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라는 적금, 달리는 시장”… 청년도약계좌 해지 21만 명
청년 자산 형성을 돕겠다며 출범한 정책금융상품에서, 청년들이 먼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청년도약계좌는 고금리를 내세웠지만, 청년들은 금리가 아니라 기회비용을 계산했습니다. 5년을 묶는 설계는 안전했지만, 자산 시장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21만 명이 청년도약계좌를 해지했습니다. 10월에는 해지자가 신규 가입자를 처음으로 넘어섰습니다. 이같은 이탈은 우연이 아니라, 판단의 결과로 읽히고 있습니다. ■ 해지 44만 명… 절반이 올해 나갔다 21일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6월 도입 이후 올해 10월 말까지 청년도약계좌 가입자는 242만 5,000명입니다. 이 가운데 44만 3,000명이 중도 해지했습니다. 해지율은 18.2%입니다. 특히 올해 1~10월에만 20만 9,000명이 계좌를 정리했습니다. 전체 해지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해지자는 3만 4,000명으로, 같은 달 신규 가입자 수(3만 3,000명)를 처음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10월 해지자가 3,000명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증가 속도는 분명합니다. 계좌의 구조가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청년들이 이 상품을 바라보는 기준선입니다. ■ “5,000만 원보다 집이 먼저”… 자산 전략의 이동 12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유모(33)씨는 지난해 7월 가입했던 청년도약계좌를 올해 8월 해지했습니다. 2028년 만기까지 유지해 5000만 원을 받는 것보다, 주택 구입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유씨는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아 기다리기보다 움직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청년도약계좌는 매달 최대 70만 원을 5년간 납입해야 최대 혜택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동안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기다림의 비용’을 계속 키워왔습니다. 청년들에게 문제는 수익률이 아니라, 시간을 어디에 묶느냐였습니다. ■ 고금리의 역설… 낼 수 있는 사람이 덜 받는다 청년도약계좌의 최고 금리는 연 9% 수준입니다. 하지만 최대 금리가 적용되는 소득 구간과, 월 70만 원을 꾸준히 납입할 수 있는 소득 구간은 겹치지 않습니다. 소득이 낮아 정부 기여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청년은 납입 여력이 부족하고, 납입 여력이 있는 청년은 기여금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결국 ‘이론상 최대 혜택’은 다수에게 체감되지 않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발표한 청년 금융 실태 조사에서도 흐름은 명확합니다. 해지자 중 39%는 실업이나 소득 감소를 이유로 들었고, 33.3%는 긴급 자금 수요를 꼽았습니다. 5년 고정 구조는 안정적이지만, 변수가 많은 청년의 삶에는 유연하지 않았습니다. ■ 정책은 안전했고, 청년은 계산했다 청년도약계좌는 윤석열 정부가 청년 자산 형성을 ‘저축’ 중심으로 설계한 상품입니다. 반면 청년들은 자산 형성을 이동과 전환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인식 차이가 누적되면서, 계좌는 유지 대상이 아니라 정리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해지는 실패라기보다,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숫자에 가깝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 6월 ‘청년미래적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납입 기간은 3년으로 줄이고, 금리는 연 12~16%로 높였습니다. 대신 가입 요건은 연 소득 6000만 원 이하로 강화됩니다. 설계는 달라졌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청년의 자산 전략이 다시 저축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정책이 또 한 번 시장의 속도를 뒤쫓게 될지는 결국 선택과 결과로 확인될 문제입니다.
2025-12-21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