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아니고 전시와 플랫폼이었다”… 겨울 제주, 관광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리조트와 카페, 포토스팟이 제주 관광의 기본 문법을 만들어온 건 사실입니다. 겨울이 되면 질문은 달라집니다. ‘어디를 찍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또 ‘얼마나 머물렀느냐’입니다. 바람과 비가 일정을 흔들수록 여행객은 바깥을 줄이고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안에서 시간을 쓰는 방식이 여행의 질을 결정합니다. 올겨울 제주에서는 이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장면들이 동시에 포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시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 여행 플랫폼입니다. ■ 전시는 ‘볼거리’가 아니라 ‘머무는 경험’으로 이동한다 17일, 본태박물관이 연말까지 현장 발권 관람료 할인을 내건 건 가격 인하 그 이상으로 읽힙니다. 겨울 관광의 중심을 전시 경험으로 옮겨보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관광에서 전시는 오랫동안 부대 코스 정도로 취급돼 왔습니다. 일정이 남으면 들르고, 시간이 없으면 생략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번 할인 구조는 그 순서를 바꿉니다. 먼저 들어오게 만들고, 들어온 뒤에는 머무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지금 들어오면 체감 가격이 내려간다’는 메시지는 즉각적이며, 겨울 시즌에 특히 유효합니다. ■ 안도 다다오의 건축, 전시 이전에 ‘체류의 리듬’을 만듭니다 본태박물관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가 설계한 공간입니다. 노출 콘크리트와 물, 빛의 절제된 연출은 작품 감상의 배경을 넘어 관람자의 호흡을 바꿉니다. 이곳에서 전시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걷고 멈추는 리듬’으로 작동합니다. 관광의 문법은 관광지 순례(Sightseeing)에서 천천히 바라보고 머무는 관람(Slow Looking), 나아가 공간에 깊게 잠기는 체험(Immersive Experience)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보다, 60분의 체류가 기억으로 남는 여행을 만납니다. ■ 전통 공예와 세계 현대미술, 제주에서만 가능한 배열 본태박물관의 전시는 한국 전통 공예의 촉감 위에 피카소·달리·백남준·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한 동선으로 배치합니다. 장르의 나열이 아니라 감각의 대비입니다. 손으로 축적된 시간과 이미지·매체의 실험이 충돌하며 관람자의 질문은 확장됩니다. 제주라는 장소성은 이 대비를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바깥 자연의 밀도와 실내 인공의 밀도가 서로를 밀어 올립니다. 이 조합은 쉽게 복제하기 어렵습니다. ■ 플랫폼에서도 시작되는 변화... ‘할인’의 방식이 달라진다 이 같은 흐름은 전시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제주자치도가 지원하고 제주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제주여행 공공플랫폼 ‘탐나오’ 역시 서비스 오픈 10주년을 맞아 겨울 비수기를 겨냥한 대규모 동행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숙박·관광·렌터카 등 주요 상품을 최대 50%까지 할인하는 동시에, 여행자 안전을 고려한 보험 연계 혜택과 취약계층 아동의 제주여행을 지원하는 기부 캠페인을 함께 구성했습니다. 소비를 자극하는 할인에서 나아가, 안전·체류·사회적 환원을 묶은 설계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 겨울 제주 관광의 승부처는 ‘날씨 리스크’가 아니라 ‘콘텐츠 설계’ 겨울은 이동이 줄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수요가 늘어나는 계절입니다. 이 조건에서 전시는 숙박과 식음, 소비 동선과 결합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콘텐츠입니다. 관람 후 식사로 이어지는 흐름, 기념품 소비, 주변 권역 체류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플랫폼 역시 단기적인 특가 경쟁을 넘어, 체류의 질과 안전을 함께 설계할 때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태박물관의 현장 할인과 탐나오의 동행 이벤트는,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많이 모으는 관광’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며 경험하게 할 것인가’가 지금 과제입니다. ■ 할인은 입구이고, 성과는 ‘머문 시간’에서 갈린다 관람료 할인이나 쿠폰은 어디까지나 시작입니다. 성과는 그 안에서 얼마나 깊게 머물렀는지, 그리고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해설과 교육 프로그램의 밀도, 지역 창작자와의 연결, 인근 상권과의 협업이 더해질수록 이런 시도는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관광이 기능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여행은 안으로 들어옵니다. 올겨울 제주에서는, 그 ‘안’의 중심에 전시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2025-12-1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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