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가 버린 그 숱한 가시는 어디로 갔을까… 우도는 그것으로 기억을 세웠다
우도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녀 불턱 곁에서 낯선 풍경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검은 망사와 성게가시, 성게 껍데기가 결합된 설치물들입니다. 바위 위에 놓인 형상들은 해안 풍경과 맞물리고, 파도와 바람은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해녀들이 성게를 손질한 뒤 버린 가시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우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한희선은 그 버려진 것들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게가시를 매개로 해녀의 노동과 섬의 역사, 우도가 품어온 이야기를 하나의 전시로 엮어냈습니다. 개인전 《가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몸》은 우도 해녀 불턱 6곳과 우도 창작스튜디오 갤러리를 연결하는 설치미술 프로젝트입니다. 하나의 공간 안에 머무르지 않고 우도 전체로 확장한 전시입니다. 관람객은 갤러리에서 작품을 본 뒤 해안도로와 해녀 불턱을 따라 이동합니다. 우도 곳곳에 설치된 작업들은 그 동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출발점은 성게가시입니다. 하지만 전시가 향하는 곳은 성게가시 자체가 아닙니다.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삶의 자취와 섬의 역사, 그리고 오래도록 불리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 버려진 물질이 품은 서사 성게가시는 원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관입니다. 우도에서 성게가시는 다른 의미를 얻게 됐습니다. 해녀의 손을 거쳤고, 노동의 현장을 통과했고, 바닷가에 남겨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부산물이었지만 작가에게는 우도를 읽기 위한 단서였습니다. 한희선은 성게가시를 수집하고 엮고 연결하며 새로운 형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작품은 가시의 형태보다 가시가 지나온 경로에 주목합니다. 누가 그것을 남겼는지, 어떤 장소에서 발견됐는지, 무엇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 왔는지를 함께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전시에서 성게가시는 재료인 동시에 기록입니다. 해녀들의 손을 거쳤고, 우도가 지나온 세월을 품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은 형상이 되고, 잊혀졌던 이야기들을 다시 소환합니다. ■ 바다보다 먼저 목말랐던 섬 전시는 우도의 물 부족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오랫동안 물 부족을 겪어온 섬입니다. 지금의 여행객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물은 풍경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지만 한 모금의 물을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고, 해녀들 역시 그런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 시간은 기록보다 먼저 몸에 남았습니다. 굽은 허리와 거친 손, 굳은 손마디와 닳은 피부에 남았습니다. 한희선은 바로 그 몸에 남은 흔적에 주목합니다. 성게를 손질하고 남겨진 가시를 따라가며 해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삶이 지나온 섬의 역사를 더듬어 갑니다. 작가는 “버려진 성게가시를 매개로 섬에 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했다”며 “관람객들이 우도를 순환하며 작품과 장소를 함께 읽어갈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작업 배경을 전했습니다. ■ 우도를 한 바퀴 도는 전시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관람 방식입니다. 갤러리에서 첫발을 뗀 관람객은 동천진동과 서천진동, 영일동, 하고수동, 전흘동, 하우목동 해녀 불턱을 따라 이동하며 작품을 만납니다. 실내 전시와 야외 설치는 하나의 순환 동선으로 연결됩니다. 우도를 한 바퀴 도는 여정 자체가 전시의 일부입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작품을 만나고, 작품을 바라보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는 작품이 풍경 속에 놓이고, 또 어느 순간에는 풍경이 작품 안으로 들어옵니다. 바람과 파도, 현무암과 해안선은 작품과 함께 전시의 풍경을 완성합니다. 관광지로 소비되던 풍경은 해녀들의 삶과 섬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다른 표정을 드러냅니다. ■ 말하지 않는 몸, 말하지 못한 기억 전시 제목은 《가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몸》입니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반복된 노동도, 오래된 상처도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경험이 언어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해녀들의 삶이 그랬고 우도의 시간도 그랬습니다. 한희선은 설명 대신 물질을 선택했습니다. 해녀를 직접 재현하지 않았고 우도의 역사를 연대기처럼 나열하지도 않았습니다. 버려진 가시들을 전면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관람객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당신에게 가시는 무엇일까.” 전시장에 마련된 참여형 작업 역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누군가에게 가시는 상실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후회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꺼내지 못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해녀의 이야기는 관람객 자신의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 우도가 남긴 것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회화를 전공한 한희선은 백령도와 강화도, 우도 등 섬과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우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해녀 노동과 섬의 물 역사, 해양 부산물 등을 연구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환경이 맺는 관계에 주목하며 생성과 변화, 소멸의 과정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시 《가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몸》은 오는 7월 3일까지 우도 해녀 불턱 6곳과 우도창작스튜디오 갤러리에서 진행됩니다. 해녀들이 남긴 성게가시는 이번 전시의 재료입니다. 그러나 한희선이 들여다본 것은 가시보다 그 뒤에 남아 있던 삶의 흔적이었습니다. 우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같은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남았는가.
2026-06-2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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