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을 보면서도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김석현이 그린 우리의 행렬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수백 개의 얼굴입니다. 분홍과 보라, 초록과 파랑이 쉼 없이 교차하는 그림들 사이로 악어와 고래, 말과 새, 선뜻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생명들이 빼곡하게 들어섭니다. 크게 뜬 눈과 날카로운 이빨, 무심한 표정은 서로 다르지만, 이상하리만큼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어디를 향하는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습니다. 앞장서는 존재도, 뒤처졌다고 규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어느 얼굴도 다른 얼굴 속으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멀리서는 하나의 군집입니다. 가까이서는 모두 다른 얼굴입니다. 지난 9일 서귀포 독립예술공간 키위새스테이션에서 막을 올린 발달장애 예술가 김석현의 개인전 《어디로(Where Are We Going?)》는 그 낯설고도 조용한 긴장감에서 시작합니다. 전시는 사단법인 누구나가 진행하는 연간 프로젝트 ‘2026 문턱없는 콜라보 vol.2’의 세 번째 시리즈입니다. 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이 협력해 김석현이 오랫동안 이어온 동물 초상 연작을 선보입니다. ■ 하나의 군집이지만 어느 얼굴도 지워지지 않는다 김석현은 오랫동안 동물을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동물도감도, 생태 기록도 아닙니다. 종을 구분하는 일보다 한 생명이 품은 감각을 붙잡는 데 더 가까운 회화입니다. 한 점씩 떼어놓고 보면 모두 독립된 초상입니다. 눈의 크기도, 몸의 비례도, 색의 선택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동물은 금세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듯 몸을 세우고, 세상의 소란과 상관없이 자기 리듬을 유지합니다. 그런 그림 수백 점이 한 공간에 모이면 전혀 다른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종이는 서로의 가장자리를 밀어내며 이어지거나, 다음 그림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놀라운 건 어느 그림도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경계는 흐려지지만 얼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같이 있다고 같아지지 않고, 다르다고 밀려나지도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라는 말도 새롭게 읽힙니다 서로를 닮아야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달라도 끝까지 지켜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비워둔 목적지, 그 자리를 우리의 삶이 채운다 전시 제목은 《어디로》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끝내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출발도, 도착도, 이동의 이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비어 있는 자리는 오래지 않아 그림 앞에 선 사람의 삶으로 채워집니다. 동물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따라가던 시선은 어느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향하는 곳이 스스로 선택한 방향인지, 모두가 바라본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고 있던 길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받지만 방향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말은 익숙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지 않았는지를 돌아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김석현의 동물들은 도착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불안한 눈도, 호기심 어린 표정도, 굳게 다문 입도 그대로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전시는 목적지보다 그 얼굴들을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어디에 도착할 것인가보다, 어떤 얼굴로 오늘을 지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 하루의 감각이 한 점의 생명으로 쌓이다 김석현의 작업은 계획보다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날 마주한 동물의 인상, 눈길이 오래 머문 표정, 몸이 먼저 받아들인 리듬이 한 점의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실제 생김새를 정확하게 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흔들리는 비례, 털빛은 현실을 벗어나며, 눈과 입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그런 형태의 변화는 결핍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사실을 복제하는 대신 자신이 받아들인 세계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매일 한 점씩 이어진 작업은 비슷한 형식 안에서도 같은 얼굴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눈빛은 어제와 다르고, 오늘의 색은 어제의 감정과 닮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쌓인 그림들은 하나의 대형 작업을 위해 준비된 조각이 아닙니다. 하루씩 살아낸 시간이 축적된 기록입니다. 연작 전체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 작가가 세상을 만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겹쳐 보입니다. ■ 장애를 설명하는 대신, 익숙했던 미학을 흔들다 김석현의 그림을 ‘장애예술’이라는 이름만 전제하고 본다면 정작 작품이 품고 있는 힘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림은 장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연민을 구하지도 않고, 극복의 서사를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선과 색, 형태와 리듬입니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과장된 눈과 낯선 색, 현실과 다른 비례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낯설었던 것은 그림이 아니라, ‘잘 그린 그림’이라고 믿어왔던 자신의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장애 연구자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1953~2015)는 『장애미학(Disability Aesthetics)』에서 장애를 예술의 결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오래된 기준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미학적 가치로 바라봤습니다. 김석현의 그림은 그 질문을 자연스럽게 이어갑니다. 정확한 재현보다 자신이 감각한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 앞에서는 ‘얼마나 닮게 그렸는가’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작품은 새로운 미학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오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미적 기준을 가만히 흔들어 놓습니다. ■ 같은 길을 간다고 같은 얼굴일 필요는 없다 전시에 협력한 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은 시각예술과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습니다. 장애를 하나의 범주로 묶기보다 예술가 각자의 감각과 표현이 독립적인 작품 세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데 활동의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역시 장애를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보다 한 명의 예술가가 구축한 조형 언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도록 이끕니다. 오한숙희 ㈔누구나 이사장은 “장애예술을 사회적 의미나 특정 범주로만 바라보기보다 한 예술가가 구축한 독창적인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작품의 의미가 언어로 모두 전달되지 않더라도 관람객이 자신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공명하는 경험 자체가 이번 전시가 제안하는 예술”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석현은 끝내 목적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방향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얼굴들은 각자의 표정과 리듬을 지닌 채 같은 시간 속에 놓입니다. 어느 하나 다른 얼굴을 닮으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서로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어디로》는 하나가 되는 방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기 모습을 잃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이어집니다.
2026-07-1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