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졌다는 이유로 끝난 것은 아니다… 제주 삼나무, 관리 대상에서 ‘다시 쓰이는 존재’로
제주에서 삼나무는 늘 설명이 따라붙는 나무였습니다.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왜 문제가 되는지, 왜 베어야 하는지. 삼나무 앞에서는 언제나 변명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주에서는 이 나무를 둘러싼 말의 방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없애야 하느냐, 남겨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전환을 또렷하게 보여준 장면이 있습니다. 나무와 사람을 생각하는 한국리본ReBorn협회는 지난 24일 생태전환지원재단과 제주시 이호MH호텔에서 제주 삼나무 숲 보전과 생태적 관리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공동 사업 추진을 골자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26일 밝혔습니다. 이번 협약은 삼나무를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순환시키고, 사회와 다시 연결하는 자원으로 다루겠다는 합의입니다. 제주에서 삼나무를 둘러싼 오랜 논쟁을 실행 가능한 구조 안에서 풀어보겠다는 움직임입니다. ■ 지킬 것인가, 벨 것인가를 넘어서 이번 협약의 핵심은 태도보다 그 방식에 있습니다. 무조건 보존하자는 주장도, 전면 제거하자는 판단도 아닙니다. 지금 상태에서 삼나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협약에 따라 두 기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생태·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벌채되거나 버려지는 삼나무를 예술과 문화 콘텐츠로 연결하며,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삼나무를 둘러싼 선택지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베어내는 순간 끝나는 나무가 아니라, 베어진 이후에도 역할을 갖는 나무로 다루겠다는 방향입니다. 이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제주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삼나무는 오랫동안 ‘문제 해결의 대상’이었지, ‘관리의 대상’으로 다뤄진 적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예술은 꾸미는 일이 아니라, 남기는 방식이다 협약에서 예술은 장식처럼 붙지 않습니다. 삼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실천 방식입니다. 한국리본ReBorn협회가 이어온 작업은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버려진 삼나무를 다시 들여다보고, 그 나무가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작품 안에 남기는 일입니다. 곧게 자라지 못하고 바람에 뒤틀린 결, 방풍림으로 서 있던 자리, 그리고 결국 베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삼나무는 말이 없지만,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작품은 그 흔적을 지우지 않습니다. 다듬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채 관객 앞에 놓습니다. 이 작업은 삼나무를 특별하게 만들기보다, 그동안 너무 쉽게 지워졌던 존재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 참여,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되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외부 평가를 통해 검증된 바 있습니다. 한국리본ReBorn협회는 삼나무 자원순환을 예술과 환경, 시민 참여로 연결한 활동으로 지난 연말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 창출 사례로 평가받아 지속가능발전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업무협약은 그 성과를 단발성 프로젝트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교육과 기부, 시민 참여를 하나의 구조로 확장하려는 다음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이어집니다. 협약이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까지 함께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지명기부금 제도를 통해 일반 시민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며 삼나무 생태전환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부는 더 이상 추상적인 선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나무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에 쓰는지가 구체적으로 연결됩니다 삼나무 한 그루가 교육과 접목되고, 작품으로 남고, 사람들의 기억 안에 다시 자리 잡는 구조입니다. ■ 제주의 다음 질문 한국리본ReBorn협회는 협약을 계기로 제주에서 새로운 형태의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비로 끝나는 관광이 아니라, 머무르며 이해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삼나무 숲을 지나가며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나무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제주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치유’라는 단어는 어쩌면 이런 방식을 통해 조금 더 현실적인 얼굴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박미영 한국리본ReBorn협회 대표는 이번 협약을 제주가 추구해 온 ‘치유의 섬’ 이미지와 연결지었습니다. ”관광 소비가 아니라, 머무르고 이해하는 방식인 이너 투어리즘(inner tourism)을 준비하고 있다”며 “기후 위기와 탄소 저장고로서 숲, 지역 생태 자원을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삼나무를 학습의 대상이자 사유의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업무 협력을 통해 생태전환지원재단의 체계화된 사업 지원과 노하우 공유에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삼나무” 이번 MOU는 큰 구호를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바꿉니다. 삼나무를 없앨 것인가,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삼나무는 여전히 서 있고, 많은 곳에서는 이미 베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베어졌다는 이유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이제 삼나무는, 다시 쓰이는 존재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26-01-26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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