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는 '예체능'...서귀포시 중앙동 도시재생 추진
"상대 손 내려갔잖아!" "그렇지! 레프트, 원투원투!"
학교 체육관 한 가운데 자리한 링 위. 상대방에 그간 쌓아온 기량을 뿜어내는 선수들의 기세는 사뭇 진지하고 매서웠습니다.
헤드기어와 두꺼운 18온스 글러브를 착용해 직접 충격을 줄인 경기임에도 카운트다운이 속출할 정도였습니다.
포인트를 딸 때마다 링 아래선 '나이스', '헤이' 등 특유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라운드가 이어지면서 천근만근 무거워진 팔이지만, 코치의 "마지막 1분!" 소리에 분산된 집중력을 다잡았습니다.
마지막 체력까지 짜낸 일부 참가자들은 링 위에서 다리를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2분 3라운드. 당자사에겐 결코 짧지 않을 시간이 흐른 후 승자와 패자가 갈리자 한쪽에선 승리의 환호가, 반대편에선 '잘 했어, 잘 했어'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맛본 출전 선수만 140명.
서울대, 전남대, 한국외대, 해군사관학교, 경찰대 등 전국 대학 복싱 동아리 10개팀과 7개 체육관에서 출전한 대학생과 어린이 선수들이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마련된 링 위에서 그간 쌓은 기량을 링 위에서 선보였습니다.
무대의 이름은 '제22회 전국 대학 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 겸 전국 어린이 복싱대회'.
이 대회로 선수와 코치진, 응원객들을 합해 200명이 넘는 인원이 중앙동으로 유입됐습니다. 이들은 대회 기간 중 지역 내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을 이용하며 지역상권에 보탬이 됐습니다.
대회를 유치한 것은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중앙동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입니다.
본래 강원도 동해시에서 줄곧 진행돼 오다가 코로나19 기간 중단되며 위기에 처하게 됐는데, 이를 제주로 유치해 살려낸 것입니다.
센터는 이번 대회 외에도 '스포츠 예체능'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도 '2023 중앙동 생활체육대회'라는 큰 틀에서 진행됐습니다.
김동범 센터장은 대회사에서 "복싱과 도시재생은 닮은 점이 참 많다"며, "도시재생은 한 때 부흥했지만 개발의 풍파로 사람들이 떠나가고 침체돼 활기를 잃은 도시에 새로운 생활문화와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로 활력을 불어넣는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현재 한국 복싱도 마찬가지"라며, "70~8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 복싱이 오랜 기간의 침에서 벗어나 이렇게 생활체육 분야에서부터 튼튼한 저변을 이루고 예전처럼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스포츠가 돼 이곳 서귀포에서 도시재생의 콘텐츠로 자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센터는 현재 설립 추진 중인 도시재생 마을관리협동조합이 대회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입니다.
■ 가장 오래된 원도심 중앙동
영광의 시기부터 침체 위기까지
영심이세탁, 초원이용원, 은철슈퍼, 대동쌀상회.
지난 주말 찾은 서귀포시 중앙동은 바로 인접한 동홍동 등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한눈에 봐도 터줏대감을 자처할 만한 오래된 상점들이 즐비했습니다.
골목상권이 밀집해 있었지만 한편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앙동 골목상권의 상가 공실률은 16.3%로 서귀포지역 다른 도심권(5.3%, 2019년 1분기 기준)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습니다.
영업을 하지 않는 듯한 쌀상회의 할머니에게 아직도 쌀을 판매하느냐고 묻자 "아이고 요새 상회에서 쌀 사 먹는 사람이 어디 이십니까(있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중앙동이 처음부터 침체를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때는 현재 서귀포에서 가장 번화한 동홍, 서홍동의 넘는 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제주도 남쪽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중앙동은 1970년 토지구획으로 형성된 도심권입니다.
도심권 내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함께 자리한 요지로,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원도심으로 꼽힙니다.
최근 외국인 크루즈관광객이 단체 방문했던 서귀포매일올레시장도 중앙동에 있고, 교통의 중심지인 서귀포 1호광장(중앙로터리)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앙동의 북쪽엔 행정 중심지인 서귀포시청이, 남쪽엔 관광객을 끄는 이중섭거리와 정방폭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 유일의 백화점 동명백화점도 중앙동에 있었고, 자리를 옮긴 옛 버스터미널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중앙동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건 감귤값이 하락한 1990년대쯤부터였다고 합니다. 1997년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직격탄이 됐습니다.
2010년대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주변 지역과 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결국 주민들의 이탈을 걷잡을 수 없게 됐고, 지역을 지키는 것은 노년층의 몫이 됐습니다.
실제 도지재생사업지구로 범위를 한정했을 때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에만 15.2%의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서귀중앙초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도 2003년 1,077명에서 올해 362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65세 이상 주민 비율도 22.6%(2019년 기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를 뜻하는 노령화지수로 환산하면 256.3점으로, 전국 평균의 2배가 넘고, 서귀포시 전체와 비교해도 80%가량 높은 수준입니다.
■ '예체능'으로 동네를 살린다
반전은 중앙동이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021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서귀포시의 '주민이 함께 달리는 중앙동네 예체능' 사업이 선정되면서 변화의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중앙동에서도 서귀포시 동문로를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 서귀중앙초 인근 20만㎡ 지역에 2024년까지 총 사업비 200억 원가량이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사업의 핵심은 스포츠 행사를 중심으로 여러 예체능 활동을 통해 지역의 활력화를 꾀하는 것.
▲지속가능 도시재생 기반 확보 ▲예술이 숨 쉬는 문화커뮤니티 활성화 ▲건강하고 활기찬 우리동네 만들기 ▲골목기능 회복과 주거복지 실현 ▲지역과 함께하는 돌봄자리 조성 등 5개 영역에서 18개 주요 사업이 추진됩니다.
스포츠 외에도 주민들을 위한 문화교육은 물론, 도시재생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고 주민들이 직접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대학도 운영됐습니다. 주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 등 생활SOC사업도 사업계획에 포함됐습니다.
이번에 열렸던 복싱대회도 '스포츠 예체능'을 통해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킨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콘텐츠로 기획된 것입니다.
특히, 지난 2021년 처음 시작돼 벌써 5회가 진행된 동호인 당구대회도 눈길을 끕니다. 대회 초기 센터가 주도하던 것을 3회째부턴 당구 동호회가 주도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입니다.
대회는 제주시에 거주하는 동호인들도 참가를 할 만큼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가 진행되는 곳 역시 중앙동 원도심의 당구장으로,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인근 식당들도 늘어난 손님맞이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센터는 내년 초 주요 사업에 속하는 커뮤니티센터, 적정기술창작소, 생활체육센터 건립 공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3일 열린 '2023 중앙동 생활체육대회'의 일환으로 진행된 '제22회 전국 대학 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 경기 모습.(사진, 신동원 기자)
"상대 손 내려갔잖아!" "그렇지! 레프트, 원투원투!"
학교 체육관 한 가운데 자리한 링 위. 상대방에 그간 쌓아온 기량을 뿜어내는 선수들의 기세는 사뭇 진지하고 매서웠습니다.
헤드기어와 두꺼운 18온스 글러브를 착용해 직접 충격을 줄인 경기임에도 카운트다운이 속출할 정도였습니다.
포인트를 딸 때마다 링 아래선 '나이스', '헤이' 등 특유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라운드가 이어지면서 천근만근 무거워진 팔이지만, 코치의 "마지막 1분!" 소리에 분산된 집중력을 다잡았습니다.
마지막 체력까지 짜낸 일부 참가자들은 링 위에서 다리를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2분 3라운드. 당자사에겐 결코 짧지 않을 시간이 흐른 후 승자와 패자가 갈리자 한쪽에선 승리의 환호가, 반대편에선 '잘 했어, 잘 했어'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지난 2~3일 진행된 '2023 중앙동 생활체육대회'.(사진, 신동원 기자)
이러한 경험을 맛본 출전 선수만 140명.
서울대, 전남대, 한국외대, 해군사관학교, 경찰대 등 전국 대학 복싱 동아리 10개팀과 7개 체육관에서 출전한 대학생과 어린이 선수들이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마련된 링 위에서 그간 쌓은 기량을 링 위에서 선보였습니다.
무대의 이름은 '제22회 전국 대학 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 겸 전국 어린이 복싱대회'.
이 대회로 선수와 코치진, 응원객들을 합해 200명이 넘는 인원이 중앙동으로 유입됐습니다. 이들은 대회 기간 중 지역 내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을 이용하며 지역상권에 보탬이 됐습니다.
대회를 유치한 것은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중앙동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입니다.
본래 강원도 동해시에서 줄곧 진행돼 오다가 코로나19 기간 중단되며 위기에 처하게 됐는데, 이를 제주로 유치해 살려낸 것입니다.
센터는 이번 대회 외에도 '스포츠 예체능'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도 '2023 중앙동 생활체육대회'라는 큰 틀에서 진행됐습니다.
지난 2~3일 진행된 '2023 중앙동 생활체육대회' 전경.(사진, 신동원 기자)
김동범 센터장은 대회사에서 "복싱과 도시재생은 닮은 점이 참 많다"며, "도시재생은 한 때 부흥했지만 개발의 풍파로 사람들이 떠나가고 침체돼 활기를 잃은 도시에 새로운 생활문화와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로 활력을 불어넣는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현재 한국 복싱도 마찬가지"라며, "70~8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 복싱이 오랜 기간의 침에서 벗어나 이렇게 생활체육 분야에서부터 튼튼한 저변을 이루고 예전처럼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스포츠가 돼 이곳 서귀포에서 도시재생의 콘텐츠로 자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센터는 현재 설립 추진 중인 도시재생 마을관리협동조합이 대회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입니다.
■ 가장 오래된 원도심 중앙동
영광의 시기부터 침체 위기까지
서귀포시 중앙동의 세탁소.(사진, 신동원 기자)
영심이세탁, 초원이용원, 은철슈퍼, 대동쌀상회.
지난 주말 찾은 서귀포시 중앙동은 바로 인접한 동홍동 등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한눈에 봐도 터줏대감을 자처할 만한 오래된 상점들이 즐비했습니다.
골목상권이 밀집해 있었지만 한편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앙동 골목상권의 상가 공실률은 16.3%로 서귀포지역 다른 도심권(5.3%, 2019년 1분기 기준)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습니다.
영업을 하지 않는 듯한 쌀상회의 할머니에게 아직도 쌀을 판매하느냐고 묻자 "아이고 요새 상회에서 쌀 사 먹는 사람이 어디 이십니까(있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귀포시 중앙동의 오래된 건물.
중앙동이 처음부터 침체를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때는 현재 서귀포에서 가장 번화한 동홍, 서홍동의 넘는 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제주도 남쪽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중앙동은 1970년 토지구획으로 형성된 도심권입니다.
도심권 내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함께 자리한 요지로,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원도심으로 꼽힙니다.
최근 외국인 크루즈관광객이 단체 방문했던 서귀포매일올레시장도 중앙동에 있고, 교통의 중심지인 서귀포 1호광장(중앙로터리)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앙동의 북쪽엔 행정 중심지인 서귀포시청이, 남쪽엔 관광객을 끄는 이중섭거리와 정방폭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 유일의 백화점 동명백화점도 중앙동에 있었고, 자리를 옮긴 옛 버스터미널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서귀포시 중앙동 전경.
중앙동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건 감귤값이 하락한 1990년대쯤부터였다고 합니다. 1997년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직격탄이 됐습니다.
2010년대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주변 지역과 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결국 주민들의 이탈을 걷잡을 수 없게 됐고, 지역을 지키는 것은 노년층의 몫이 됐습니다.
실제 도지재생사업지구로 범위를 한정했을 때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에만 15.2%의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서귀중앙초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도 2003년 1,077명에서 올해 362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65세 이상 주민 비율도 22.6%(2019년 기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를 뜻하는 노령화지수로 환산하면 256.3점으로, 전국 평균의 2배가 넘고, 서귀포시 전체와 비교해도 80%가량 높은 수준입니다.
■ '예체능'으로 동네를 살린다
지난 9월 열린 제1회 중앙동 도시재생 예체능축제
반전은 중앙동이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2021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서귀포시의 '주민이 함께 달리는 중앙동네 예체능' 사업이 선정되면서 변화의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중앙동에서도 서귀포시 동문로를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 서귀중앙초 인근 20만㎡ 지역에 2024년까지 총 사업비 200억 원가량이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사업의 핵심은 스포츠 행사를 중심으로 여러 예체능 활동을 통해 지역의 활력화를 꾀하는 것.
▲지속가능 도시재생 기반 확보 ▲예술이 숨 쉬는 문화커뮤니티 활성화 ▲건강하고 활기찬 우리동네 만들기 ▲골목기능 회복과 주거복지 실현 ▲지역과 함께하는 돌봄자리 조성 등 5개 영역에서 18개 주요 사업이 추진됩니다.
스포츠 외에도 주민들을 위한 문화교육은 물론, 도시재생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고 주민들이 직접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대학도 운영됐습니다. 주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 등 생활SOC사업도 사업계획에 포함됐습니다.
이번에 열렸던 복싱대회도 '스포츠 예체능'을 통해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킨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콘텐츠로 기획된 것입니다.
지난 8월 열린 제5회 중앙동 도시재생 동호인 당구대회
특히, 지난 2021년 처음 시작돼 벌써 5회가 진행된 동호인 당구대회도 눈길을 끕니다. 대회 초기 센터가 주도하던 것을 3회째부턴 당구 동호회가 주도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입니다.
대회는 제주시에 거주하는 동호인들도 참가를 할 만큼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가 진행되는 곳 역시 중앙동 원도심의 당구장으로,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인근 식당들도 늘어난 손님맞이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센터는 내년 초 주요 사업에 속하는 커뮤니티센터, 적정기술창작소, 생활체육센터 건립 공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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