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숨결, 고요 속에 피어오르다.. “스러지는 것들이 남긴 치유의 순간”
# 자연은 흐트러짐 없이 제 흐름을 따라 살아갑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저 ‘스스로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났다가 스러지고,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파도처럼 자연은 말없이 자신의 리듬을 이어갑니다.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거칠게. 그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도 자연은 결코 자신의 질서를 잃지 않습니다. 그 자연의 순리를 닮은 화폭입니다. 작품은 그저 풍경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그 안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습니다. 4월 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여는 강부언 작가의 제62회 개인전 ‘스스로 그러하다’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탐구해온 작가의 깊은 사유가 집약된 전시는, 그의 대표 화두인 ‘삼무일기(三無日記)’를 중심으로 한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변화하는 자연과 사라지는 풍경 속에서 제주의 숨결을 기록한 작가의 화폭은,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자연의 본질을 되새기게 합니다. 강렬한 여운과 깊은 사유를 품은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으로 마음의 결을 두드리며, 숨죽인 감각을 일깨웁니다. ■ 자연과 인간이 맞닿은 화폭.. ‘삼무일기’의 기록 작가의 작품 세계는 제주의 전통적 가치관인 ‘삼무일기’에서 출발합니다.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으며, 대문이 없다’는 삼무(三無) 정신은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도 강인한 자생력으로 살아온 제주인의 삶과 공동체적 가치관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이 정신을 예술적 화두로 삼아 제주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틋한 정서를 화폭에 담아왔습니다.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걸 넘어, 화폭에는 자연이 지닌 고유의 리듬과 삶의 흔적이 배어 있고, 개발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은 또 상실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섭리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 사라지는 풍경과 남겨진 여운 화폭에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스며 있습니다. 관광지로 변해버린 백로 서식지, 흔적 없이 사라진 돌담길, 개발로 파헤쳐진 제주의 땅. 강부언 작가는 이 아쉬운 상실을 안타까움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대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존재와 소멸이 어우러지는 풍경으로 담아냅니다. “자연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진다”라는 작가는 진정한 삶의 질은 따뜻한 가슴에서 비롯되며, 이를 위해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화폭은 자연과 공명하며 그 본질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정이자, 존재의 흔적을 되새기는 예술적 기록이 됩니다. ■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스스로 그러하다’의 미학 대표작 ‘삼무일기-백로 안식’은 강부언의 예술 세계가 지닌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백로들이 고요히 휴식을 취하는 장면 속에는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경에 대한 아쉬움과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담담한 시선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작품은 재현 수준을 넘어,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위치에 대한 깊은 성찰로 관객을 이끕니다. 이경모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사유가 교차하는 미학적 지평을 보여준다”라며, “작가는 자연의 질감과 결을 손대지 않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스스로 그러하다’의 철학을 완성한다”라고 평가합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본연의 흐름을 담아낸 화폭은 독창성과 상징성의 경계를 확장하면서 깊은 울림을 더합니다. ■ 제주의 숨결을 담은 화폭.. 자연이 들려주는 잔잔한 속삭임 작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흐름을 지켜보며 화폭에 그 순간을 담아냅니다. 제주의 숨결과 변화 속에서 남기는 기록은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잔잔한 속삭임과도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라지는 풍경과 남겨진 여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깊은 사유의 장을 펼쳐 보입니다. 전시 오프닝 리셉션은 4월 2일 오후 5시이며, 관람은 전시 기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가능합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입니다. 1961년 제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서울예술대학교와 추계예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후 198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제주, 서울, 미국, 일본 등에서 61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또한 국제아트페어·단체전에도 400여 회 이상 꾸준히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제주의 자연과 삶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는 ‘삼무일기(三無日記)’라는 독창적인 화두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왔습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 회원, 초록동색 회원으로 활동하며 제주시 명림로에서 ‘아트인명도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5-03-20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