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외래 침입종➀] 한라산 넘어 해안까지..'우르르' 떼지어 포착
(앵커)
오랜 시간 고유의 생태계를 유지해온 제주 숲에서 낯선 균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외래종의 번식으로 토착 생태계가 위협받는 현실,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습니다.
JIBS는 8차례에 걸쳐 국내외 사례와 함께, 제주 생태계의 균형을 흔드는 외래 침입종의 실태를 집중 보도합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수개월간의 추적 끝에 드러난 의문의 흔적과 정체를 안수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제주 토착종 노루의 서식지인 한라산 해발 900m.
조릿대를 헤치고 들어가자 진흙 웅덩이가 나타납니다.
바닥에선 어지럽게 찍힌 낯선 동물 발자국도 눈에 띕니다.
노루 발자국보다 더 길고 큰데다, 멧돼지와도 다른 모양입니다.
"돼지보다 좀 뾰족하거든요, 발이 이런 식으로. 돼지는 약간 앞이 넓어요."
이 흔적은 해안과 가까운 오름에서도 발견됐습니다.
곳곳에 깊게 파인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나무껍질은 긁혀 벗겨지고, 풀은 뜯긴 채 남아 있습니다.
장봉길 하가리장
"뿔로 나무를 비벼버리니까 나무 표피가 다 벗겨지면 나무가 죽어버린다 말입니다. 죽지 않아도 생장이 안된다 말이죠."
발자국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JIBS는 도내 언론사 처음으로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9개월간 7곳에서 최소 한 달 이상씩 밀착 관찰한 결과 놀라운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중산간 초지.
끝이 보이지 않는 동물 무리가 줄지어 이동합니다.
얼핏 노루 같아 보이지만, 덩치는 더 크고 무리 규모도 훨씬 거대합니다.
커다란 뿔과 갈색 몸 위 흰 반점이 뚜렷한, 제주에는 없었던 외래종 꽃사슴입니다.
강창완 제주야생동물연구센터 이사
"여기만 해도 30마리 정도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안 보이는 데까지 하면 30마리 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성체보다는 대부분 어린 개체로 보이거든요? 그럼 벌써 밖에 나와서 많이 번식을 했다."
취재진이 카메라를 설치한 7개 지점 가운데 6곳에서 꽃사슴 무리가 포착됐습니다.
한라산과 중산간은 물론 해안 지역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꽃사슴은 지난 1990년대 초, '사슴이 뛰노는 풍경을 되살리겠다'며 세 차례에 걸쳐 10여 마리가 방사됐습니다.
또 사육 농가에서 탈출한 개체와 붉은사슴 등도 뒤섞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상훈 제주야생생물협회 이사
"(꽃사슴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지금 너무 많이 퍼져 있어요. 한라산 일대는 거의 다 있다고 봐야 되고. 그 외 중산간 지역에도 지금 상당히 많은 숫자가 분포돼 있는 것으로 저희는 확인했습니다."
관찰 카메라에 촬영된 무리가 많게는 수십 마리에다, 어린 개체가 다수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이미 안정적인 세대 번식으로 정착 단계를 넘어 잠재적 우점종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홍식 제주대학교 과학교육학부 교수
"이제는 번성기로 들었다. 개체군이 앞으로 20년은 더 번성할 것이다. 그랬을 때 그대로 놔두면 만 마리까지는 간다고 저는 예견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 마리면 20년 뒤에는 1만 마리가 됩니다."
토착종의 서식지를 위협하며 세력을 넓혀가는 외래 사슴. 그 위협은 더 이상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JIBS 안수경입니다.
영상취재 강명철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제주방송 안수경 (skan01@jibs.co.kr) 강명철(kangjsp@naver.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