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최초 인간 아닌 軍馬가 '하사' 진급
한국·미국서 공로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도 계속
■ 주인의 여동생을 위해 전장으로 보내진 '아침해'
한국전쟁 당시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는 김학문이라는 소년 마주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여명(黎明), 우리말로 '아침해'로 1949년 7월 제주에서 태어난 암말입니다.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를 가졌던 '아침해'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한 명마의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해'의 마주였던 소년 김학문은 당시 지뢰사고로 한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 마련을 위해 1952년 10월 정든 말을 팔게 됩니다.
가격은 250달러로 당시 '아침해'를 구입한 것은 미군 페더슨 중위입니다.
당시 6.25전쟁을 치르는 중이던 미군은 산악지역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물자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차량 대신 군마를 써보기로 했던 겁니다.
이후 두 달 정도 훈련을 받은 '아침해'는 '플레임'이라는 새 이름으로 1952년 미 해병대에 입대합니다.
■ 전장 누빈 '아침해'.. '용기'의 상징으로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물자 수송 임무에 투입된 '아침해'의 활약은 모두의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차량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을 문제 없이 달리며 최대 12발의 포탄을 실어 날랐고, 다른 말들과 달리 영리해서 한 두번 동행하면 혼자 보내도 길을 찾아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청각이 발달해 큰 소리에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길을 오를 때는 물자를 실어 날랐고, 내려올 때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데리고 복귀했습니다.
포탄이 날아올 때는 몸을 바싹 눕히기도 했고, 참호에 피신하는 훈련을 받은 뒤에는 포격이 시작되면 알아서 참호에 몸을 숨기기도 했습니다.
물자를 나르는 군마는 조준사격의 목표가 됐기 때문에 보급병들은 '아침해'에게 임무를 맡기며 '마지막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때마다 '아침해'는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특히 19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치룬 대규모 전투인 일명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 동안 쉼 없이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미 해명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고,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이 '레클리스(Reckless)'로 이름 붙혔습니다.
이후 '레클리스'는 진급을 거듭해 1954년에는 병장으로까지 진급했습니다.
■ 일반 군마에서 하사로 진급.. '전쟁영웅'으로 은퇴
휴전 후 1954년 '레클리스'는 전우들과 함께 미국으로 송환됐습니다.
성대하게 치러진 환영식에서도 '레클리스'는 단연 돋보였고,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1959년 8월에는 하사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이듬해인 1960년 은퇴했고, 퇴직금으로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 받았습니다.
'레클리스'는 은퇴 후에도 동료 전우들의 가정을 찾는 등 퇴역군인의 활동을 이어갔고, 1968년 5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최고의 예우로 장례식을 치렀고, 당시 미국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졌습니다.
■ 군마로 100대 영웅 선정까지.. 추모 움직임 계속
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는 100대 영웅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100대 영웅에는 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과 마더 테레사 등 위인들이 선정됐는데, 여기에 사람이 아닌 군마로 '레클리스'가 선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쟁 정전 60주년인 지난 2013년에는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고, 2016년 팬들턴 해병기지에도 동상에 제막됐습니다.
또 '레클리스' 사망 50년인 지난 2018년에는 켄터키 경마공원에서도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경마계에서도 전쟁영웅 '레클리스(아침해)'를 기리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아침해'와 '돌아온아침해'라는 이름의 말이 나타났고, 미국에서도 '레클리스'라는 경주마가 활동했고, 추모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한국마사회 역시 '아침해'를 기억하기 위해 '레클리스 1953'이라는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레클리스는 전쟁에 동원된 이후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 헌신과 희생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미국 곳곳에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이효형 (getstarted@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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