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표정을 읽고, 꽃에서 시간을 꺼냈다…15명이 다시 쓴 제주
제주의 돌에 표정을 읽고, 달맞이꽃에서 자신의 시간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숲에 귀를 기울였고, 오래된 마을 이름에서 유년의 한 장면을 꺼냈습니다. 같은 제주를 살아왔지만 이들이 붙잡은 장면과 기억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사진과 문장, 스케치와 오브제를 거치며 저마다의 작품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주민예총은 2026 예술로 제주탐닉 아티스트북 창작 프로젝트 ‘제주의 결, 예술로 짓다’ 결과 전시를 2일부터 6일까지 창작오픈스튜디오 뜰에서 엽니다. 이번 전시는 전문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와는 사뭇 결이 다릅니다. 제주에 사는 도민들이 자신이 지나온 장소와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견한 감각을 작품으로 옮긴 과정을 보여줍니다. 프로젝트는 풍경과 역사, 장소와 기억,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강의와 현장 탐방, 두 명의 예술가가 함께한 창작 워크숍으로 진행됐습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한 참여자는 30명입니다. 이 가운데 창작 과정을 끝까지 이어온 15명의 작업을 공개합니다. 강지은, 강창훈, 곽은비, 고혜영, 김서연, 문미영, 박지윤, 사공준, 성남옥, 양두영, 오수현, 이정은, 정순자, 한담희, 현은주 입니다. ■ 제주를 설명하는 대신, 자신이 본 제주를 꺼냈다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만난 풍경과 장소, 사물과 사람을 사진과 문장, 스케치로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의 기억과 맞물렸습니다. 한 장소가 오래전 경험을 불러내기도 했고,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쳤던 사물이 작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돌의 생김새와 표정에 주목했고, 달맞이꽃에 자신의 삶을 겹쳐 바라봤습니다. 숲에서 느낀 감각을 따라간 작업도 있고, 제주에서 경험한 쉼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의 옛 지명과 유년의 기억을 연결한 작업처럼 장소가 개인의 시간을 끌어냈습니다. 이 과정에 중요한 것은 ‘제주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보다 ‘나는 제주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였습니다. ■ 책으로 묶이지 않은 아티스트북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아티스트북은 일반적인 책의 형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참여자들은 평면과 입체, 패브릭과 오브제, 이미지와 텍스트 등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활용했습니다. 책장을 넘기듯 읽히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공간 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바라봐야 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문장과 연결되고, 개인의 기억이 천이나 오브제, 입체 구조를 만나 새로운 형태를 얻었습니다. 하나의 정해진 형식 대신 각자가 발견한 제주에 맞는 표현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전시의 특징입니다. 프로젝트 역시 전문적인 기법을 익히거나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만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질문하는 과정 자체를 창작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뤘습니다. ■ 같은 섬 안에서 나온 서로 다른 제주 제주는 바다와 오름, 돌담과 억새, 숲과 바람 같은 대표 이미지로 오래 설명돼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익숙한 상징을 다시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같은 장소도 사람마다 다른 기억을 품고 있고, 같은 풍경도 살아온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누군가에게 한 마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정착한 삶의 공간일 수 있습니다. 흔한 돌 하나와 꽃 한 송이도 개인의 경험을 통과하면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 차이에서 만들어진 ‘결’들입니다. 하나의 제주를 정리한다기 보다, 한 섬을 살아온 여러 사람의 시선이 어떻게 갈라지고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 완성된 작품 뒤의 시간을 전시장에 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결과와 함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다뤄집니다. 참가자들이 현장을 찾고, 기록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의미를 연결하고, 하나의 형태로 발전시킨 시간이 작품과 나란히 놓입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왜 그것이 기억에 남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언어로 옮겼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겉모습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각자의 경험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문 예술가가 아닌 도민이 창작의 주체가 됐다는 점도 프로젝트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술을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의 영역으로 한정하기보다, 자신이 사는 곳을 오래 바라보고 기록하는 행위에서 창작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제주민예총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자들이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제주를 다시 살피고, 자신과 제주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며 창작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관람객 역시 15명의 작업을 따라가며 자신의 기억 속 제주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돌과 꽃, 숲과 마을을 지나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저마다 다른 시간과 경험입니다. ‘제주의 결, 예술로 짓다’ 전시는 2일부터 6일까지 창작오픈스튜디오 뜰에서 열립니다. 관람은 무료이며, 오픈식은 2일 오후 6시에 진행됩니다.
2026-09-0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