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때문에 단속했다”던 제주공항… 공간 보완은 없었다
제주국제공항 도착층 차량 정차 허용시간이 1분으로 줄어든 뒤, 다음 날 현장은 단속 이전과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도착층 앞 1층은 비어 있었지만, 정작 차량들은 공항 전면부에 서지 못한 채 주차장과 출발층(3층)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혼잡을 예고했습니다. 제주시가 밝힌 시행 이유는 “버스 정류장 앞 불법 정차 차량으로 사고 위험이 높고, 버스 기사와 이용객 민원이 많았다”입니다. 횡단보도·버스정류장·소방차 구역을 제외한 곳은 기존의 5분 유예가 유지되고, 장애인 승하차는 법적 면제 대상이라는 안내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정작 도민 차량을 위한 대안은 없었습니다. ■ “공항 주차장에서 시간 맞추라”… 행정의 해법인가 제주시는 이번 조치를 설명하며, 버스 정류장 앞 안전 문제와 민원을 시행 배경으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장애인 승하차가 법적 면제 대상이며, 횡단보도·버스정류장·소방차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기존 5분 유예 규정을 그대로 둔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도민 차량을 위한 구조적 대안으로 제시된 내용은 사실상 한 줄뿐이었습니다. “공항 주차장에 정차해 있다가 시간이 맞으면 진입하라.” 이 한 줄이 행정의 대책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공항 주차장은 평소에도 만차가 기본이고, 진입 자체가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설령 어렵게 빈 자리를 찾는다 해도 도착장까지는 상당한 도보 이동이 필요합니다. 노약자, 영유아 동반 가족, 짐을 든 이용객에게 이 과정은 현실적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공항과 행정이 내놓은 방식은 정차 공간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한 것이 아니라, 이동 동선과 시간을 이용자 스스로 계산해 해결하라고 떠넘긴 조치일 뿐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도민 차량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설계가 가능했는가”, “왜 그 설계란 것이 단 한 번도 공론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1분 단속은 실행됐지만, 도민이 머물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 현장은 이미 결과를 말하고 있다 2일 오후 2시, 도착층 단속 구간은 차량이 잠시 들렀다 사라지는 흐름만 남겨두고 한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이전의 혼잡했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공항 주차장은 만차 행렬이 이어졌고, 차량들은 한바퀴씩 회전하며 진입 타이밍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주변 도로에서도 목적 없는 회전 흐름이 계속됐습니다. 3층 출발층은 잠시 정차를 시도하는 차량이 잦았고, 택시 승강장과 환승 동선, 보행 라인과 맞물리며 불규칙한 혼잡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즉, 1층 혼잡은 줄었지만 픽업 수요는 그대로였고 흐름만 다른 층과 구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전형적인 ‘풍선효과’입니다. ■ 사고 위험은 명분일 수 있다… 그 아래 남겨진 공백은 무엇이었나 버스 접근 전 안전 확보는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공항 픽업은 도민에게 생애권이자 실질적 이동 인프라입니다. 관건은 제주공항의 선택 순서입니다. 제주공항은 지난 수년간 렌터카 동선 외부 연계, 택시 승강장 재배치, 버스 접근 동선 확보 등 영업 목적 차량을 위한 구조 설계와 시설 보완에는 적극적으로 예산과 공간을 투입해 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맞이하거나 아이를 태우러 온 도민 차량만큼은 그 어떤 구조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픽업 대기 공간도, 단기 정차 구역도, 안전한 하차 공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흐름은 단속의 대상이 되었고, 이용 동선으로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제주시 역시 “제주는 김포나 인천처럼 지하철 접근성이 없어 차량 의존도가 높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특수성은 구조 설계의 출발점이 되지 못했고, 결과는 더 강한 단속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질문은 좁혀집니다. “차량 의존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왜 구조가 아닌 단속부터 선택했습니까?” ■ 해외 주요 공항의 공통점… 구조 먼저, 단속은 그 위에서 작동 샌프란시스코(SFO), 로스앤젤레스(LAX), 시애틀(SEA), 타이베이(TPE), 쿠알라룸푸르(KUL). 나라별 국제공항 구조는 지역별로 다르지만 공통 원칙 하나는 뚜렷합니다. 픽업 수요를 전제로, 공간과 구조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서 시간 규제와 단속을 작동시킨다는 점입니다. 픽업존, 단기 정차 구역, 무료 대기 주차장(Cell Phone Lot), 회전형 대기 동선 등은 대부분의 국제공항 교통 구조의 기본입니다. 제주는 이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공간 없이, 구조 없이, 단속만 먼저.”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공항 이용자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라는 관점의 문제였습니다. ■ 민원 현장에서 확인된 ‘같은 결론’ 공항 이용객 A씨는 “버스 접근 동선은 정비돼야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속과 픽업 공간 확보는 같이 갔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택시 기사 B씨는 “버스 라인을 막는 차량이 없어진 건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정차할 곳이 없는 건 납득하기 어렵네요. 공항이 설계를 책임져야 하는 영역 아닐까요”라고 했습니다. 도민 C씨는 “트렁크만 열어도 단속 걱정을 하게 생겼어요. 이용자가 아니라 잠재 위반자처럼 느껴져요”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아이를 태우러 왔다는 부모 D씨는 “오늘 와보니 1층은 비더군요. 대신 차들이 주차장과 3층을 계속 맴돌았어요. 혼잡이 해소된 게 아니라 위치만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각자 찬반 입장은 달랐지만, 모두가 공통으로 지적한 사실은 단 하나였습니다. “대체할 구조가 없었다.” ■ 공항공사에 물음… “왜 도민만 구조 밖에 있었나” 한국공항공사는 공항 이용료(PSC)와 주차장 수익, 임대료 등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온 공기업입니다. 렌터카 동선 조정, 택시 승강장과 대기 라인 재구성, 버스 접근 전용 루트 확보 등 공항은 이미 수차례 시설 재배치와 설계 능력을 증명해왔습니다. 그런데 단 한 영역만 비었습니다. 도민 픽업 차량을 위한 구조 설계입니다. 정차할 수 있는 픽업존도 없고, 잠시 머물 수 있는 단기 대기 구역도 없으며, 안전한 회차 동선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구조도 만들지 않은 채, 단속 카메라와 계고 시스템만 서둘렀다는 사실은 행정과 공항공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번 결정이 이용자의 편의를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애초 ‘단속의 필요성’을 우선한 조치라면, 정책의 출발점부터 다시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결국 질문은 한 줄로 압축됩니다. “공항을 이용하는 도민만 왜 구조의 바깥에 서 있어야 하나.” ■ 이미 시작된 단속… 이제는 검증과 책임의 시간 1층 도착장은 정리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빠져나간 흐름이 어디에서 쌓였는지, 공항 주차장의 회전률은 어떤 방향으로 달라졌는지, 출발층은 더 복잡해졌는지, 교통약자 접근성은 개선됐는지 아니면 악화됐는지, 현장이 결과를 말할 차례입니다. 제주국제공항은 관광객의 입국관문이자, 도민에게는 일상의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생활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도민은 단속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동등한 이용자입니다. 궁금한 지점은 단속을 시행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왜 구조가 텅 빈 상태에서 시간을 먼저 줄였는지”, 그리고 “이 비어 있는 구조를 행정과 공항이 어떤 근거와 설명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모아집니다. 혼잡이 실제로 해소됐는지, 아니면 흐름이 다른 층과 주차장으로 이동했을 뿐인지, 공항 외곽 회전 차량만 늘어난 것은 아닌지, 제시한 목표가 현장에서 재현됐는지는 결국 수치와 결과로 확인될 사안입니다. 도민을 구조 바깥으로 밀어낸 이번 결정이 무엇을 남겼는지, 이제 행정과 공항공사는 설명과 책임 그리고 검증 가능한 결과로 답해야 합니다.
2025-12-02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