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는데 몸은 아직 거기 있었다”… 강성후 원장과 24년 트라우마를 견딘 여성의 기록
어머니가 얼굴을 조금만 굳혀도 숨부터 막혔다고 했습니다. 머리로는 별일 아니라는 걸 아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합니다. 심장이 뛰고, 손끝이 떨리고,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았습니다. 결국 말을 쏟아내다 집을 뛰쳐나오는 일도 반복됐습니다. 30대 중반 여성인 A씨는 열 살 때 성폭행 피해를 입었습니다. 칼로 위협당한 채 끌려갔던 기억은 20년이 훌쩍 지나도록 몸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언니의 언어·신체 폭력까지 이어졌고, 당시 가족 안에서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것” 정도로 넘겨졌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몸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쳤고, 성인이 된 뒤에도 직장에 오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반복했고, 가족과 갈등이 생기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충동 소비와 폭언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정신과 약물치료만 11년, 심리상담은 1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여성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주 출신 강성후 트라우마 뇌과학최면센터 원장이 전해온 사례입니다. ■ “끝난 일인데 몸은 아직 끝나지 못한 상태였다” 강 원장은 “사례자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감정 자체보다 반응 속도였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표정이 굳는 순간, 설명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왜 그렇게까지 화가 치미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지나간 일을 뇌가 계속 현재의 위협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A씨는 사람들과 관계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고, 직장도 몇 달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감정이 한 번 무너지면 폭발하듯 터졌고, 이후에는 극심한 무기력감과 자기혐오까지 이어졌습니다. 최근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이런 트라우마 반응을 단순히 “예민하다”거나 “의지가 약하다”는 문제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건은 이미 지나갔는데 몸과 감정은 아직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불안·우울·고립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지금과 분리하는 과정” 강 원장이 집중한 건 ‘기억 수정과 재고정(Memory Reconsolidation)’ 접근입니다. 최면 집중 상태에서 과거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도록 한 뒤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의 나는 당시와 다르다”는 감각을 반복적으로 인식시키는 방식입니다. 강 원장은 “핵심은 기억을 없애는 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공포가 지금 현재까지 계속 덮쳐오는 반응을 조금씩 끊어내는 과정에 가깝다”라며 “특히 (A씨가) 누군가 언성을 높이기만 해도 몸부터 경직되던 부분에 주목했다”고 밝혔습니다. “뇌는 계속 ‘또 위험한 상황이 온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데 반복 과정 속에서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인식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최면 치료를 두고는 의료계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미국 PTSD 치료 가이드라인은 인지행동치료(CBT), 지속노출치료(PE), EMDR 등을 주요 치료로 권고하고 있으며, 최면은 일부 보완적 접근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치료 효과는 개인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강 원장 역시 “모든 사례가 같은 방식으로 호전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 “11년 먹던 약 줄이고 다시 시험 준비”… 멈췄던 삶이 움직였다 강 원장에 따르면 A씨는 집중 최면 이후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11년 동안 복용하던 신경안정제를 줄였고, 현재는 의료 전문직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학원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의학용어 시험에서 두 차례 100점을 받았고, 중간고사도 전 과목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강 원장은 “중요한 건 성공담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사람이 다시 내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요즘 정신건강 현장에서도 “얼마나 덜 아프냐”보다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보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시 사람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 그런 변화 자체가 회복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 디지털자산 전문가인 강성후, 왜 트라우마 치유를 붙들었나 강 원장의 이력은 독특합니다. 제주도청 간부와 기획재정부 국장(지역경제협력관)을 거쳐 현재 KDA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한국핀테크학회 부회장과 국제전기차엑스포 사무총장,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정책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책과 금융, 디지털자산 시장을 다루던 인물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건 인간의 불안과 트라우마입니다. “기술은 계속 빨라지는데 사람 마음은 오히려 더 쉽게 무너지고 고립되는 시대가 됐다”고 전제한 강 원장은 “남은 시간은 상처 때문에 멈춰 선 사람들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일에 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A씨 사례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몸과 감정이 오랜 시간 공포의 기억 안에 머물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강 원장은 “트라우마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니라, 몸이 다시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2026-05-1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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