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민간인 학살 유적지 바로 옆에 맥락과 맞지 않는 '스탬프 투어 설치물'이 조성되는 등 행정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4·3을 지나치게 상품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민생을 위해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단순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제주4·3이 관광상품으로만 소비된다면 본래 의미마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제주4·3을 기억하고 알리는 비영리 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는 오늘(13일) 논평을 내고 "제주4·3의 역사가 관광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 3월 말 다크투어 참여자들과 4·3유적지를 방문했는데 '제주다크투어리즘'이라고 표기된 스템프 설치물을 발견했다"라며,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는 2022년 3월 22일부터 '리맴버 제주4·3 다크투어리즘 모바일 스탬프 투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최근 이와 같이 제주4·3을 관광상품으로만 소비하는 제주자치도의 사업 추진에 우려가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당시 관광협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스탬프 투어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을 감안해 비대면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스탬프를 통해 '지역 내 관광객 소비 견인과 경제 활성화'하는 목적으로 추진함을 밝히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해당 자료에는 '아름다운 제주관광의 다양성 구현'이라는 표현이 언급되기도 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해당 사업은 제주자치도 4·3지원과가 아닌, 관광정책과에서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시설물이 설치된 곳은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 학살터, 큰넓궤, 다랑쉬굴, 정방폭포 등 대표적인 다크투어 유적지 12군데입니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제주4·3 당시인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새벽에 우리나라 군에 의해 민간인 200명가량이 학살된 장소입니다.
다랑쉬굴에서는 학살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12월 18일 굴로 피난을 갔던 인근 마을주민 10여명이 군·경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발각돼 학살된 곳입니다.
정방폭포 역시 4·3 당시 200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당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 가운데 한 곳입니다.
해당 사업과 관련해 나온 리플릿에도 지면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설 관광지나 식·음료 영업점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할애됐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의 역사와 관련 유적지는 단순히 '아름다운 제주관광' 상품이 아니다"라고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제주에는 많은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은 4·3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발생한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명확하게 이뤄진 것이 없다"라고 지적한 뒤, "이런 과정에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로서 제주4·3을 활용하는 것에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단체는 "더욱이 이번 스탬프 투어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4·3유적지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나, 각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역사나 이야기는 7, 8줄의 짧은 설명에 그친다"며 "그보다는 투어 완주상품, 유적지 주변 관광상품 및 업체 소개를 전면에 배치하는 등 제주4·3이 관광의 소재로만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업과 관련해 "사전에 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도청에서도 이런 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바 없었다"며, "제주자치도는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 데 유적지 선정, 유적지 정보의 내용, 제주4·3이 가진 역사적 의미의 전달 방식, 관광 설치물의 위치 등을 검토하기 위한 관련 전문가, 유족, 시민단체 등과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그러한 절차는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관광뿐 아니라 유적지 탐방, 답사를 위해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유적지를 돌며 제주산 음식을 먹고 유적지 주변에서 숙박하는 등 제주도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소비로 이어지고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제주4·3은 기존 관광상품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관광의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제주4·3특별법의 제개정 과정과 같이 제주다크투어리즘 또한 4·3희생자 및 유족, 관련 전문가 및 기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제주4·3이 가진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도의회가 지난 2020년 '제주특별자치도 다크 투어리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재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조례 기능의 정상화를 촉구했습니다.
제주자치도 관계자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련 전문가나 시민단체 등과의 협의가 없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사업은 민간경상보조사업이다 보니, 제주관광협회에서 전체적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업은 관광업체와 같이 상생하고 다크투어리즘에 대해서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라며 "제주4·3이 워낙 비극적인 사건이어서 유관 단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인정했습니다.
제주자치도 관계자는 또 "내년도 사업에는 유관 부서와 공신력 있는 단체 등과 협의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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