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처음으로 너의 세계가 ‘틀린 언어’가 아니었다는 걸, 이 전시장에서 알게 될지도 몰라”
전시장에는 종종 너무 많은 설명이 걸립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끔은 작품보다 그런 말들이 먼저 벽을 세웁니다. 그런데 어떤 작업들은 끝내 설명되지 않습니다. 말보다 먼저 사람 안쪽 어딘가를 건드립니다. 오래 바라보다가도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친밀함을 느낍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시간, 이번 전시는 그 낯설고도 미묘한 감각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제주에서 열리는 공동 전시 ‘크래들(Cradle), 우리 그 너머’는 바로 그곳에서 출발합니다. 전시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란히 세워 비교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이해했다고 쉽게 결론 내리지도 않습니다.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한 공간 안에서 부딪히고 흔들리며, 아주 천천히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꺼내놓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품을 보기보다 먼저, 그 공간 안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체류의 감각은 생각보다 길게 남습니다. 오는 16일부터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시작하는 ‘크래들(Cradle)’에는 제주 지역 국제학교 학생 24명과 전국 장애 청소년 예술인 12명이 참여합니다. 비영리단체 ABST와 제주국제평화센터가 공동 주최·주관하며 제주자치도가 후원합니다. ■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 감각부터 흔들다 이번 전시는 시작 방식부터 조금 다릅니다. 국제학교 학생들은 장애 청소년 예술인의 작품을 받아든 뒤 그것을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을 ‘해석’하거나 ‘번역’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작품 안에 남아 있는 낯선 리듬과 감각의 흔적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익숙한 비율은 일부러 무너졌고, 정리된 구도는 자주 비켜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틈에서 감정은 더 또렷하게 살아났습니다. 작품들은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선은 조금씩 흔들리고, 색의 층위도 쉽게 균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어긋남 때문에 사람은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전시장 안에는 너무 빨리 낯설다고 밀어냈던 감각들이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 ‘배려’의 문법으로 가지 않아… 시선의 방향부터 바꿨다 장애 예술을 다루는 전시는 종종 비슷한 단어들 안으로 흘러갑니다. ‘극복’, ‘치유’, ‘희망’. 익숙하고 안전한 문장들입니다. 하지만 ‘크래들’은 그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관람객을 감동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연민의 자리 위에 세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질문을 남깁니다. 정상이라고 믿어왔던 감각은 정말 흔들림 없는 기준이었을까. 전시에 참가한 제주 지역 장애 청소년들은 누군가의 보호 서사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감각을 밀어 올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세계를 화면 안에 남깁니다. 제주영지학교 송우관(16), 서귀포 온성학교 고현준(17), 김용원(17), 토평초등학교 이윤아(11) 학생 등이 참여합니다. 특히 김용원 학생은 3년 연속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며 꾸준히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왔습니다. 작품들 앞에 오래 서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설명이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반복되는 선 하나가 불안의 호흡처럼 남기도 하고, 조금씩 어긋난 색의 층위가 쉽게 말로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밀어 올리기도 합니다. 익숙하다고 믿어온 감각의 방식이 사실은 얼마나 좁은 것이었는지, 관람객들은 천천히 마주하게 됩니다. ■ “경계 없는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 18세 기획자가 던지는 질문 이번 전시는 NLCS Jeju 재학생 이준석(18) 학생이 기획했습니다. 비영리단체 ABST(Art Beyond Some Thresholds)를 설립해 3년째 장애·비장애 청소년 공동 전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교내에서는 ‘세계 자폐인의 날’ 관련 캠페인도 직접 진행해왔습니다. 다만 이번 전시는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마주 서는지를 오래 바라봅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각의 거리 자체를 오래 바라봅니다. 이준석 학생은 “인간이 스스로를 안전하게 느끼기 위해 만들어낸 믿음 체계와 반복되는 패턴 같은 연약한 구조를 탐구하고 싶었다”라며 “자폐 예술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학생들의 작업을 함께 전시하면서 하나의 주제 안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관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관람객들이 어떠한 경계도 없는 순수한 예술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VR 전시장까지 확장한 감각… ‘어디서 보느냐’보다 ‘어떻게 닿느냐’ 전시에는 회화와 설치, 영상 등 40여 점이 공개됩니다. 3D 가상현실(VR) 기반 온라인 전시 공간도 함께 운영됩니다. 단지 작품을 디지털 화면 안으로 옮겨놓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관람객은 전시장 안을 직접 걸어 다니듯 작품 사이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최근 예술은 장소보다 접속 방식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공간에서 보느냐보다, 어떤 감각으로 닿게 하느냐에 더 집중하는 흐름입니다. ‘크래들’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개막식에서는 서귀포 온성학교 양의걸(17) 학생과 NLCS Jeju 김도윤(11) 학생이 함께 피아노 협주를 선보입니다. 누군가는 그 장면을 협업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 짧은 연주 안에서는 서로 다른 감각들이 잠시 같은 박자로 숨을 맞춥니다. 전시 작품을 활용한 한정판 굿즈 판매 수익금은 지난해처럼 제주 지역 소외 아동 지원에 사용됩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됩니다.
2026-05-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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