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토리'는 제주의 여러 '1호'들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연재입니다.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와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제주의 가치에 대해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화산암반수를 상수도로 사용하는 제주. 삼다수 생수 이미지까지 더해져 물이 풍부한 섬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사실 제주는 강이나 항상 물이 흐르는 하천이 없기 때문에 물이 매우 귀한 섬입니다.
우물이 없는 곳에선 해안가에서 솟는 단물인 '용천수'를 사용해야 했고, 중산간에선 장구벌레가 들끓는 '봉천수'를 써야 했습니다. 물을 길어오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고통스러운 노동이었습니다.
일제시기에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민 중 상당수가 깨끗하지 않은 물로 인해 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깨끗한 물이 귀했던 환경은 해방 직후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도 제주도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로 도로 개설과 함께 상수도 보급을 꼽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이 귀하다 보니 관혼상제(冠婚喪祭)처럼 큰일이 나면 물을 길어 '물 부지(扶助)'를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저수지와 지하수 개발 등을 통해 생활용수가 부족한 상황에선 벗어나게 됐습니다.
오히려 수자원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단순 개발 일변도였던 물 정책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제주도민들의 '물의 전쟁'의 역사가 잊혀선 안 될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열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익숙하지만 그리 오래된 모습이 아닌 이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제주사회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습니다.
■ 공사비 1만 6천 원, 첫 수돗물이 생겼다
제주에 처음 수도가 설치됐다는 기록은 약 100년 전인 192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옵니다.
당시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있는 수원지에 서귀항 인근까지 간이 상수도를 설치해 하루 35톤의 수돗물을 공급했다는 내용인데요.
일본중앙공업시험소가 남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37년 당시 개인 40가구와 11개의 공동수도를 통해 360가구가 수돗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서귀포항을 드나드는 어선과 제주와 일본을 오가던 여객선 '군대환(君代丸)'에도 이 물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상수도는 일본인 사이고(西鄕武十)가 주도해 설치한 것으로, 총 공사비는 1만 6,000원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연간 4,492원의 수도 사용료를 징수했다고 합니다.
정방 간이수도는 제주도 수도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일반 제주도민이 아닌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설치됐다는 한계를 갖습니다.
한편, 이듬해인 1927년엔 서귀포 서호동에서 오로지 지역 주민과 이 마을 출신 재일동포들의 자체 부담으로 간이수도가 시설되기도 했습니다.
서호에선 당시 재일동포들이 5,000원, 주민들이 4,670원 등 총 9,690원을 모금해 공사가 이뤄졌는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서귀포항에서 수도관을 운반해 땅을 파 매립했다고 합니다.
1937년엔 서귀포 신효, 하효, 토평에도 간이수도가 들어섰습니다. 1926년 한 일본인이 가구당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내용의 유료 수도가설 계획을 주민들에게 제시했지만, 일본에 돈을 벌러 간 청년들이 '이해 관계에 밝은 일본인은 믿을 수 없다'며 수년에 걸쳐 여러 우여곡절 끝에 상수도가 가설됐습니다.
■ 본격적인 상수도 개발은?
사실 제주도 상수도 개발의 원년으로 치는 것은 1953년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일반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한 금산수원 개발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금산수원은 당시 제주의 정치·행정, 경제, 문화 등의 중심지였던 제주성 내(지금의 제주시 원도심)의 대표적인 용천수였습니다.
제주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 시설인 금산수원 상수도는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금산물 용천수를 동력 펌프를 이용해 사라봉 남쪽의 배수지로 양수하고, 이를 흘려보내 하루 5천 톤의 수돗물을 5만 명에게 공급하는 것을 계획으로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1953년 12월에 시작된 이 사업은 3년여 만인 1957년 6월에 마무리됐습니다.
본격적인 수돗물 공급은 7월부터 이뤄졌는데, 처음엔 하루 131톤의 수돗물이 공급됐다가 차츰 확장 공사 등을 거쳐 1990년대엔 하루 평균 1만 5천 톤의 수돗물을 공급하게 됩니다.
처음 수돗물이 공급됐을 당시엔 공공 급수전 앞으로 물을 길어가기 위한 물허벅과 물동이 줄이 길게 늘어섰다고 합니다.
금산물 수원지는 현재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물사랑 홍보관'이 들어서 있는데, 홍보관 안에는 상수도 광역화 사업 이전인 지난 2008년까지 가동됐던 커다란 펌프도 남아 있습니다.
금산수원은 한동안 제주시 지역의 상수도 공급을 전적으로 담당해 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 1970년대에 성과를 보인 어승생 저수지 개발사업과 지하수 관정 개발사업 등으로 부담을 덜게 됩니다.
이외에도 제주지역의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됩니다.
앞서 언급한 제주시 어승생 저수지 개발 사업이 대표적인데, 이 사업엔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속에서 당시 전국에서 검거된 폭력배 등으로 구성된 '국토건설단'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당초 5개년 계획이었던 어승생 저수지 사업은 정부의 공기 단축 의지에도 저수지 바닥 함몰 사고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1971년 12월에야 준공됩니다.
완공된 어승생 저수지 덕에 동쪽으론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서쪽으론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이르기까지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61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의 첫 지하수 관정개발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지하수 개발 사업도 이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 제주지역의 상수도 공급률은 99%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사실상 모든 가정에 상수도를 통한 수돗물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과다한 지하수 취수를 지양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깨끗하게 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과, 수돗물 공급 시 발생하는 누수율을 잡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됐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옛 제주의 공동수도(제주자치도 제공)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화산암반수를 상수도로 사용하는 제주. 삼다수 생수 이미지까지 더해져 물이 풍부한 섬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사실 제주는 강이나 항상 물이 흐르는 하천이 없기 때문에 물이 매우 귀한 섬입니다.
우물이 없는 곳에선 해안가에서 솟는 단물인 '용천수'를 사용해야 했고, 중산간에선 장구벌레가 들끓는 '봉천수'를 써야 했습니다. 물을 길어오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고통스러운 노동이었습니다.
일제시기에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민 중 상당수가 깨끗하지 않은 물로 인해 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깨끗한 물이 귀했던 환경은 해방 직후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도 제주도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로 도로 개설과 함께 상수도 보급을 꼽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이 귀하다 보니 관혼상제(冠婚喪祭)처럼 큰일이 나면 물을 길어 '물 부지(扶助)'를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저수지와 지하수 개발 등을 통해 생활용수가 부족한 상황에선 벗어나게 됐습니다.
오히려 수자원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단순 개발 일변도였던 물 정책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제주도민들의 '물의 전쟁'의 역사가 잊혀선 안 될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열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익숙하지만 그리 오래된 모습이 아닌 이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제주사회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습니다.
■ 공사비 1만 6천 원, 첫 수돗물이 생겼다
정방수원 집수정(『제주 상수도 50년』 갈무리)
제주에 처음 수도가 설치됐다는 기록은 약 100년 전인 192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옵니다.
당시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있는 수원지에 서귀항 인근까지 간이 상수도를 설치해 하루 35톤의 수돗물을 공급했다는 내용인데요.
일본중앙공업시험소가 남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37년 당시 개인 40가구와 11개의 공동수도를 통해 360가구가 수돗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서귀포항을 드나드는 어선과 제주와 일본을 오가던 여객선 '군대환(君代丸)'에도 이 물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상수도는 일본인 사이고(西鄕武十)가 주도해 설치한 것으로, 총 공사비는 1만 6,000원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연간 4,492원의 수도 사용료를 징수했다고 합니다.
정방 간이수도는 제주도 수도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일반 제주도민이 아닌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설치됐다는 한계를 갖습니다.
한편, 이듬해인 1927년엔 서귀포 서호동에서 오로지 지역 주민과 이 마을 출신 재일동포들의 자체 부담으로 간이수도가 시설되기도 했습니다.
서호에선 당시 재일동포들이 5,000원, 주민들이 4,670원 등 총 9,690원을 모금해 공사가 이뤄졌는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서귀포항에서 수도관을 운반해 땅을 파 매립했다고 합니다.
1937년엔 서귀포 신효, 하효, 토평에도 간이수도가 들어섰습니다. 1926년 한 일본인이 가구당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내용의 유료 수도가설 계획을 주민들에게 제시했지만, 일본에 돈을 벌러 간 청년들이 '이해 관계에 밝은 일본인은 믿을 수 없다'며 수년에 걸쳐 여러 우여곡절 끝에 상수도가 가설됐습니다.
■ 본격적인 상수도 개발은?
금산수원지에 세워진 '금산유허비'(사진, 신동원 기자)
사실 제주도 상수도 개발의 원년으로 치는 것은 1953년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일반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한 금산수원 개발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금산수원은 당시 제주의 정치·행정, 경제, 문화 등의 중심지였던 제주성 내(지금의 제주시 원도심)의 대표적인 용천수였습니다.
제주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 시설인 금산수원 상수도는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금산물 용천수를 동력 펌프를 이용해 사라봉 남쪽의 배수지로 양수하고, 이를 흘려보내 하루 5천 톤의 수돗물을 5만 명에게 공급하는 것을 계획으로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금산수원지 현재 모습(사진, 신동원 기자)
1953년 12월에 시작된 이 사업은 3년여 만인 1957년 6월에 마무리됐습니다.
본격적인 수돗물 공급은 7월부터 이뤄졌는데, 처음엔 하루 131톤의 수돗물이 공급됐다가 차츰 확장 공사 등을 거쳐 1990년대엔 하루 평균 1만 5천 톤의 수돗물을 공급하게 됩니다.
처음 수돗물이 공급됐을 당시엔 공공 급수전 앞으로 물을 길어가기 위한 물허벅과 물동이 줄이 길게 늘어섰다고 합니다.
금산물 수원지는 현재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물사랑 홍보관'이 들어서 있는데, 홍보관 안에는 상수도 광역화 사업 이전인 지난 2008년까지 가동됐던 커다란 펌프도 남아 있습니다.
금산수원은 한동안 제주시 지역의 상수도 공급을 전적으로 담당해 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 1970년대에 성과를 보인 어승생 저수지 개발사업과 지하수 관정 개발사업 등으로 부담을 덜게 됩니다.
금산수원지에 들어선 '물사랑 홍보관' 안에 남아있는 취수펌프(사진, 신동원 기자)
이외에도 제주지역의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됩니다.
앞서 언급한 제주시 어승생 저수지 개발 사업이 대표적인데, 이 사업엔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속에서 당시 전국에서 검거된 폭력배 등으로 구성된 '국토건설단'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당초 5개년 계획이었던 어승생 저수지 사업은 정부의 공기 단축 의지에도 저수지 바닥 함몰 사고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1971년 12월에야 준공됩니다.
완공된 어승생 저수지 덕에 동쪽으론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서쪽으론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이르기까지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61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의 첫 지하수 관정개발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지하수 개발 사업도 이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 제주지역의 상수도 공급률은 99%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사실상 모든 가정에 상수도를 통한 수돗물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과다한 지하수 취수를 지양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깨끗하게 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과, 수돗물 공급 시 발생하는 누수율을 잡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됐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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