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문턱’을 지우는 기술”... 제주가 먼저 표준이 됐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여행은 여전히 ‘조건부’였습니다. 계단 하나, 안내 한 줄, 예약 버튼 하나가 누군가에겐 ‘갈 수 있음’을 순식간에 ‘갈 수 없음’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제주는 그 문턱을 감성으로 덮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으로 지웠습니다. 제주관광공사는 지난 16일 서울 웨스틴 조선에서 열린 ‘2025 무장애 관광 거버넌스 총회·포럼’에서 무장애 관광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관광공사 사장 공로상을 수상했다고 19일 밝혔습니다. 이번 총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무장애 관광 기반 확대와 협력 체계 강화를 위해 마련한 전국 단위 협업 무대였습니다. 관광정책의 무게중심이 ‘유치’에서 ‘경험의 완성도’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 공로상 수상은 무장애 관광이 제주의 정책 경계를 넘어 경쟁력의 궤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풀이됩니다. ■ 무장애 관광의 본질은 ‘경사로’가 아니라 ‘결정권’ ‘무장애 관광(BarrierFree Tourism)’은 시설 개선에만 머무는 개념이 아닙니다. 정보의 정확도, 서비스의 예측 가능성, 현장에서의 응대 방식까지 포함해, 결국은 ‘여행의 결정권을 누구에게 돌려주느냐’의 문제로 수렴됩니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열린관광지 사업이 2015년부터 누적돼 왔지만, 지속성과 연계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며 거버넌스를 정례화할 필요성을 제기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주는 ‘물리적 접근성’에만 안주하지 않고, 여행 전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무장애 관광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요즘 관광 유통 시장은 플랫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검색→비교→예약→이용→후기’라는 흐름 속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행지는 선택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무장애 관광이 더 이상 ‘배려 캠페인’이 아니라, ‘전환율’의 언어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 ‘열린 관광 페스타’, 이벤트가 아니라 시장을 움직인 실험 제주가 올해 밀어붙인 ‘모두를 위한 제주, 열린 관광 페스타’는 무장애 관광을 어느 ‘특정한 날의 메시지’가 아니라, ‘한 달짜리 생활형 관광 모델’로 구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공사는 지난 4월 7일부터 5월 6일까지 한 달간 제주 전역에서 페스타를 운영하며, 장애인·고령자·임산부·영유아 동반 가족 등 관광약자들이 보다 편안하게 이동하고 체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과는 규모보다 구성에서 먼저 드러났습니다. 기존 2주 운영에서 한 달로 기간을 늘렸고, 민관 협업의 폭도 확장했습니다. 도내·외 130개 기관과 기업이 참여했으며, 비짓제주 쿠폰 다운로드는 622건으로 집계될 만큼 호응이 이어졌습니다. 동반 가족을 포함하면 최소 1,000명 이상이 혜택을 누렸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기아의 ‘초록여행’과 현대차그룹의 ‘휠셰어’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약자 400명이 별도로 제주를 방문했다고 공사는 전했습니다. 핵심은 사람을 불러 모은 데 있지 않았습니다. 여행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든 구조가 주효했습니다. 접근성의 평가는 체감으로 귀결됩니다. 공사는 “무장애 올레길 걷기(올레 10코스 휠체어길) 참여 114명, 열린관광 콘서트 참여 180명 등을 통해 ‘함께 즐기는 관광’을 무대 위 메시지가 아니라 실제 동선으로 구현했다”고 밝혔습니다. ■ 관광산업의 승부처는 ‘화려함’이 아니라 ‘불편의 제거’ 관광은 다시 ‘기본값’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예쁜 곳’은 넘쳐나고, 결국 선택을 가르는 기준은 피로도와 리스크를 얼마나 줄여주느냐입니다. 길을 헤매지 않게 만드는 것, 예약을 실패하지 않게 하는 것, 이동이 끊기지 않고 서비스가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 이 조건을 먼저 충족시키는 지역이 시장을 선점합니다. 무장애 관광은 이런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비추는 렌즈입니다. 관광약자가 겪는 불편은 사실상 모든 여행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불편의 예고편이기 때문입니다. 유모차를 끄는 가족, 무릎이 불편한 중장년, 짐이 많은 여행자, 낯선 언어의 외국인까지. 제약의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제주의 무장애 관광은 결국 ‘특정 집단을 위한 별도 코스’가 아니라, ‘모두가 덜 불편한 기본 설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 ‘수상’보다 중요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수상은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것은 제주가 “그래서,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무장애 관광을 고도화한다는 것은 더 많은 경사로를 놓는 일이 아니라, 정보 표준과 서비스 품질, 현장 수용태세를 더 촘촘히 맞추는 일입니다. 그 끝은 결국 지역 관광사업체의 이해도와 참여, 다시 말해 현장 생태계의 수준으로 수렴됩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무장애 관광을 제주 관광의 핵심 가치로 삼아 고도화해 나가겠다”며 “관광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관광객이 편안하게 제주를 여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제주는 이제 ‘멋진 관광지’라는 평가를 넘어, ‘여행의 권리’를 산업의 언어로 재편하는 무대에 올라섰습니다. 관광 회복을 넘어 성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다음 시장은 불편을 먼저 지워낸 곳이 가져갑니다. 제주는 그 방향으로 들어섰고, 성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2025-12-19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