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 김치를 팔기 시작할 때”… 조선호텔이 던진 질문, 전통은 어디까지 산업이 되는가
김치는 시간을 축적하는 음식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집의 기억이고, 어떤 이에게는 생업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산업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20일 조선호텔앤리조트는 프리미엄 김치 사업을 중심으로 생산 인프라 확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본격화하며 2030년 매출 1,000억 원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일본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성남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등 사업의 외연을 빠르게 넓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식품 사업 확대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호텔이 오랜 시간 쌓아온 미식 경험과 브랜드 신뢰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 읽힙니다. 김치 한 포기가 기업의 방향을 설명하는 상징이 된 순간입니다. ■ 경험을 선택하는 시장… 김치는 취향의 산업으로 이동한다 식품 시장은 기능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이제 가격이나 편의성뿐 아니라 생산 과정의 투명성, 브랜드가 축적해온 시간, 그리고 신뢰까지 함께 고려합니다. 김장 문화 변화와 1~2인 가구 증가 속에서 포장김치 시장은 꾸준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발효식품이 건강과 지속가능성 흐름 속에서 주목받으면서 김치는 글로벌 식품 카테고리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김치는 더 이상 반찬이 아니라 취향과 기준을 반영하는 선택으로 읽힙니다. 음식은 이제 기능을 넘어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 성남 김치센터 확장… 생산 능력이 아니라 ‘기준’을 넓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난 1월 성남에 프리미엄 김치센터를 열고 생산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기존 대비 약 2.5배 규모로 확장된 시설은 제조와 연구, 보관 기능을 통합해 품질 관리 전반을 정교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핵심 공정 일부는 수작업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면서도 맛의 균형과 감각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확장된 시설은 생산량 확대보다 품질 기준을 더욱 정밀하게 관리하기 위한 기반”이라며 “호텔이 지켜온 미식 철학을 생산 과정 전반에 반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곳은 생산 시설이자 브랜드 신뢰를 축적하는 거점입니다. ■ 미국 수출… 글로벌 시장에서 ‘발효의 경쟁력’ 시험하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난 19일 미국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현지 프리미엄 유통망을 통해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첫 물량을 선적하며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은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물류 환경과 유통 기간 속에서도 품질을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꼽힙니다. 이번 수출은 프리미엄 김치의 글로벌 경쟁력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평가됩니다. 오는 6월에는 일본 오사카 한큐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어 제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발효 음식에 대한 기준이 높은 일본 시장에서 브랜드 완성도를 시험받게 됩니다. 해외 진출은 단순히 판매 확대가 아니라 한국 식문화의 확장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 제주에서 확인되는 변화… 여행의 기억이 소비를 움직인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관광과 일상이 맞닿는 공간에서 소비 패턴의 변화가 빠르게 포착되기 때문입니다. 배수진 조선호텔앤리조트 홍보담당은 “그랜드 조선 제주 내 조선델리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고, 컬리 등 온라인 채널에서도 자주 품절되는 등 제주 지역에서도 꾸준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행 중 접한 맛이 이후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은 관광 소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숙박과 풍경 중심이었던 여행 경험이 미식과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되면서, 지역에서의 체험이 일상 소비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처럼 체류형 관광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미식 경험이 소비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호텔에서 경험한 맛이 일상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는 프리미엄 식품 전략이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 무대로 평가됩니다. ■ 시장 확장을 둘러싼 시선… 기회와 긴장이 교차한다 호텔 브랜드의 시장 진입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옵니다. 전통 김치업체와 중소 생산자 입장에서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유통망을 갖춘 기업이 등장하면서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존재합니다. 프리미엄 시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가격 기준과 소비 인식이 다시 설정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반면 업계에서는 프리미엄 카테고리의 확대가 전체 김치 시장의 외연을 넓히고 품질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지고 시장이 다층화될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결국 김치 산업은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 호텔의 진화… 경험은 공간을 넘어 생활로 확장된다 호텔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숙박과 서비스 중심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 고객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식품 사업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입니다. 여행지에서 경험한 맛을 집에서도 이어가고 싶어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텔 브랜드는 일상의 소비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김치는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입니다. 여행의 기억이 식탁 위에서 다시 이어지고, 브랜드 경험이 반복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호텔은 더 이상 머무는 장소만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전통이 산업이 되는 순간… 질문은 계속된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행보는 전통 음식이 현대 산업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김치는 여전히 일상의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이지만,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시험받는 문화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텔은 공간을 넘어 경험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치는 하나의 상품을 넘어 브랜드가 지켜온 기준과 방향을 드러내는 상징이 됩니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곧 전략이 되는 흐름입니다. 전통은 고정된 형태로 머물지 않습니다. 시대와 시장, 소비자의 해석 속에서 의미가 계속 덧붙여집니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 산업의 모습 역시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김치는 익어갑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시장도 조용히 다음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6-02-20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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