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기국수.
제주도에 오면 한 번쯤은 꼭 맛봐야 할 음식 중 한 가지로 꼽히는데요.
쫄깃한 면발과 담백한 국물, 푸짐하고 두툼한 고기 고명까지.
간편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로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주의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기국수가 대중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때는 정부 정책에 의해 명맥이 끊길 뻔하기도 한 이 고기국수를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100년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처럼 돼지 사골국물을 육수로 쓴 지는 더욱 역사가 짧다고 하는데요.
제주어로는 '괴기(고기)국수'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에 대해 소소하게 알아봤습니다.
■ 고기국수, 언제부터 먹었을까?
돼지 육수에 국수 면을 말아 먹는 형태의 고기국수가 탄생한 시점은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일제강점기 정도쯤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 시기 제주에 건면을 생산하는 공장이 최초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메밀로 만든 꿩메밀칼국수가 더 친숙한 음식이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면은 지금처럼 가늘고 긴 면이 아니라 칼국수 반죽보다 두껍고 원형으로 된 짧은 모양의 면이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제비의 중간 정도의 모양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소속 학예사에게 문의한 결과, 박물관 소장 민구(民具) 가운데 가늘고 긴 면을 뽑는데 사용하는 주방도구인 국수틀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울러 당시 제주에서는 결혼식 잔치에서 몸국을 먹었습니다.
이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육수에 해조인 모자반을 넣어 끓인 전통음식입니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잔치가 열리면 돼지를 잡았는데 이 국물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모자반을 넣어 몸국을 끓여먹었던 것이죠.
그런데 일제가 모자반이나 톳 등 해조류를 공출로 수탈을 시작하면서 몸국을 만들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게 된 것이 고기국수의 시초가 됐다는 것입니다.
■명맥 끊길 뻔한 고기국수
고기국수는 한 때 정부 규제정책 때문에 명맥이 끊길 뻔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의례를 간소화하는 '가정의례준칙'이 시행되면서 결혼식 잔치 등 집안일에 돼지를 도축하는 행위가 금지됐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더해 부족한 쌀 생산량을 보완하기 위해 쌀 대신 밀가루를 소비하는 취지의 '혼분식장려운동'을 전개되면서 고기국수가 멸치국수로 한동안 대체됐다고 합니다.
이후 고기국수는 1990년대 제주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제주가 관광지로 조명 받을수록 고기 국수의 명성은 날로 더해져 갔고, 종국에는 국수문화거리까지 조성되는 등 제주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편, 이전까지 고기국수는 단순히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로 국수를 만들었다면, 이때부터는 돼지 사골을 육수로 하는 지금과 같은 조리 방식의 고기국수로 탈바꿈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국숫집을 찾아서
향토음식은 사전적 의미로 '시골이나 고장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인 만큼, 이런 음식을 최초로 상품화해 판매한 음식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당은 어딜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겠죠.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현재 상호명에 "국수"가 들어간 음식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제주시 동문시장에 있는 'ㄱ식당'이었습니다.
이 식당은 제주시로부터 1973년 3월 19일에 영업신고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서귀포시에선 서귀동에 있는 또 다른 'ㄱ식당'이 1976년 12월 7일자로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상호명에 "국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식당의 경우까지 전부 파악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편, 현재 가장 오래된 국숫집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진 'ㅅ국수'는 할머니와 며느리, 손녀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사장님의 이야길 들어봤는데요.
초대 창업자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에 따르면, 6·25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대 제주시 애월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며느리와 손녀딸로 이어지면서 수십 년을 국수 외길 인생을 걸어오셨는데 지금 제주시 연동으로 터를 옮겨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차기 4대 후계자도 키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차기 대표는 남성이 유력하다는 귀띔이 있었습니다.
현재 3대 대표는 "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 집에는 제주자치도로부터 가업승계 음식점으로 지정됐다는 공식 증서가 있습니다.
고기국수는 일제의 수탈과 함께 등장한 이후, 중앙 정부의 규제로 명맥이 끊길 뻔 했다가, 이후 제주도가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함께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음식은 제주의 근대화와 산업화, 관광지화를 함께 겪으며 우리 곁에 정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점심, 고기국수 한 그릇 어떠세요?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기국수
고기국수.
제주도에 오면 한 번쯤은 꼭 맛봐야 할 음식 중 한 가지로 꼽히는데요.
쫄깃한 면발과 담백한 국물, 푸짐하고 두툼한 고기 고명까지.
간편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로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주의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고기국수가 대중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때는 정부 정책에 의해 명맥이 끊길 뻔하기도 한 이 고기국수를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100년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처럼 돼지 사골국물을 육수로 쓴 지는 더욱 역사가 짧다고 하는데요.
제주어로는 '괴기(고기)국수'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에 대해 소소하게 알아봤습니다.
고기국수
■ 고기국수, 언제부터 먹었을까?
돼지 육수에 국수 면을 말아 먹는 형태의 고기국수가 탄생한 시점은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일제강점기 정도쯤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 시기 제주에 건면을 생산하는 공장이 최초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메밀로 만든 꿩메밀칼국수가 더 친숙한 음식이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면은 지금처럼 가늘고 긴 면이 아니라 칼국수 반죽보다 두껍고 원형으로 된 짧은 모양의 면이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제비의 중간 정도의 모양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소속 학예사에게 문의한 결과, 박물관 소장 민구(民具) 가운데 가늘고 긴 면을 뽑는데 사용하는 주방도구인 국수틀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짧게 끊어진 메밀칼국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 》, 국립자연사박물관, 2019
아울러 당시 제주에서는 결혼식 잔치에서 몸국을 먹었습니다.
이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육수에 해조인 모자반을 넣어 끓인 전통음식입니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잔치가 열리면 돼지를 잡았는데 이 국물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모자반을 넣어 몸국을 끓여먹었던 것이죠.
그런데 일제가 모자반이나 톳 등 해조류를 공출로 수탈을 시작하면서 몸국을 만들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게 된 것이 고기국수의 시초가 됐다는 것입니다.
고기국수
■명맥 끊길 뻔한 고기국수
고기국수는 한 때 정부 규제정책 때문에 명맥이 끊길 뻔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전통적인 관혼상제의 의례를 간소화하는 '가정의례준칙'이 시행되면서 결혼식 잔치 등 집안일에 돼지를 도축하는 행위가 금지됐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더해 부족한 쌀 생산량을 보완하기 위해 쌀 대신 밀가루를 소비하는 취지의 '혼분식장려운동'을 전개되면서 고기국수가 멸치국수로 한동안 대체됐다고 합니다.
이후 고기국수는 1990년대 제주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제주가 관광지로 조명 받을수록 고기 국수의 명성은 날로 더해져 갔고, 종국에는 국수문화거리까지 조성되는 등 제주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편, 이전까지 고기국수는 단순히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로 국수를 만들었다면, 이때부터는 돼지 사골을 육수로 하는 지금과 같은 조리 방식의 고기국수로 탈바꿈했다고 합니다.
고기국수
■최초의 국숫집을 찾아서
향토음식은 사전적 의미로 '시골이나 고장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인 만큼, 이런 음식을 최초로 상품화해 판매한 음식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당은 어딜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겠죠.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현재 상호명에 "국수"가 들어간 음식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제주시 동문시장에 있는 'ㄱ식당'이었습니다.
이 식당은 제주시로부터 1973년 3월 19일에 영업신고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서귀포시에선 서귀동에 있는 또 다른 'ㄱ식당'이 1976년 12월 7일자로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상호명에 "국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식당의 경우까지 전부 파악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기국수
한편, 현재 가장 오래된 국숫집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진 'ㅅ국수'는 할머니와 며느리, 손녀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사장님의 이야길 들어봤는데요.
초대 창업자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에 따르면, 6·25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대 제주시 애월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며느리와 손녀딸로 이어지면서 수십 년을 국수 외길 인생을 걸어오셨는데 지금 제주시 연동으로 터를 옮겨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차기 4대 후계자도 키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차기 대표는 남성이 유력하다는 귀띔이 있었습니다.
현재 3대 대표는 "할머니 때부터 이어온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 집에는 제주자치도로부터 가업승계 음식점으로 지정됐다는 공식 증서가 있습니다.
고기국수는 일제의 수탈과 함께 등장한 이후, 중앙 정부의 규제로 명맥이 끊길 뻔 했다가, 이후 제주도가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함께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음식은 제주의 근대화와 산업화, 관광지화를 함께 겪으며 우리 곁에 정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점심, 고기국수 한 그릇 어떠세요?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팥 갈게 블렌더 집 가져가도 돼요?" 진상 손님.. 사장은 '황당'
- ∙ “그래서 ‘내란 공범’이라 불리는 것”.. 나경원 발언의 파장과 민주당의 반격
- ∙ “비상계엄이 통치행위?” 윤상현 ‘후폭풍’.. 제명 청원 6만 명 돌파.. 하다하다 ‘몽둥이가 답’ 역풍까지
- ∙ 라면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이색기부 눈길 [삶맛세상]
- ∙ "회사 짤리면 얼마 못 버티는데.." 직장인 10명 중 4명 내년 "실직 가능성"
- ∙ 한라산 관음사 코스 오르다 심정지.. 50대 관광객 숨져
- ∙ “무너진 공권력과 난동의 대가”.. 그래서, 윤상현 “몽둥이가 답?” 어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