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수돗물 공급이 시작된 건 196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그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의 식수원은 해안가와 하천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였습니다.
용천수를 길어 나르는건 제주 여성들이 도맡아야 했습니다.
제주시내에서 가장 큰 용천수는 산짓물이었지만, 해안가라 밀물 때면 바닷물이 밀려와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락쿳물' 용천수에서 물을 긷고 빨래하는 제주 아낙네들 (제주 옛 모습, 제주시)
이때문에 산짓물 보다 1킬로미터 가량 상류에 있던 '가락쿳물'이란 용천수가 식수로 더 많이 이용됐습니다.
가락쿳물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허벅을 등에 짊어진 아낙네와 여자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락쿳물에서 빨래도 하고, 물허벅엔 물을 가득 길어 날랐습니다.
가락쿳물 주변 남수각 일대엔 초가집이 즐비했고, 이 일대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습니다.
물허벅을 지고 가락쿳물을 오르내렸던 제주 아낙네들(제주 옛 모습, 제주시)
당시 제주 여성들은 산지천 아래까지 내려가 물허벅에 물을 채운 후 비탈진 언덕길을 수 없이 오르내렸습니다.
물허벅을 지고 수 킬로미터를 떨어진 집까지 오가는 아낙네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물허벅을 지고 가다 힘이 들면 쉬다가던 곳 쉼팡도 있었습니다.
가락쿳물에서 올라오는 도중에 있던 쉼팡. 오현단 울타리 옆 소나무 밑이 쉼팡이었다.(제주 옛 모습, 제주시)
쉼팡은 그저 쉬다가는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소나무 밑 쉼팡에 아낙네들이 모여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며, 일상의 버거움을 덜어내기도 했습니다.
가락쿳물은 수돗물이 공급된 후에도 여전히 식수원이자 빨래터로 이용됐습니다.
1970년대 초 가락쿳물 모습. 지붕까지 설치된 빨래터가 만들어져 있다.(남기섭)
하지만 1974년 가락쿳물 위쪽으로 제주칼호텔이 지어진 이후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칼호텔 공사를 하면서 용천수 물길을 끊어버렸다는 아낙네들의 원성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가리쿳물에서 물허벅을 지고 한참을 올라와야 했던 오현로. 왼쪽 소나무가 쉼팡이다. (제주 옛 모습, 제주시)
가락쿳물에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게 될때까지 그 오랜 세월동안 제주 아낙네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리고, 쉼팡에 모여 쉬다 가던 길이 지금의 오현로입니다.
현재 오현로 모습
하지만 제주읍성을 복원하면서 옛 길을 확장하고, 아스팔트 포장이 되면서 예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가락쿳물이 어디 있었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락쿳물 주변 모습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위:1960년대 남수각 모습 아래:가옥이 철거되고 도로가 만들어진 남수각 현재 모습
해마다 큰 비가 오면 가락쿳물이 있던 남수각 일대 주택가가 침수되는 피해가 이어져 왔고, 1980년대 초 남수각의 모든 주택이 철거됐습니다.
지금은 남수각 한쪽에 산책로가 조성됐고, 다른 쪽엔 고가도로가 생겨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물허벅을 지고 가던 아낙네들의 쉼팡 역할을 했던 소나무도 도로를 확장하면서 베어져 사라졌습니다.
가락쿳물에서 물을 길어 물허벅을 지고 오르내리던 길에 오현로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면서 옛 제주 여성들의 삶의 고단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길이 돼 버렸습니다.
물허벅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여자 아이들 (제주 옛 모습, 제주시)
귀양 온 사대부를 기리기 위해 오현단을 찾는 선비들의 발자국보다 수 천배, 수 만배 더 많은 제주 아낙네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이 길에 '물허벅길'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면 그녀들의 얘기가 살아 있는 역사로 이어질 수도 있을 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JIBS 제주방송 강석창(ksc064@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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