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떠난 화가는, 제주를 놓지 않았다”…100년 뒤 다시 보는 양인옥의 빛
어두운 실내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몸을 숙인 사람, 고개를 돌린 사람,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민 아이. 창을 통과한 빛이 얼굴과 손등, 옷자락에 닿고 갈색과 검정이 짙게 깔린 바탕에서 몇몇 형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빛의 화가’라는 익숙한 수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양인옥(梁寅玉·1926~1999)의 그림은 처음부터 환하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서양화를 익힌 뒤 호남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화가는 짙고 무거운 색조에서 출발해 수십 년에 걸쳐 밝고 유연한 색과 붓질로 옮겨갔습니다. 인물과 누드, 한라산과 항구, 과수원과 바다를 오가며 이어온 화업이 탄생 100년을 맞아 다시 제주에 펼쳐집니다. 오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갤러리 누보에서 열리는 양인옥 탄생 100주년 특별전 《The Texture of Light-빛의 질감》입니다. 1950년대 초기작과 1970년대 작품을 비롯해 인물, 누드, 자연을 다룬 시기별 작업이 함께 나옵니다. 후기의 화려한 색에 가려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초기작까지 나란히 걸리면서 양인옥 회화의 출발과 변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색채의 양인옥’ 이전, 짙고 단단했던 후기 작품을 먼저 떠올린다면 1950년대 그림은 적잖이 낯설 수 있습니다. 옷을 입은 여인과 일상의 남녀가 등장하고 갈색과 검정 등 낮은 색조가 깊숙이 깔리는데, 탄탄한 데생을 토대로 어둠 속에서 밝은 부분을 끌어올리며 형태를 세운 흔적이 선명합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색과 붓질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초반에는 따뜻한 난색 계열의 피부와 대담한 터치가 힘을 얻고, 후반으로 갈수록 푸른 기운을 띤 회색조와 한결 가벼운 붓질이 자리를 넓혀갑니다. 1981~1982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 드 쇼미에르’에서 회화를 연수한 이후 나타난 변화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누드에서는 색과 형태가 한층 정제됩니다. 초기와 후기를 함께 놓으면 변화의 폭은 더욱 또렷합니다. 후기의 밝은 색채는 어느 시점 갑자기 등장한 결과라기보다 짙은 색층과 견고한 형태 감각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다듬어진 화법에 가깝습니다. 전시 제목 《The Texture of Light》 역시 이런 흐름에서 읽힙니다. 양인옥의 빛은 물감의 두께와 붓질에서 생겨났습니다. 색을 쌓고 덧입히는 방식에 따라 피부와 바다, 산과 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얻었고, 자연을 옮기는 색과 붓의 움직임도 시기마다 달라졌습니다. ■ 캔버스부터 만들어야 했던 시절… ‘질감’에 남은 시간 1950년대 작품에는 미술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없었던 시대의 사정도 배어 있습니다. 관련 연구에는 양인옥이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광주 송정리 미군부대에서 나온 두꺼운 천을 마련한 뒤 양잿물에 삶아 부드럽게 만들고 직접 틀에 씌워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흰색 물감을 만들고 목탄을 구워 스케치 재료로 사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와 함께 무엇에 그릴 것인가까지 해결해야 했던 때입니다. 천을 손질하고 바탕을 만들고 물감을 올리는 과정 자체가 작업이었고, 초기작에 남은 두꺼운 색과 거친 표면 역시 당시의 제작 환경과 떼어 보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질감’은 붓질의 효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재료를 마련하고 손질한 흔적, 색을 밀어 올리고 다시 덧댄 과정까지 그림에 새겨져 있습니다. 1950년대의 묵직한 색층과 후기의 가벼워진 붓놀림을 나란히 보면 한 화가가 재료를 다루는 방식까지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질감에는 기법뿐 아니라 작업을 지속해온 세월도 함께 남았습니다. ■ 제주에서 일본으로, 다시 호남으로… 화가를 만든 이동 양인옥은 1926년 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3살이던 1938년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시나노바시미술연구소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사이토 요리와 구루미사와 겐토에게 배운 뒤 1947년 졸업해 귀국했습니다. 귀국 뒤에는 진도농업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목포여중, 해남중·고교, 광주여중, 목포상고, 광주제일고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목포교육대학과 목포대학교를 거쳐 호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총장도 지냈습니다. 작가로 이름을 알린 무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전이었습니다. 1963년 제1회 목우회공모전 대상을 받은 데 이어 1965년 제14회 국전 국무총리상, 이듬해 제15회 국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고 이후 국전 추천작가와 초대작가로 활동했습니다. 1979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에 작품을 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역대 국전 수상작가전》과 《한국의 자연전》, 《현대미술 초대전》 등에도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1991년 금호예술상, 199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1998년 제7회 오지호미술상을 수상했습니다. 1999년 6월 향년 74세로 생을 마쳤습니다. 양인옥을 설명할 때 ‘제주 출신’과 ‘호남 화단’이라는 표현이 함께 따라붙는 까닭도 이런 이력에 있습니다. 출생지는 제주였지만 교육과 창작 활동의 중심은 호남이었고, 일본에서 배운 서양화를 바탕으로 진도와 목포, 광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전과 전국 단위 전시를 오갔습니다. 어느 한 지역의 이름만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행보입니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작가들이 여러 지역에 정착해 학교와 대학에서 후학을 길렀고, 국전과 지역전을 오가며 각지의 화단을 일궜습니다. 양인옥의 생애 역시 제주에서 일본을 거쳐 호남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 지역미술의 한 흐름과 맞물립니다. ■ 인체와 자연 사이… 같은 손이 찾아낸 형태 양인옥의 화업에서 인체는 중요한 축입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누드는 작고하기 전까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어깨에서 허리로 내려가는 굴곡과 피부 위 명암, 넓은 면을 나누는 방식에는 인체를 하나의 구조로 바라보는 시선이 배어 있습니다. 시기마다 색과 표현법은 달라졌지만 몸에 대한 탐구는 1980년대 초부터 말년까지 계속됐습니다. 산과 바다, 항구와 과수원도 오래 그렸습니다. 강한 명암 대비와 대담한 붓질을 즐겨 사용했고, 수평 구도로 안정감을 잡으면서 일부 작품에는 S자형 구도를 끌어들여 시선을 안쪽으로 이끌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햇살을 받은 자연이 보다 밝고 선명한 색으로 나타납니다. 1978년작 〈제주시 사라봉〉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한국은행이 소장한 이 작품에서는 짙푸른 바다와 절벽, 흰 포말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사라봉 일대의 인상을 압축합니다. 호남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지만 제주의 산과 바다는 여러 차례 캔버스로 돌아왔습니다. 1965년 목포와 제주에서 개인전을 연 데 이어 광주와 서울 등지에서 전시를 이어갔고, 1981년에도 제주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한라산과 바다, 중산간과 초가 등 고향에서 익힌 형태와 색은 긴 작업 과정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몸의 굴곡과 산의 능선, 피부의 명암과 햇빛을 받은 들판을 다루는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재는 달라도 형태를 붙잡고 색을 쌓아가는 방식에서 작가 특유의 조형 감각을 드러냅니다. ■ 탄생 100년, 다시 놓이는 양인옥의 자리 2011년 제주에서는 양인옥을 다시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렸습니다. 당시 유족 소장품과 제주에서 발굴된 작품 등 65점이 한자리에 나왔습니다. 호남을 주된 활동 무대로 삼아 제주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양인옥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조명한 자리였습니다. 15년이 흐른 올해는 탄생 100주년입니다. ‘빛의 화가’, ‘색채의 연금술사’, ‘호남 화단의 거목’ 등 여러 수식이 이미 양인옥의 이름을 따라다닙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초기작과 1970년대 작품까지 불러내며 후기의 강렬한 색채에 가려졌던 양인옥 회화의 출발을 다시 꺼내놓습니다. 개막 행사는 19일 오후 4시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2026-09-07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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