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면 버티고, 그림 밖이면 무너지는 마음을 마주하다”
대정읍 동일리, 갤러리 감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먼저 느껴지는 건 색이나 형상이 아니라 공기의 변화입니다. 작가가 지난 몇 해 동안 다시 회화로 돌아오며 견뎌온 마음의 잔향이 전시장 안쪽에서 조용히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작업 앞에서는 늘 마음이 먼저 드러난다”며, “정돈되지 않은 감정도 화면 위에 올려두고 본다”고 말합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비추는 말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지가 아니라, 마음이 어느 지점에서 멈췄는지를 가장 높은 밀도로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관람은 그 멈춤을 함께 지나가는 일로 완성됩니다. ■ 화면은 고요해 보이지만, 가까이 갈수록 감정의 층이 움직인다 작품은 멀리서 보면 고요하게 정렬된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두세 걸음 더 다가서는 순간, 화면 아래 눌려 있던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색의 층은 한 번에 올라간 면이 아니라 지웠다 다시 올리고, 머뭇거리다 멈춘 자리들이 겹치며 쌓인 두께입니다. 그 두께는 완성과 미완의 경계를 오가던 마음의 흔적들을 그대로 품고 있고, 그 어디에도 ‘정답’ 같은 방향은 없습니다. 문성은 작가는 화면을 결론 쪽으로 끌고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감정이 한 지점에서 멈추는 순간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의 온도를 그대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작품 앞에 서면 형태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마음의 속도입니다. 정돈되지 않은 결을 숨기지 않은 표면은, 오히려 가장 섬세한 내면의 지형을 이루고 관람객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정까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 제주에서의 시간은 풍경이 아니라 ‘기압’으로 남았다 작품 속에는 구체적인 장소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주에서 시간은 화면 깊숙이 스며 있습니다. 그 흔적은 풍경처럼 보이지 않고, 기압으로 각인됩니다.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틀던 저녁의 낯선 무게, 비가 오기 직전 공기가 낮게 내려앉던 눅눅한 긴장, 여름의 습기가 천천히 몸을 감싸던 답답한 오후, 해가 유난히 낮게 깔리며 마음까지 희미해지던 겨울날의 온도까지. 모든 변화는 장면으로 남지 않고, 감정을 밀어 올리고 가라앉히는 매우 또렷한 압력으로 기억됩니다. 그 압력이란 기억은 화면에서 색의 짙고 옅음, 여백의 깊이, 마른 붓질의 속도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관람객은 특정 풍경을 보지 않는데도, 제주의 계절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풍경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 감저는 작품을 밀어 올리지 않고, 작품도 공간을 잠식하지 않는다 갤러리 감저의 오래된 건물은 작품을 떠받치거나 부풀리지 않습니다. 작품 또한 공간을 점령하려 들지 않습니다. 두 요소는 서로를 밀어내지도,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은 채 관람객의 걸음을 늦춥니다. 이 느린 호흡 속에서 문성은의 회화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속도로 움직입니다. 크게 울리지 않지만, 깊게 내려앉습니다. 짧은 순간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시점에서 마음 한쪽을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동안 오래 붙드는 것은 특정 색도, 형태도 아닙니다. 언어로 옮기기 어려운 감각 하나 묵직하게 남아, 이유도 없이 오래 맴돕니다. 그 진동이 마지막 페이지처럼 안쪽에서 가만히 부유합니다. ■ 감정을 다듬는 대신 ‘지나가는 그대로’ 남기는 태도 문성은 작가는 2007년 국민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제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시 붓을 잡은 최근 3년 동안 감정을 정리하거나 깎아내기보다, 지나가는 방식을 그대로 두는 태도를 선택해 왔습니다. 작가는 “그림 앞에서는 늘 서툰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그 ‘서툼’이 화면의 밀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mso-style-name:"바탕글";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font-size:10.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제주 푸른 풍경’(2023), ‘제주 풍경과 사람’ 여성작가 발굴 지원전(2022), ‘문성은×하이재 전’(2022)을 거치며 {mso-style-name:"바탕글";line-height:160%;margin-left:0pt;margin-right:0pt;text-indent:0pt;margin-top:0pt;margin-bottom:0pt;text-align:justify;word-break:break-hangul;layout-grid-mode:both;vertical-align:baseline;mso-pagination:none;text-autospace:none;mso-padding-alt:0pt 0pt 0pt 0pt;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font-size:10.0pt;color:#000000;mso-font-kerning:0pt;} -->형성된 감각은 이번 전시 ‘그려지는 삶들(Picture of life)’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합니다.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스스로 모습을 만들어왔는가 되묻게 하는 제목이자, 작가가 오랫동안 응축해 온 내면의 움직임이 조금씩 표면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람객이 가장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완성된 형태라기보다는 형태가 생겨나기 직전의 숨, 멈칫하는 순간의 체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전시명은 작업의 전체 감각을 품은 한 문장으로 작동합니다. 전시는 대정읍 동일리 갤러리 감저에서 12월 2일까지 이어지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2025-11-3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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