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이라도 더..' 4·3희생자 찾아주는 이은순씨
마을지 뒤지고 가계도까지 그리며 희생자 발굴
주말에도 마을 어르신 찾아다니며 수소문 '발품'
희생자 존재 모르던 유족에 사실 일러주기도
"가만히 있어도 돼죠. 오는 분들만 접수하면 되는 일인데요. 그런데 그럴 수 없잖아요. 다 동네 일이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인데요."
지난 6월부터 제주4·3희생자 보상급 지급을 위한 신청 접수가 시작된 가운데, 관련 서적을 뒤지고 수소문까지 해가면서 보상금 수급권자를 찾아주는 동 주민센터 직원이 있어 화제입니다.
주인공은 제주4·3희생자 보상금 지급 지원사업으로 제주시 삼양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기간제 직원 이은순씨(54).
삼양동 토박이인 이은순씨는 사업 참여 직원이 접근할 수 있는 조회 시스템을 비롯해 지역의 4·3희생자가 수록된 옛 마을지, 체육대회 연락망, 초등학교 총동문회 자료 등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희생자 찾기를 벌입니다.
10년 정도 삼양초등학교 총동문회 일을 도맡아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휴일인 주말에도 4·3 희생자를 찾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마을 어른들을 만납니다.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희생자들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4·3 관련 서적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4·3계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4·3을 말한다'를 비롯해,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 등을 읽으며 공부를 합니다.
직접 가계도까지 그려가며 파악을 하다보니 유족 당사자도 알지 못했던 집 안의 다른 희생자의 피해 사례까지 알게 돼 해당 유족에게 일러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은순씨는 "형제자매가 희생자인 경우에는 본인들이 청구권이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거든요"라며, "후사가 없으면 형제자매한테 청구권이 가는데 그걸 잘 모르세요. 이런 경우를 찾게 되면 다 알려드리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족에서 몇 명씩 엮인 희생자들의 사례를 조사하다가 봉개, 용강 등 인근 다른 지역의 피해 사실도 파악하게 되어 해당 유족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우리 삼양은 (희생자를 찾다보면)화북, 봉개, 용강, 대흘, 조천쪽까지 다 걸려 있다"며, "저는 될 수 있으면 다 찾아주자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상급 신청 접수가 시작된지 2달 가량이 된 현재까지 이씨의 도움으로 보상금을 신청하게 된 건만 적게 잡아도 200건이 넘습니다.
동 주민센터로 접수된 전체 신청 건수의 7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지난 8월 9일 기준, 삼양동 주민센터로 접수된 보상금 신청 건수는 총 354건으로 제주도내 전체 읍면동에서 가장 많습니다.
"지금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찾아주게 될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저를 이 자리로 이끈 것 같습니다."
이씨에게도 4·3 당시 희생된 친족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똑똑하고 착하기로 소문났던 외삼촌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에 가서 공부하다 혼인을 위해 제주에 돌아왔던 이씨의 외삼촌은 4·3 때 토벌대에 붙잡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씨 외삼촌)이 외지에 가는 것을 한사코 말렸던 이씨의 외조모는 아들을 잃은 이후 평생 죄인처럼 한을 품고 사셨다고 합니다.
오빠가 희생되는 것을 목격한 이씨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지난 2018년 진행된 제6차 4·3희생자 및 유족 신고기간 당시 기간제 조사요원으로 사업에 참여한 경험도 지금처럼 일을 할 수 있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만난 유족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씨의 목표는 기간제 직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청구권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씨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너무 슬픈 사연들이 많았어요. 한 명이라도 더 청구권자를 찾아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보상청구권이 있는 사람에게)'당신 윗대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이라도 희생자를 생각하고 기억하게 해주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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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 뒤지고 가계도까지 그리며 희생자 발굴
주말에도 마을 어르신 찾아다니며 수소문 '발품'
희생자 존재 모르던 유족에 사실 일러주기도
이은순씨.
"가만히 있어도 돼죠. 오는 분들만 접수하면 되는 일인데요. 그런데 그럴 수 없잖아요. 다 동네 일이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인데요."
지난 6월부터 제주4·3희생자 보상급 지급을 위한 신청 접수가 시작된 가운데, 관련 서적을 뒤지고 수소문까지 해가면서 보상금 수급권자를 찾아주는 동 주민센터 직원이 있어 화제입니다.
주인공은 제주4·3희생자 보상금 지급 지원사업으로 제주시 삼양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기간제 직원 이은순씨(54).
삼양동 토박이인 이은순씨는 사업 참여 직원이 접근할 수 있는 조회 시스템을 비롯해 지역의 4·3희생자가 수록된 옛 마을지, 체육대회 연락망, 초등학교 총동문회 자료 등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희생자 찾기를 벌입니다.
10년 정도 삼양초등학교 총동문회 일을 도맡아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휴일인 주말에도 4·3 희생자를 찾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마을 어른들을 만납니다.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희생자들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주말을 반납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니며 수소문을 하는 이은순씨.
4·3 관련 서적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4·3계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4·3을 말한다'를 비롯해,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 등을 읽으며 공부를 합니다.
직접 가계도까지 그려가며 파악을 하다보니 유족 당사자도 알지 못했던 집 안의 다른 희생자의 피해 사례까지 알게 돼 해당 유족에게 일러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은순씨는 "형제자매가 희생자인 경우에는 본인들이 청구권이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거든요"라며, "후사가 없으면 형제자매한테 청구권이 가는데 그걸 잘 모르세요. 이런 경우를 찾게 되면 다 알려드리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족에서 몇 명씩 엮인 희생자들의 사례를 조사하다가 봉개, 용강 등 인근 다른 지역의 피해 사실도 파악하게 되어 해당 유족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우리 삼양은 (희생자를 찾다보면)화북, 봉개, 용강, 대흘, 조천쪽까지 다 걸려 있다"며, "저는 될 수 있으면 다 찾아주자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상급 신청 접수가 시작된지 2달 가량이 된 현재까지 이씨의 도움으로 보상금을 신청하게 된 건만 적게 잡아도 200건이 넘습니다.
동 주민센터로 접수된 전체 신청 건수의 7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지난 8월 9일 기준, 삼양동 주민센터로 접수된 보상금 신청 건수는 총 354건으로 제주도내 전체 읍면동에서 가장 많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다 목이 멘 이은순씨
"지금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찾아주게 될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저를 이 자리로 이끈 것 같습니다."
이씨에게도 4·3 당시 희생된 친족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똑똑하고 착하기로 소문났던 외삼촌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에 가서 공부하다 혼인을 위해 제주에 돌아왔던 이씨의 외삼촌은 4·3 때 토벌대에 붙잡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씨 외삼촌)이 외지에 가는 것을 한사코 말렸던 이씨의 외조모는 아들을 잃은 이후 평생 죄인처럼 한을 품고 사셨다고 합니다.
오빠가 희생되는 것을 목격한 이씨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자료를 보며 설명하는 이은순씨.
또한, 지난 2018년 진행된 제6차 4·3희생자 및 유족 신고기간 당시 기간제 조사요원으로 사업에 참여한 경험도 지금처럼 일을 할 수 있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만난 유족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씨의 목표는 기간제 직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청구권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씨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너무 슬픈 사연들이 많았어요. 한 명이라도 더 청구권자를 찾아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보상청구권이 있는 사람에게)'당신 윗대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이라도 희생자를 생각하고 기억하게 해주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족이 미처 알지 못하는 피해 청구권에 대해 설명하는 이은순씨.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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