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이 비처럼 떨어졌다”… 어느날, 남국의 초여름은 능소화 앞에서 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제주의 초여름은 늘 비슷한 듯 시작됩니다. 어느 순간, 계절의 색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햇빛은 길어지고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길 위에는 주홍빛 능소화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한 송이씩 흩날리던 꽃잎은 어느새 길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걸음을 늦춥니다. 올해도 그 풍경이 다시 열립니다. 제6회 비체올린 여름꽃&능소화축제가 20일부터 7월 15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비체올린에서 진행됩니다. 초여름 제주를 대표하는 꽃 축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해마다 여행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제주 관광 흐름이 ‘짧게 보고 이동하는 여행’보다 오래 머무는 체류형 여행 중심으로 바뀌면서 정원형 콘텐츠와 산책형 공간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 주홍 꽃길, 여름의 시작을 만나 우선 비체올린에 들어서면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길목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위로 보랏빛 버베나가 이어지고, 붉은 양귀비꽃이 군데군데 스며들며 풍경의 온도를 조금씩 끌어올립니다 여름이 깊어질 즈음이면 능소화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합니다. 주홍빛 꽃잎이 나무를 따라 길게 내려앉고, 바닥에는 떨어진 꽃잎이 천천히 쌓입니다. 걷는 길 전체가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시기입니다. 비체올린 측은 “해마다 능소화 개화 시기에 맞춰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SNS와 여행 커뮤니티에서도 능소화길 사진과 영상이 꾸준히 공유되면서 초여름 제주 대표 포토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는 분위기입니다. ■ “잠깐 보고 가는 곳”에서, 오래 걷게 되는 공간으로 비체올린은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공간입니다. 제주 돌담과 산책길, 숲길을 중심으로 조성됐고, 인위적으로 화려함을 덧입히기보다 원래 풍경이 가진 분위기를 살리는 방식에 가까운 곳입니다. 공원을 따라 이어지는 수국길은 초여름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겹쳐지며 제주 특유의 습한 공기까지 풍경 안으로 스며듭니다. 블루엔젤 산책길도 인기 공간입니다. 숲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와는 다른 속도의 공기를 느끼게 됩니다. 최근 여행 트렌드가 ‘인증 중심’에서 ‘체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이런 산책형 공간에 대한 선호도도 함께 높아지는 분위기입니다. 관광업계 역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자연형 콘텐츠 확대에 집중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꽃과 함께, 체험 콘텐츠도 확대 비체올린은 꽃과 정원 중심 공간에 액티비티 요소도 함께 결합했습니다. 카약 체험과 드리프트 트라익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정적인 풍경과 활동형 콘텐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포토존도 곳곳에 배치됐습니다. 제주 돌담과 항아리, 꽃길을 활용한 공간 구성이 많아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연인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수요도 높은 편입니다. 비체올린 측은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이동하는 방식보다 한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행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라며 “최근에는 계절별 정원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제주 서부권 관광 동선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꽃보다 오래 남는 건, 그날의 공기 능소화는 오래 붙어 있는 꽃이 아닙니다. 화려하게 피어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바닥으로 흩어져 내립니다. 그래서인지 비체올린의 여름은 유난히 짧은데도 오래 남습니다. 걷다 보면 꽃보다 바람이 먼저 기억나고, 사진보다 그날의 공기가 가만히 되살아납니다. 올여름, 제주는 이 주홍빛 길 앞에서 사람들의 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붙잡고 있습니다.
2026-05-06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