를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지적 자체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제주공항 정책 판단의 근거가 될 순 없습니다. 제주는 다른 지방공항과 구조적 조건이 다릅니다. △압도적인 렌터카 비중, △높은 수준의 관광객 이용률, △대중교통 접근성의 한계, △항공 수요가 단일 공항에 집중된 구조, △도민 생활 이동이 공항 접근에 직접 연결되는 특성. 이들 조건이 동시에 적용되는 국내 공항은 제주뿐입니다. 즉, “어디도 없으니 제주도 없어도 된다”는 식의 비교는 제주가 가진 구조적 특수성을 지워버린 논리일 뿐입니다. 다른 공항과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교통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주공항은 구조적 환경 자체가 달라 더 높은 수준의 교통 설계 책임이 요구되는 대상입니다. 즉, 비교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 마련을 더 먼저 검토했어야 하는 공항입니다. 도민 차량을 위한 구조 설계가 비어있는 상황을 “다른 공항도 없었으니까 괜찮다”는 말로 덮는 것은 기준을 낮추는 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항 정책은 “남들도 안 하니 우리도 안 해도 된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각 공항이 가진 특성과 수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설계 방안 역시 그 조건 위에서 달라져야 합니다. 제주는 도민 이동권과 관광 이동 수요가 모두 공항으로 집중되는 구조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픽업 대기 공간·단기 정차 구역·회차 동선 등 최소한 구조 설계 검토는 단속 이전에 선행돼야 했습니다. 제주공항 단속 정책을 “다른 곳도 안 하니 제주도 안 해도 된다”는 논리로 해설하는 것은, 제주의 조건을 알면서도 외면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 정책은 시작보다 결과가 중요 단속은 행정력의 실행입니다. 하지만 정책의 정당성은 그 결과가 입증합니다. 혼잡이 실제 줄었는지, 불편은 개선됐는지, 외곽으로 밀린 차량이 없었는지, 주차장과 접근도로의 포화는 줄었는지, 교통약자 접근성은 강화됐는지. 이 모든 질문은 결과가 말해줍니다. 그 답은 행정당국과 공항공사가 내놓아야 합니다. 이번 논란이 불편의 호소로만 남지 않아야 하는 건, 정책이라는 이름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가 없다면 근거는 텅 비고, 근거가 없다면 정책은 신뢰를 잃습니다. ■ 단속이 아니라 ‘증명’의 시간 논쟁이 흘러가 닿는 곳은 하나입니다. “제주공항은 결과로 말해야 한다.” 구조 없이 단속만 앞세운 결정이었다면, 그 책임 역시 공항과 행정이 감당해야 합니다. 반대로 정책이 옳았다면, 그 옳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줄 차례입니다. 정책은 단속으로 시작되지만, 설명과 검증으로 끝납니다. 그 마지막 장을 채우는 역할은 이제 행정과 공항공사에 있습니다. 도민을 구조 밖으로 밀어낸 이번 결정이 무엇을 남길지, 대답은 말이 아니라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근거 있는 행정인지, 비어 있는 단속인지, 그 판단은 현장 그리고 데이터가 말합니다.
2025-12-03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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