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뒤에 얼음을 올리던 아이, 손종욱의 《Analog Child》
어린 시절, 텔레비전 뒤에 얼음을 올려놓는 작은 비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몰래 만화를 보고 나면 브라운관에는 열기가 남았습니다. 들킬까 걱정한 아이는 얼음으로 TV를 식힌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다른 생각은 멈췄습니다. 손종욱은 그 시간을 “머리가 굉장히 시원했던 때”로 기억합니다. 그 시절 눈에 담았던 색과 표정, 익숙한 형상은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업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갖췄습니다. 산지천갤러리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Analog Child》(아날로그 차일드)입니다. 전시장에는 천사 날개를 단 보라색 존재와 고양이를 안은 소년, 여러 얼굴과 몸이 뒤섞인 인물들이 관람객을 맞습니다. 처음 보는 존재인데도 어딘가 꽤 낯익습니다. 오래전 화면을 스쳐 간 이미지들이 작가 안에서 다시 만나 새 얼굴을 얻었습니다. ■ 줄거리보다 오래 남은 감각 작업에는 미국 애니메이션과 시트콤, 장난감 문화가 스며 있습니다. 이야기보다 오래 남은 것은 과장된 표정과 몸짓, 선명한 색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브라운관은 작가에게 취향과 감각이 차곡차곡 쌓인 시각적 수장고가 됐습니다. 〈요정 뭐 아무나 하나?〉, 〈운수 없는 날〉, 〈이것도 나, 저것도 나〉는 그 안에 남아 있던 조각들을 다시 조합한 결과입니다. 익숙한 요소에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 유머를 보태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장난감‘은 손에 쥐는 물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과 그림, 영상까지 상상하며 가지고 놀 수 있는 모든 것이 작업의 재료가 됐습니다. ■ 화면에서 작품까지 전시는 회화 10점과 조각 1점, 오브제 2점, 영상 1점 등 모두 14점으로 구성됐습니다. 화면에서 만난, 기억에 축적된 이미지는 캔버스와 입체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자르고, 깎고, 붙이는 동안 빠르게 흘러가던 대상에는 질감과 무게가 더해집니다. 《Analog Child》라는 제목도 이런 제작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받아들인 시각 경험을 손으로 다시 빚어 현재 시점의 조형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에 재학 중인 손종욱은 서울과 제주에서 단체전과 협업 전시에 참여하며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Analog Child》는 그동안 쌓아온 작업을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개인전입니다. ■ 유년,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 작품들은 이제 관람객과 시간을 나눕니다. 누군가는 오래전 만화의 색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방바닥에 늘어놓았던 장난감이나 TV 앞에서 보낸 저녁을 기억합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또 다른 방식의 친숙함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TV 뒤에 얼음을 올려가며 만화를 보던 아이는 오래 품어온 인물들을 전시장에 펼쳐놓았습니다. 그 인물들은 한 사람의 기억에서 태어났습니다. 작품 앞에 선 순간부터는 관람객 저마다의 경험과 만나 각기 다른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산지천갤러리 2층에서 열립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2026-07-18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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