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판결 때문 불가피하게 노키즈존 운영"
아동이 다친 사고, 손해배상 소송전으로 잇따라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 발의돼 찬반 논란 팽팽
"부모, 업주 모두 책임.. 노키즈존, 최후 수단돼야"[법잇수다는 별의별 사건 중 화제가 되거나 의미 있는 판결을 수다 떨 듯 얘기합니다. 언젠가 쏠쏠하게 쓰일 수도 있는 법상식도 전합니다.]
"사고에 대한 피해를 업주가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업주들이 노키즈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자치도의회가 전국 최초로 발의한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 심의가 진행된 그제(11일) 국민의힘 강하영 의원이 던진 말입니다.
과연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냐, 아니면 업주의 정당한 권리냐.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인권 차별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업주의 자율과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팽팽합니다.
강 의원의 말대로 "사고로 다친 어린이의 피해를 업주가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 때문에 업주들이 노키즈존을 자체적으로 지정해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까지 있습니다.
도대체 과거에 어떤 판결들이 있었기에 노키즈존이 하나둘 늘고 어쩌다 논란까지 생겼을까.
판례를 들여다봤습니다.
■ “책임자가 관리 안 해서 내 아이 다쳐”
1984년 7월 서울에서 한 어린이가 교회건물 지하로 향하는 계단 위를 덮은 미끄럼틀 형태의 덮개에서 놀다가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친 어린이의 부모는 교회건물 관리책임자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덮개가 미끄럼틀처럼 경사져 있고, 평소 어린이들이 몰래 노는 것을 알면서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원심 법원은 교회건물 관리책임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
애초 미끄럼틀 형태 계단 덮개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시설이지 놀이기구가 아니고, 문제의 계단이 있는 곳은 출입이 금지돼 왔던 사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관리책임자가 원칙적으로 어린이 출입이 금지돼 있는 곳에서 어린이가 놀다가 다칠 것까지 예상해 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작물, 즉 이 사건의 계단 덮개 관리책임자에게 부과되는 방호조치의무는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것을 뜻한다는 법리가 적용됐습니다.
■ 놀이방에서 다친 어린이.. 업주가 보상
어린이 놀이방에서 놀다가 다친 어린이에게 놀이방 업주가 수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례도 있습니다.
2013년 8월 전북 한 어린이 놀이방에서 정글짐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던 만 4세 어린이가 추락해 골절상을 입어 크게 다쳤습니다.
이 어린이의 부모는 “놀이기구를 타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등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 해 사건이 발생했다”며 놀이방 업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놀이방 업주는 “부모 역시 놀이기구를 살펴 위험한 부분을 보고, 안전관리요원에게 개별적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쇼핑을 하러 갔다”며 모든 책임이 업주인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법원은 “놀이방 측에서 어린이들을 보호, 감독한다는 점이 전제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어린이에게 5,000만 원대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가 기나긴 다툼 끝에 금액이 조정되기도 했습니다.
■ 논란의 노키즈존 금지 조례 뭐길래
이처럼 판례에서 어린이들이 시설이나 영업점에서 다쳐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진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어린이가 출입하는 시설에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건 사실입니다.
업주는 이러한 책임까지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노키즈존을 지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키즈존 논란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오랫동안 해묵은 논쟁거리입니다.
특히 제주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업소가 많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노키즈존 업소도 더 많은 상황입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지난달 전국 최초로 제주자치도의회가 발의한 ‘아동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
이 조례안은 그제(11일) 제주자치도의회 심의에서도 뚜렷하게 갈린 찬반 의견만 확인한 채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 노키즈존 조례 향방은
우선 조례안 이름대로 노키즈존 지정 금지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조례안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아동복지법 어디에도 노키즈존 지정 금지를 강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죠.
조례안 발의 목적은 어린이가 인권 차별로 상처를 받는 일을 막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핵심은 어른들이 어떻게 인권 차별을 없애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느냐 문제입니다.
2020년 김정수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아동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헌법적 과제(노키즈존 관련 정당성 논의를 중심으로)’ 연구에서 노키즈존 주장은 정당성이 있다면서도 부모, 영업주의 책임 모두를 강조합니다.
연구에서 김 교수는 “부모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행복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자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업주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노키즈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아동을 동반한 부모에게는 특별히 주의해 줄 것을 먼저 부탁하고 사전에 충분히 인지시키는 운영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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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이 다친 사고, 손해배상 소송전으로 잇따라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 발의돼 찬반 논란 팽팽
"부모, 업주 모두 책임.. 노키즈존, 최후 수단돼야"[법잇수다는 별의별 사건 중 화제가 되거나 의미 있는 판결을 수다 떨 듯 얘기합니다. 언젠가 쏠쏠하게 쓰일 수도 있는 법상식도 전합니다.]
"사고에 대한 피해를 업주가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업주들이 노키즈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자치도의회가 전국 최초로 발의한 '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 심의가 진행된 그제(11일) 국민의힘 강하영 의원이 던진 말입니다.
과연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냐, 아니면 업주의 정당한 권리냐.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인권 차별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업주의 자율과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팽팽합니다.
강 의원의 말대로 "사고로 다친 어린이의 피해를 업주가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 때문에 업주들이 노키즈존을 자체적으로 지정해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까지 있습니다.
도대체 과거에 어떤 판결들이 있었기에 노키즈존이 하나둘 늘고 어쩌다 논란까지 생겼을까.
판례를 들여다봤습니다.
■ “책임자가 관리 안 해서 내 아이 다쳐”
1984년 7월 서울에서 한 어린이가 교회건물 지하로 향하는 계단 위를 덮은 미끄럼틀 형태의 덮개에서 놀다가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친 어린이의 부모는 교회건물 관리책임자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덮개가 미끄럼틀처럼 경사져 있고, 평소 어린이들이 몰래 노는 것을 알면서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원심 법원은 교회건물 관리책임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
애초 미끄럼틀 형태 계단 덮개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시설이지 놀이기구가 아니고, 문제의 계단이 있는 곳은 출입이 금지돼 왔던 사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관리책임자가 원칙적으로 어린이 출입이 금지돼 있는 곳에서 어린이가 놀다가 다칠 것까지 예상해 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작물, 즉 이 사건의 계단 덮개 관리책임자에게 부과되는 방호조치의무는 위험성에 비례하여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것을 뜻한다는 법리가 적용됐습니다.
■ 놀이방에서 다친 어린이.. 업주가 보상
어린이 놀이방에서 놀다가 다친 어린이에게 놀이방 업주가 수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례도 있습니다.
2013년 8월 전북 한 어린이 놀이방에서 정글짐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던 만 4세 어린이가 추락해 골절상을 입어 크게 다쳤습니다.
이 어린이의 부모는 “놀이기구를 타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등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 해 사건이 발생했다”며 놀이방 업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놀이방 업주는 “부모 역시 놀이기구를 살펴 위험한 부분을 보고, 안전관리요원에게 개별적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쇼핑을 하러 갔다”며 모든 책임이 업주인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법원은 “놀이방 측에서 어린이들을 보호, 감독한다는 점이 전제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어린이에게 5,000만 원대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가 기나긴 다툼 끝에 금액이 조정되기도 했습니다.
■ 논란의 노키즈존 금지 조례 뭐길래
이처럼 판례에서 어린이들이 시설이나 영업점에서 다쳐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진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어린이가 출입하는 시설에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건 사실입니다.
업주는 이러한 책임까지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노키즈존을 지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키즈존 논란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오랫동안 해묵은 논쟁거리입니다.
특히 제주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업소가 많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노키즈존 업소도 더 많은 상황입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지난달 전국 최초로 제주자치도의회가 발의한 ‘아동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
이 조례안은 그제(11일) 제주자치도의회 심의에서도 뚜렷하게 갈린 찬반 의견만 확인한 채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 노키즈존 조례 향방은
우선 조례안 이름대로 노키즈존 지정 금지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조례안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아동복지법 어디에도 노키즈존 지정 금지를 강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죠.
조례안 발의 목적은 어린이가 인권 차별로 상처를 받는 일을 막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핵심은 어른들이 어떻게 인권 차별을 없애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느냐 문제입니다.
2020년 김정수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아동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헌법적 과제(노키즈존 관련 정당성 논의를 중심으로)’ 연구에서 노키즈존 주장은 정당성이 있다면서도 부모, 영업주의 책임 모두를 강조합니다.
연구에서 김 교수는 “부모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행복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자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업주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노키즈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아동을 동반한 부모에게는 특별히 주의해 줄 것을 먼저 부탁하고 사전에 충분히 인지시키는 운영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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