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김광수 제주자치도교육감이 취임 첫 교육공론화 의제로 남중과 여중 등 단성(單性) 중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제주지역 중학생들의 통학 여건을 개선하고, 학교 선택권 강화를 위한 취지라고 하는데요.
지난 2021년 불발된 제주외국어고의 일반고 전환 의제 이후 2년 만에 채택된 교육공론화 의제여서 앞으로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 제주의 대표적인 남자 중·고등학교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오현중·고등학교에 여학생들이 재학했던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이번엔 제주도내 학교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봤습니다.
■ 남학교에 여학생이 다녔다고?
앞서 설명 드렸듯 오현중·고등학교의 이야기입니다.
오현중은 지난 1946년 개교한 이래 2만 5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951년 개교한 오현고도 2만 7,19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제주 교육 50년, 오현고 50년》 교지에는 "남학교인 오현중·고등학교에 여학생이 재학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실로 오현교에 여학생이 다녔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 숫자도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해 279명의 여학생이 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여학생이 남학교에 다녔다고 하니 뭔가 두근거리는 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던 분들도 계실 텐데요. 여기엔 사실 6·25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비극이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초기 제주에 많은 피난민이 몰리면서 덩달아 교육 수요도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이른바 '피난학교'였습니다.
오현중학교 운동장에 10개의 천막교실을 세워두고 다른 지역에서 피난 온 학생들이 공부를 했다는 것인데요. 이 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51년 4월, 오현고등학교(1951년 9월)의 개교 시점보다 5개월가량 앞선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이 피난학교는 제주지역 최초 인문계 고등학교인 오현고가 문을 여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서울의 유명 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도 운동장에 설치된 천막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당시 오현 학생들에게도 자극제가 작용했고, 이로 인해 그동안 중단됐던 오현고 설립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육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실제 학교를 설립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1953년 기준, 오현분교에 다녔던 학생은 고등학생 296명(남자 195명, 여자 101명), 중학생 486명(남자 308명, 여자 178명) 등 모두 782명이었다고 합니다.
피난학교는 설립 4년만인 1955년 3월 24일 폐교됐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학생은 출신 학교로 복귀했고, 복귀하지 않은 학생들은 본교에 편입해 졸업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제주도에 정착해 졸업장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제주 학교 교가에 "백두산" 등장, 한라산이 아니고?
"백두산 뻗은 줄기 앞으로 흘러~"
4분의 4박자 행진곡 느낌을 풍기는 이 노래의 가사는 제주북초등학교의 교가 첫 구절입니다.
제주에 있는 학교인데 한라산이 아닌, 백두산이 나와 의아해하실 분들이 있으실 텐데요.
힌트는 바로 제주북초가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제주북초는 100년도 더 전인 1907년 1월에 제주관립 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5월에 4년제 학교로 개교합니다.
현재 백두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교가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국어 연구에 매진했던 장지영 선생이 작사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장지영 선생이 6·25한국전쟁으로 제주에 피난을 왔을 때 가사를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제주에 와서도 일제시기 일본어로 불렸던 교가를 새롭게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특히, 그는 1935년 1월부터 표준어 사정(査正)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2년간 1만 개의 우리말 어휘를 정립했습니다. 그 결과 1942년엔 '조선어대사전'을 발간됐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긴 했지만 남과 북의 분단이 고착화되기 전이었던 당시 대중의 인식을 감안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이 교가의 가장 첫머리에 쓰였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어린이 줄어드는데 '분교→본교' 승격, 비결은?
갈수록 줄어드는 학령 인구에도 오히려 분교장에서 초등학교 본교로 승격한 학교도 있습니다.
바로 가장 최근에 본교로 승격한 제주 선흘초등학교의 이야기인데요.
이 학교는 지난 2012년 전체 학생 수가 10여 명까지 줄어들면서 폐교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100명이 넘는 수준으로 늘어나 지난 2022년 1월 본교로 승격했습니다. 지난 1995년 본교에서 분교로 개편된 지 27년 만에 다시 본교의 지위를 찾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들어 도심 인구 집중이 심화되고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폐교되거나 본교에서 분교로 개편되는 학교가 서서히 늘어납니다. 영월초, 영락초, 용수초, 판포초 등 10개 초등학교가 다른 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또 광령초 상전분교장, 장전초 금덕분교장, 보성초 신평분교장 등 16개 분교장이 폐교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7개 본교가 분교장으로 개편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함덕초 선흘분교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례적으로 선흘초등학교로 승격된 것입니다.
본교 승격의 비결은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내 여러 읍면 지역에선 학령기 자녀를 둔 가족을 유치하기 위해 공동주택을 제공하는 등 여러 노력을 취하고 있지만, 선흘리는 공동주택을 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곶자왈 전문가가 직접 학교에 와서 생태 놀이를 하고, 마을 어른들이 해설사로 나서 습지에서 생태교육을 받습니다.
학교 지근 거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이 놀이터이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희귀 동·식물들이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어린이들과 선생님, 학부모가 함께 궁리해 만든 교내 놀이터는 제주의 오름 등 자연을 닮았습니다.
2015년엔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2010년대 제주 이주 열풍 속에서 입소문이 타면서 많은 학생들이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본교 승격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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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사 내용과 직접 연관 없음.
얼마 전 김광수 제주자치도교육감이 취임 첫 교육공론화 의제로 남중과 여중 등 단성(單性) 중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제주지역 중학생들의 통학 여건을 개선하고, 학교 선택권 강화를 위한 취지라고 하는데요.
지난 2021년 불발된 제주외국어고의 일반고 전환 의제 이후 2년 만에 채택된 교육공론화 의제여서 앞으로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 제주의 대표적인 남자 중·고등학교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오현중·고등학교에 여학생들이 재학했던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이번엔 제주도내 학교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봤습니다.
■ 남학교에 여학생이 다녔다고?
오현중·고등학교의 교훈 학행일치(學行一致) 표지석.
앞서 설명 드렸듯 오현중·고등학교의 이야기입니다.
오현중은 지난 1946년 개교한 이래 2만 5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951년 개교한 오현고도 2만 7,19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제주 교육 50년, 오현고 50년》 교지에는 "남학교인 오현중·고등학교에 여학생이 재학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실로 오현교에 여학생이 다녔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 숫자도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해 279명의 여학생이 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여학생이 남학교에 다녔다고 하니 뭔가 두근거리는 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던 분들도 계실 텐데요. 여기엔 사실 6·25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비극이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초기 제주에 많은 피난민이 몰리면서 덩달아 교육 수요도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이른바 '피난학교'였습니다.
오현중학교 운동장에 10개의 천막교실을 세워두고 다른 지역에서 피난 온 학생들이 공부를 했다는 것인데요. 이 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51년 4월, 오현고등학교(1951년 9월)의 개교 시점보다 5개월가량 앞선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이 피난학교는 제주지역 최초 인문계 고등학교인 오현고가 문을 여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서울의 유명 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도 운동장에 설치된 천막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당시 오현 학생들에게도 자극제가 작용했고, 이로 인해 그동안 중단됐던 오현고 설립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육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실제 학교를 설립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1953년 기준, 오현분교에 다녔던 학생은 고등학생 296명(남자 195명, 여자 101명), 중학생 486명(남자 308명, 여자 178명) 등 모두 782명이었다고 합니다.
피난학교는 설립 4년만인 1955년 3월 24일 폐교됐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학생은 출신 학교로 복귀했고, 복귀하지 않은 학생들은 본교에 편입해 졸업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제주도에 정착해 졸업장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제주 학교 교가에 "백두산" 등장, 한라산이 아니고?
제주북초등학교 교가(제주북초 홈페이지 갈무리)
"백두산 뻗은 줄기 앞으로 흘러~"
4분의 4박자 행진곡 느낌을 풍기는 이 노래의 가사는 제주북초등학교의 교가 첫 구절입니다.
제주에 있는 학교인데 한라산이 아닌, 백두산이 나와 의아해하실 분들이 있으실 텐데요.
힌트는 바로 제주북초가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제주북초는 100년도 더 전인 1907년 1월에 제주관립 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5월에 4년제 학교로 개교합니다.
현재 백두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교가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국어 연구에 매진했던 장지영 선생이 작사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장지영 선생이 6·25한국전쟁으로 제주에 피난을 왔을 때 가사를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제주에 와서도 일제시기 일본어로 불렸던 교가를 새롭게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특히, 그는 1935년 1월부터 표준어 사정(査正)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2년간 1만 개의 우리말 어휘를 정립했습니다. 그 결과 1942년엔 '조선어대사전'을 발간됐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긴 했지만 남과 북의 분단이 고착화되기 전이었던 당시 대중의 인식을 감안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이 교가의 가장 첫머리에 쓰였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어린이 줄어드는데 '분교→본교' 승격, 비결은?
선흘초등학교
갈수록 줄어드는 학령 인구에도 오히려 분교장에서 초등학교 본교로 승격한 학교도 있습니다.
바로 가장 최근에 본교로 승격한 제주 선흘초등학교의 이야기인데요.
이 학교는 지난 2012년 전체 학생 수가 10여 명까지 줄어들면서 폐교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100명이 넘는 수준으로 늘어나 지난 2022년 1월 본교로 승격했습니다. 지난 1995년 본교에서 분교로 개편된 지 27년 만에 다시 본교의 지위를 찾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들어 도심 인구 집중이 심화되고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폐교되거나 본교에서 분교로 개편되는 학교가 서서히 늘어납니다. 영월초, 영락초, 용수초, 판포초 등 10개 초등학교가 다른 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또 광령초 상전분교장, 장전초 금덕분교장, 보성초 신평분교장 등 16개 분교장이 폐교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7개 본교가 분교장으로 개편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함덕초 선흘분교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례적으로 선흘초등학교로 승격된 것입니다.
본교 승격의 비결은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내 여러 읍면 지역에선 학령기 자녀를 둔 가족을 유치하기 위해 공동주택을 제공하는 등 여러 노력을 취하고 있지만, 선흘리는 공동주택을 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곶자왈 전문가가 직접 학교에 와서 생태 놀이를 하고, 마을 어른들이 해설사로 나서 습지에서 생태교육을 받습니다.
학교 지근 거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이 놀이터이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희귀 동·식물들이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어린이들과 선생님, 학부모가 함께 궁리해 만든 교내 놀이터는 제주의 오름 등 자연을 닮았습니다.
2015년엔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2010년대 제주 이주 열풍 속에서 입소문이 타면서 많은 학생들이 유입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본교 승격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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