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그림을 버리기로 했다”… 금일귀가 제주에서 뒤늦게 읽은 자기 이름
한창 채색하던 그림에서 손을 뗐습니다. 완성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 그리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 옆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 그림을 버리기로 합니다.” 그림은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채색이 끊긴 그 상태로 남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대가가 돼야 하고, 몇 세기가 지나도 이름을 남길 만큼 대단해져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였던 시간도 거기에 멈췄습니다. 오는 17일 제주시 관덕로 세이브 갤러리에서 시작하는 금일귀의 첫 개인전 《날 일, 귀할 귀, 날마다 귀하다》는 이 미완성작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2년 전 금일귀는 이미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누비 : 오히려 좋더구나〉, 〈누바 :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거라〉, 〈누보 : 느려도 괜찮다〉. 나무늘보 세 마리에게는 진작 해줬던 말입니다. 정작 자신에게 그 말을 하는 데는 2년이 더 걸렸습니다. ■ 왕의 자리에 나무늘보를 앉혔다 2024년작 세 점은 어진의 형식을 빌렸습니다. 왕의 초상이 놓이던 화면 한가운데에는 나무늘보 캐릭터 누비와 누바, 누보가 앉았습니다. 제주로 이주한 뒤 금일귀는 자신에게 묻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왜 살아가는지. 살 곳을 스스로 정한 경험도 처음이었습니다. 삶의 배경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안을 채우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그 무렵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마다 다른 삶의 속도였습니다. 느리지만 제 속도로 살아가는 나무늘보 세 마리를 왕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누비 : 오히려 좋더구나〉. 〈누바 :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거라〉. 〈누보 : 느려도 괜찮다〉. 이듬해 〈일귀 어진〉에서는 그 자리에 금일귀 자신을 닮은 캐릭터가 들어왔습니다. 제주로 이주하면서 만든 캐릭터이자 제주살이를 풀어내는 인스타툰의 주인공입니다. 어진의 틀은 그대로였습니다.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나무늘보 다음은 자신이었습니다. ■ 서울을 떠나자 그림보다 먼저 하루가 달라졌다 제주로 오기 전 금일귀는 서울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집 아래에는 경찰서, 옆에는 병원, 건너편에는 소방서가 있었습니다. 세 곳의 사이렌이 하루 종일 겹쳐 들렸고 그 소리에 적잖이 시달렸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일도 달라졌습니다. 외주 디자인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제주로 향했습니다. 제주에 왔다고 그림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디자인 일을 했고, 평생학습관을 비롯한 여러 교육 현장에서 아이와 성인, 어르신을 가르쳤습니다. 이주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은 인스타툰으로 그렸습니다. 달력에 없던 일정 하나도 생겼습니다. 물때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경북 영양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금일귀에게 물은 오래전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제주에 살기로 마음먹으면서 해녀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해녀학교를 거쳐 어촌계 인턴 과정을 밟았고, 현재 고내어촌계에서 해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직접 바다에 들자 해녀는 멀리서 바라보던 대상과 달랐습니다. 80대에도 물질하는 현역 해녀들을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왔는지 배우고 남기는 일까지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책가에서 책을 빼고 오리발을 넣다 2026년작 〈나잠도 : 바당 책가〉는 책가도에서 출발합니다. 책과 문방사우가 있어야 할 칸마다 물안경과 장갑, 잠수복, 테왁과 망사리, 오리발이 들어왔습니다. 현대식 고무옷 이전에 해녀들이 입었던 ‘소중이’도 보입니다. 사람은 없습니다. 물질을 앞둔 해녀의 살림만 빼곡합니다. 옛 그림의 형식을 빌리면서 지금 자신의 생활을 그 안에 넣는 방식은 〈나잠어전〉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나잠어업’과 ‘어진’을 합친 제목입니다. 물안경을 머리에 올리고 해녀복을 입은 인물이 화려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주변에는 물질 도구와 바다 생물이 자리합니다. 2024년 나무늘보가 앉았던 어진의 자리에 2025년에는 자신이, 2026년에는 해녀가 들어왔습니다. 책가의 책과 문방사우는 물질 도구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형식을 밀어내지도 않았습니다. 비단이 남고, 어진도 책가도도 남았습니다. 그 오래된 자리로 제주에서 살아낸 오늘이 들어왔습니다. ■ 성판악의 등산 스틱이 기린 다리가 됐다 〈한라산 성판악 : 기린 다리〉는 한라산을 걷던 날 시작됐습니다. 눈을 한 아름씩 이고 선 구상나무는 동화 속 겨울 왕국 같았습니다. 줄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숲속 원정대처럼 보였습니다. 등산객들이 쥔 스틱에서는 기린의 긴 다리를 봤습니다. 성판악에서 실제로 본 풍경과 금일귀의 눈에 들어온 풍경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깁니다. 그림은 그 틈에서 나왔습니다. 제주에 온 뒤 자신의 작업이 이전보다 밝고 가벼워졌다는 설명입니다. 재료는 여전히 비단입니다. 뒤가 비치는 비단의 성질 때문에 색을 뒷면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칠한 색은 비단을 통과하며 앞쪽으로 은은하게 배어 나옵니다. 〈한라산 성판악 : 기린 다리〉에서는 앞뒤의 층을 나눠 설경의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어진에 나무늘보와 해녀를 앉히고 책가에 오리발을 넣어도 한국화의 재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다뤄온 비단 위에서 지금의 제주가 자리를 얻습니다. ■ 남에게 먼저 건넨 말이 있었다 전시장에는 끝내 완성하지 않은 그림도 나옵니다. 이 작품을 채색하던 무렵, 금일귀는 행복을 좇는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스스로를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언젠가는 대가가 돼 몇 세기가 지나도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도 놓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이 뒤집힌 뒤에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버리기로 합니다.” 붓은 거기서 멈췄습니다. 그림 옆의 글은 더 이어집니다. “조금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수행하듯 자신을 몰아붙여야 가능했던 그리기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그림을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작품에 이미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누바 :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거라〉. 〈누보 : 느려도 괜찮다〉. 다른 존재에게는 먼저 건넸던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늦었습니다. 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의 그림은 달라졌습니다. ■ 이름을 남기려던 사람, 자기 이름을 다시 읽다 금일귀는 20대부터 불안이 컸습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휩쓸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불안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불안을 안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는 조금 알게 됐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그 하루는 그림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학생을 가르쳐 생활비를 벌고, 물때를 살펴 바다에 듭니다. 한라산을 걷다가 등산 스틱에서 기린의 다리를 봅니다. 그리고 다시 비단 앞에 앉습니다. 첫 개인전의 제목은 《날 일, 귀할 귀, 날마다 귀하다》입니다. 금일귀. 日貴. 평생 불려온 자기 이름 두 글자를 풀었습니다. 예전에는 몇 세기가 지나도 이름을 남길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이름을 남기는 일보다 이미 가진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낼지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날 일(日), 귀할 귀(貴). 그 두 글자를 이렇게 읽기까지 서울에서 보낸 15년과 제주로의 이주, 바다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끝내 완성하지 않기로 한 그림 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름은 처음부터 금일귀였습니다. ‘날마다 귀하다’는 이제 자신이 살아가는 하루를 품을 그릇이 됐습니다. 금일귀의 첫 개인전 《날 일, 귀할 귀, 날마다 귀하다》는 오는 17일부터 31일까지 제주시 관덕로 36 세이브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관람은 금·토·일·월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가능하며, 오픈식은 17일 오후 4시 30분입니다. 제주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2026-10-08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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