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첫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새벽 풍경
코로나19, 경기 악화에도 "더 나아질 것" '희망'
마지막 커피리어카, 할망장터 막둥이 등 상인 이야기[편집자 주]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차게 새벽을 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새해 일출만큼 뜨겁고 치열한 보통사람들의 새벽 이야기가 좀 더 희망찬 한 해를 여는 자양분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새벽 5시 40분.
좌판을 정비하는 상인들의 손놀림이 새벽 어스름을 밀어내는 밝은 전구 불빛 아래에서 분주합니다.
과일과 채소, 생선을 파는 좌판은 가장 먼저 준비를 마쳤고, 맛있는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들은 어묵 국물을 데우고 기름 온도를 높이며 손님 맞을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옷 가게 상인은 일찌감치 상품 진열을 마치고 옆 점포 상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점심나절은 돼야 손님이 붐비는 식당가 역시 이른 새벽부터 파를 써는 등 재료를 다듬으며 치열한 아침을 보냈습니다.
2023년, 계묘년 처음 열린 오늘(2일)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의 새벽 모습입니다.
100년도 더 전인 1905년쯤 처음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시장은 현재 1,000명이 넘는 상인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찾았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발길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어김없이 시장으로 발걸음해 새벽을 열고 있습니다.
■ 새벽 2시부터 나와서 채소 손질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묵묵히 채소를 손질하고 있던 상인 고 모 씨(83) 앞에는 잘 손질된 알타리무와 쪽파, 배추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고 씨는 "새벽 2시부터 나와서 하고 있다"면서도 "나보다 더 일찍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며 대단치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0년 넘게 시장일과 다른 일을 함께 하면서 집안 살림을 그럭저럭 챙겼다"며, "새해 첫 장이니 오늘은 장사가 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했습니다.
■ '상인들의 상인' 시장 마지막 커피 리어카
시장에서 주요 고객인 같은 '상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상인이 있습니다.
바로 커피와 쌍화탕 등을 파는 커피 리어카 상인입니다.
커피 100잔을 판다면, 80~90잔은 동료 상인들에게 판매되는 식인데요.
한창때는 시장 내에 4대가 커피 리어카가 영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20년 경력의 김 모 씨(70) 단 한 명만이 리어카를 끌고 있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에는 보행 체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곤 하지만, 새벽녘 상인들의 언 몸을 녹여주는 김 씨의 음료는 좌판을 깔기 위해 허기를 달랠 시간조차 부족한 상인들에겐 작은 위안입니다.
바쁠 때는 돈도 바로 받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저녁에 한꺼번에 받으러 다닙니다.
모두 오랜 단골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돈 많이 벌라"는 덕담은 훈훈한 덤입니다.
마지막 커피 리어카의 오너인 김 씨도 장사를 접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새벽 1시 30분부터 나와서 저녁까지 장사를 한다. 제주시 오일장과 다른 장터 두 곳을 뛰는데도 한 달 수입이 150만 원을 넘지 못한다"며, "한 1년 정도 더 해보고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김 씨는 오늘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동료 상인들을 위해 각자 취향에 맞는 비율의 커피를 타고 있습니다.
■할망(할머니)장터 막둥이는 '7학년 7반'
올해 '7학년 7반'인 상인 김모씨.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해 유자차로 언 몸을 녹이는 김 씨는 휠체어 장애인입니다.
직접 만든 참기름과 고추장 등 장류, 그외 채소류를 판매하는 김 씨는 사실 장사를 시작한지 3, 4년 밖에 되지 않은 말 그대로 할망장터 막내급에 해당합니다.
90대 고령인 먼 친척 할머니가 몸이 아파서 장사를 못 하게 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것.
김 씨는 좌판 옆 휠체어를 가리키며 "(몸이 불편해도)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지"라며 "시장에서 다른 장사를 하고 있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시장을 오가고 있다. 형제들이 없으면 장사도 할 수 없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만으론 사실 큰 돈을 벌 수 없다"며 "살림살이 현상유지하고 반찬값 버는 재미로 장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약재 팔아서 딸 미국 학교 보내
해가 뜨기도 전부터 부지런히 약재가 담긴 상자를 옮기고 진열하는 중년 부부.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약재상과 건강원을 운영하며 장날이면 부지런히 새벽부터 좌판을 까는 이들의 얼굴에는 새해 희망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내 신 모 씨(58) "여기서 장사를 하면서 딸을 임신하고 키워냈다. 어릴 때 딸이 이곳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상호명이 바뀌었지만 예전엔 '지혜네 약재상'으로 통했다"고 말했습니다.
신 씨는 "딸이 올해 고3인데 국제학교에 입학해서 6월에 졸업한다"며 "미국에 원서를 냈는데 앞으로 딸의 학비를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서 장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갑내기 남편 황 모 씨(58) "새해가 돼서 각오와 마음가짐이 새롭다. 우선 건강이 최고다"라며, "지금은 장사가 잘 안 되지만 1~2년 버티면 좋은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남는 게 없어도 사람이 좋아서 장사해요
코로나19 이후 식당 문을 열어도 남는 게 없다는 송 모 씨(75)의 낙은 그래도 여전히 장사입니다.
송 씨는 "코로나19로 손님이 헤아릴 수 있을 정도 줄어들었는데, 요새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면서 "그래도 장사 도와주는 아줌마 인건비와 재료비를 빼면 아들 인건비와 내 인건비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것이다. 작년에는 아줌마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서 마이너스였다"라며, "그나마 아빠(남편)가 농사를 해서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송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말투에는 여유와 농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파 몇 년 간 쉬다가 지난해 초 다시 생업으로 복귀하면서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찾은 것입니다.
송 씨는 "장사하는 건 산다는 맛"이라며, "사람들도 만나고 얼마나 좋나. 집에 있었으면 잠이나 잤을 것이고, 잠이 안 오면 이래 누웠다, 저래 누웠다 했을 시간인데, 장에 나오니 사람들도 만나고 막 기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장사 전날부터 나와 육수를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고, 장사 당일도 새벽부터 나와 밥과 국을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일상도 송 씨의 희망 찬 신바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코로나19, 경기 악화에도 "더 나아질 것" '희망'
마지막 커피리어카, 할망장터 막둥이 등 상인 이야기[편집자 주]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차게 새벽을 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새해 일출만큼 뜨겁고 치열한 보통사람들의 새벽 이야기가 좀 더 희망찬 한 해를 여는 자양분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판매할 갈치를 선별하는 상인.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새벽 5시 40분.
좌판을 정비하는 상인들의 손놀림이 새벽 어스름을 밀어내는 밝은 전구 불빛 아래에서 분주합니다.
과일과 채소, 생선을 파는 좌판은 가장 먼저 준비를 마쳤고, 맛있는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들은 어묵 국물을 데우고 기름 온도를 높이며 손님 맞을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옷 가게 상인은 일찌감치 상품 진열을 마치고 옆 점포 상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점심나절은 돼야 손님이 붐비는 식당가 역시 이른 새벽부터 파를 써는 등 재료를 다듬으며 치열한 아침을 보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2023년, 계묘년 처음 열린 오늘(2일)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의 새벽 모습입니다.
100년도 더 전인 1905년쯤 처음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시장은 현재 1,000명이 넘는 상인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찾았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발길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어김없이 시장으로 발걸음해 새벽을 열고 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채소 상인 고모씨가 채소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
■ 새벽 2시부터 나와서 채소 손질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묵묵히 채소를 손질하고 있던 상인 고 모 씨(83) 앞에는 잘 손질된 알타리무와 쪽파, 배추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고 씨는 "새벽 2시부터 나와서 하고 있다"면서도 "나보다 더 일찍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며 대단치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0년 넘게 시장일과 다른 일을 함께 하면서 집안 살림을 그럭저럭 챙겼다"며, "새해 첫 장이니 오늘은 장사가 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마지막 커피리어카 운영자 김모씨.
■ '상인들의 상인' 시장 마지막 커피 리어카
시장에서 주요 고객인 같은 '상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상인이 있습니다.
바로 커피와 쌍화탕 등을 파는 커피 리어카 상인입니다.
커피 100잔을 판다면, 80~90잔은 동료 상인들에게 판매되는 식인데요.
한창때는 시장 내에 4대가 커피 리어카가 영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20년 경력의 김 모 씨(70) 단 한 명만이 리어카를 끌고 있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에는 보행 체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곤 하지만, 새벽녘 상인들의 언 몸을 녹여주는 김 씨의 음료는 좌판을 깔기 위해 허기를 달랠 시간조차 부족한 상인들에겐 작은 위안입니다.
바쁠 때는 돈도 바로 받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저녁에 한꺼번에 받으러 다닙니다.
모두 오랜 단골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돈 많이 벌라"는 덕담은 훈훈한 덤입니다.
마지막 커피 리어카의 오너인 김 씨도 장사를 접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새벽 1시 30분부터 나와서 저녁까지 장사를 한다. 제주시 오일장과 다른 장터 두 곳을 뛰는데도 한 달 수입이 150만 원을 넘지 못한다"며, "한 1년 정도 더 해보고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김 씨는 오늘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동료 상인들을 위해 각자 취향에 맞는 비율의 커피를 타고 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할망장터 '막둥이' 김모씨.
■할망(할머니)장터 막둥이는 '7학년 7반'
올해 '7학년 7반'인 상인 김모씨.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해 유자차로 언 몸을 녹이는 김 씨는 휠체어 장애인입니다.
직접 만든 참기름과 고추장 등 장류, 그외 채소류를 판매하는 김 씨는 사실 장사를 시작한지 3, 4년 밖에 되지 않은 말 그대로 할망장터 막내급에 해당합니다.
90대 고령인 먼 친척 할머니가 몸이 아파서 장사를 못 하게 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것.
김 씨는 좌판 옆 휠체어를 가리키며 "(몸이 불편해도)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지"라며 "시장에서 다른 장사를 하고 있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시장을 오가고 있다. 형제들이 없으면 장사도 할 수 없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만으론 사실 큰 돈을 벌 수 없다"며 "살림살이 현상유지하고 반찬값 버는 재미로 장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오늘 판매할 약재들을 정리하는 황모씨.
■약재 팔아서 딸 미국 학교 보내
해가 뜨기도 전부터 부지런히 약재가 담긴 상자를 옮기고 진열하는 중년 부부.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약재상과 건강원을 운영하며 장날이면 부지런히 새벽부터 좌판을 까는 이들의 얼굴에는 새해 희망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내 신 모 씨(58) "여기서 장사를 하면서 딸을 임신하고 키워냈다. 어릴 때 딸이 이곳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상호명이 바뀌었지만 예전엔 '지혜네 약재상'으로 통했다"고 말했습니다.
신 씨는 "딸이 올해 고3인데 국제학교에 입학해서 6월에 졸업한다"며 "미국에 원서를 냈는데 앞으로 딸의 학비를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서 장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갑내기 남편 황 모 씨(58) "새해가 돼서 각오와 마음가짐이 새롭다. 우선 건강이 최고다"라며, "지금은 장사가 잘 안 되지만 1~2년 버티면 좋은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손님을 맞은 막바지 준비를 하는 송씨.
■남는 게 없어도 사람이 좋아서 장사해요
코로나19 이후 식당 문을 열어도 남는 게 없다는 송 모 씨(75)의 낙은 그래도 여전히 장사입니다.
송 씨는 "코로나19로 손님이 헤아릴 수 있을 정도 줄어들었는데, 요새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면서 "그래도 장사 도와주는 아줌마 인건비와 재료비를 빼면 아들 인건비와 내 인건비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것이다. 작년에는 아줌마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서 마이너스였다"라며, "그나마 아빠(남편)가 농사를 해서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송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말투에는 여유와 농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파 몇 년 간 쉬다가 지난해 초 다시 생업으로 복귀하면서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찾은 것입니다.
송 씨는 "장사하는 건 산다는 맛"이라며, "사람들도 만나고 얼마나 좋나. 집에 있었으면 잠이나 잤을 것이고, 잠이 안 오면 이래 누웠다, 저래 누웠다 했을 시간인데, 장에 나오니 사람들도 만나고 막 기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장사 전날부터 나와 육수를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고, 장사 당일도 새벽부터 나와 밥과 국을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일상도 송 씨의 희망 찬 신바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오늘(2일) 새벽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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