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토리'는 제주의 여러 '1호'들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연재입니다.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와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제주의 가치에 대해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다음 중 한라산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한라산은 높이 1,950m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② 한라산에 1회용 도시락은 반입 금지되어 있다.
③ 한라산은 휴화산이다.
④ 한라산은 17도와 21도가 있다.
한때 '제주살이 능력고사'라는 이색 시험으로 화제가 됐던 한 업체에서 출제한 문제입니다. 이 기발하고 헷갈리는 문제에 제주 토박이 도민들도 답을 궁금해 했는데요.
답은 뭐였을까요? 출제 의도는 제주의 자연환경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인데, 보기 4번은 '한라산소주'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출제자 측에서 제시한 답은 3번입니다. 한라산이 최근 활화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지금에 와선 4번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한라산 순한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16도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연말연시 연일 이어지는 모임에서 소주를 드시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현존 유일의 제주도 소주 한라산을 비롯해 제주 소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제주 소주 대명사 '한라산', 언제 나온 걸까?
제주도 소주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한라산 소주'라는 제품이 출시된 것은 약 30년 전인 지난 1993년 4월 10일.
현재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주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1998년)보다 오래 됐습니다.
물론 같은 회사의 진로 소주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첫 출시됐지만, 한라산소주 역시 그 전신인 '한일(韓壹)' 소주가 1955년 3월부터 출시된 점을 감안하면 그리 짧은 역사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한라산소주는 지난 1950년 11월 13일 제주시 북초등학교 인근에서 '호남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됩니다.
이후 1955년 1일 제조 면허를 정식 취득하면서 '한일양조장'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같은 해 3월부터 정식으로 '한일 소주'를 출시합니다. 이전까지 호남양조장은 대정읍 모슬포 군부대에 막걸리와 위스키, 포도주 등을 납품했었습니다.
한일 소주는 1993년 한라산 소주를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이후 '한라산'이라는 메인 테마로 '초록병'으로 알려진 '한라산물 순한소주'를 1997년 10월에 출시합니다.
1986년 9월 본사와 공장의 터전을 지금의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로 옮긴 한일소주는 1999년 1월엔 자사의 주력 제품인 '한라산'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지역색을 강화합니다.
앞서 1970년대 정부의 '1도(道) 1주(酒)' 정책으로 소주 업체 통·폐합의 기로에서 생존한 한라산은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리며 1990년대 후반에는 제주 소주시장의 90%가량을 점유하는 기성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 한라산소주 진짜 제주 '최초'일까?
사실 한라산(한일)소주 이전에 제주에 여러 양조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제주 최초의 소주 양조장으로 알려진 곳은 바로 '명월 소주'였습니다. 명월소주는 1920년 설립됐다고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희석식 소주 진로보다도 4년 앞선 시점입니다.
위치는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월계천(현 옹포천) 인근으로 지금 한라산소주 공장이 있는 자리에서 옹포천 상류로 불과 100m 정도 지척입니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당시 명월 소주 자리는 이후 큰 굴뚝이 있는 자동차 공업사가 들어섰다가 몇 년 전 철거돼 현재 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 조선총독부가 1929년 낸 『생활상태조사 기이(基二), 제주도』 자료에는 명월 소주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인 김성석씨가 대표로 있었던 '명월소주 양조장'은 자본금 1만 원의 사업체였습니다. 당시 일부 대형 통조림 제조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장 자본금이 1만 원 이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꽤나 큰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월 소주는 당시 연간 44톤(311석)의 소주를 생산해 2만 1,770원의 연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 그 많던 소주공장들, 어디로 갔나
일제강점기 산업 불모지 제주도엔 조선인이 세운 많은 소주공장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1920년대에 설립됐는데 명월소주 비롯해 파악된 곳만 10곳에 달합니다.
자세히 보면, △한일(韓日)소주양조공장(1926년 2월, 구좌읍 세화리, 박인식) △영주(瀛州)주조조합(1926년 6월, 조천읍 함덕리, 한보권) △금천(金泉)소주공장(1926년 9월, 구좌읍 서김녕리, 강홍민) △유진(裕進)소주공장(1926년 9월, 성산읍 성산리, 한행력) △대동(大東)양주공장(1927년 6월, 애월읍 하귀리, 고용기) △월노(月露)소주공장(1927년 6월, 애월읍 애월리, 김문규) △이도일(李道一)상점주조소(1927년 11월, 대정읍 하모리, 이도일) △남창(南昌)양조장(1928년 6월, 표선면 표선리, 송권은) △삼공(三共)주조조합(1929년 9월, 서귀포 서귀리, 강문옥) 등이 조선총독부가 1940년 작성한 『조선공장명부』에 기록됐습니다. 다만, 이 문건엔 1920년 설립일자로 알려진 명월소주가 1925년 4월에 설립됐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관보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동안(1910~1945년)까지 제주도에 설립된 공장은 50여 개로 파악됩니다. 또 제주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해방 이후인 1956년까지 법인세가 부과된 만큼의 규모를 갖춘 제주도내 기업체는 제주주정회사를 비롯해 40여 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았던 소주 공장 중 몇몇은 해방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70년대 정부의 '1도(道) 1주(酒)' 정책에 따라 통·폐합됩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국내 소주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이 정책으로 전국 200여개 소주 업체가 10개 내외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대선(부산), 화이트(경남), 잎새주(광주·전남), 참소주(대구·경북), 린(대전·충남) 등이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에서도 6개 소주 업체가 현재 한라산소주(당시 한일소주)를 중심으로 교통정리가 되면서 1970년 11월 3일 '제주소주합동제조주식회사'가 탄생합니다. 이로 인해 귀일소주(하귀), 명월(한림), 왕자소주(서귀포), 남일소주(성산포), 천일소주(표선)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 소주 마시고 "크~"... 이젠 옛말?
한라산소주의 알코올도수는 1993년 출시 당시 25도였습니다. 직전 한일소주와 같은 도수였는데요.
지난해 출시된 '한라산 순한'은 16도까지 도수가 낮아졌습니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 하향세는 2000년대 들어서며 시작돼 최근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국적 추세인데 주력 제품인 '한라산'의 도수를 기준으로 보면, 2000년 1월 23%로 단숨에 2도가량 낮아진 이 제품은 이후 2012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20.2도까지 낮아졌다가 2012년 들어 21도로 도수가 올라간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라산 순한소주는 2009년 1월 19.8도로 내려가며, 처음으로 20도 아래로 떨어졌다가 현재는 16도까지 낮아진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애주가들 사이에선 소주를 마시고 '크~' 하는 감탄사를 뱉기엔 술이 너무 약해졌다라고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업계에선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변화라는 설명입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인데요.
한라산소주의 한 임원은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요소가 반영된 저도주(低度酒) 시장 트렌드에 맞춰 전국적으로 제품 도수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현재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40년가량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 오고 있다는 상인 김모씨(80)는 "당시엔 소주가 한일소주밖에 없었다.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며, "나중에 육지 술이라고 진로가 들어왔다. 그것도 잘 나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상인 김모씨는 당시 시장에서 잔술을 파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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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다음 중 한라산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한라산은 높이 1,950m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② 한라산에 1회용 도시락은 반입 금지되어 있다.
③ 한라산은 휴화산이다.
④ 한라산은 17도와 21도가 있다.
한때 '제주살이 능력고사'라는 이색 시험으로 화제가 됐던 한 업체에서 출제한 문제입니다. 이 기발하고 헷갈리는 문제에 제주 토박이 도민들도 답을 궁금해 했는데요.
답은 뭐였을까요? 출제 의도는 제주의 자연환경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인데, 보기 4번은 '한라산소주'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출제자 측에서 제시한 답은 3번입니다. 한라산이 최근 활화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지금에 와선 4번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한라산 순한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16도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연말연시 연일 이어지는 모임에서 소주를 드시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현존 유일의 제주도 소주 한라산을 비롯해 제주 소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제주 소주 대명사 '한라산', 언제 나온 걸까?
한라산 소주 초기 디자인(왼쪽)과 한라산 소주의 전신인 '한일(韓壹)' 소주 옛 신문 광고 (사진 = 신동원 기자)
제주도 소주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한라산 소주'라는 제품이 출시된 것은 약 30년 전인 지난 1993년 4월 10일.
현재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주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1998년)보다 오래 됐습니다.
물론 같은 회사의 진로 소주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첫 출시됐지만, 한라산소주 역시 그 전신인 '한일(韓壹)' 소주가 1955년 3월부터 출시된 점을 감안하면 그리 짧은 역사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한라산소주는 지난 1950년 11월 13일 제주시 북초등학교 인근에서 '호남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됩니다.
이후 1955년 1일 제조 면허를 정식 취득하면서 '한일양조장'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같은 해 3월부터 정식으로 '한일 소주'를 출시합니다. 이전까지 호남양조장은 대정읍 모슬포 군부대에 막걸리와 위스키, 포도주 등을 납품했었습니다.
한일 소주는 1993년 한라산 소주를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이후 '한라산'이라는 메인 테마로 '초록병'으로 알려진 '한라산물 순한소주'를 1997년 10월에 출시합니다.
1986년 9월 본사와 공장의 터전을 지금의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로 옮긴 한일소주는 1999년 1월엔 자사의 주력 제품인 '한라산'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지역색을 강화합니다.
앞서 1970년대 정부의 '1도(道) 1주(酒)' 정책으로 소주 업체 통·폐합의 기로에서 생존한 한라산은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리며 1990년대 후반에는 제주 소주시장의 90%가량을 점유하는 기성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 한라산소주 진짜 제주 '최초'일까?
제주 최초 소주공장으로 알려진 명월소주 공장(1950년대 추정, 사진 = 제주상공회의소)
사실 한라산(한일)소주 이전에 제주에 여러 양조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제주 최초의 소주 양조장으로 알려진 곳은 바로 '명월 소주'였습니다. 명월소주는 1920년 설립됐다고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희석식 소주 진로보다도 4년 앞선 시점입니다.
위치는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월계천(현 옹포천) 인근으로 지금 한라산소주 공장이 있는 자리에서 옹포천 상류로 불과 100m 정도 지척입니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당시 명월 소주 자리는 이후 큰 굴뚝이 있는 자동차 공업사가 들어섰다가 몇 년 전 철거돼 현재 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 조선총독부가 1929년 낸 『생활상태조사 기이(基二), 제주도』 자료에는 명월 소주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인 김성석씨가 대표로 있었던 '명월소주 양조장'은 자본금 1만 원의 사업체였습니다. 당시 일부 대형 통조림 제조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장 자본금이 1만 원 이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꽤나 큰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월 소주는 당시 연간 44톤(311석)의 소주를 생산해 2만 1,770원의 연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 그 많던 소주공장들, 어디로 갔나
소주 자료사진 (사진= 신동원 기자)
일제강점기 산업 불모지 제주도엔 조선인이 세운 많은 소주공장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1920년대에 설립됐는데 명월소주 비롯해 파악된 곳만 10곳에 달합니다.
자세히 보면, △한일(韓日)소주양조공장(1926년 2월, 구좌읍 세화리, 박인식) △영주(瀛州)주조조합(1926년 6월, 조천읍 함덕리, 한보권) △금천(金泉)소주공장(1926년 9월, 구좌읍 서김녕리, 강홍민) △유진(裕進)소주공장(1926년 9월, 성산읍 성산리, 한행력) △대동(大東)양주공장(1927년 6월, 애월읍 하귀리, 고용기) △월노(月露)소주공장(1927년 6월, 애월읍 애월리, 김문규) △이도일(李道一)상점주조소(1927년 11월, 대정읍 하모리, 이도일) △남창(南昌)양조장(1928년 6월, 표선면 표선리, 송권은) △삼공(三共)주조조합(1929년 9월, 서귀포 서귀리, 강문옥) 등이 조선총독부가 1940년 작성한 『조선공장명부』에 기록됐습니다. 다만, 이 문건엔 1920년 설립일자로 알려진 명월소주가 1925년 4월에 설립됐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관보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동안(1910~1945년)까지 제주도에 설립된 공장은 50여 개로 파악됩니다. 또 제주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해방 이후인 1956년까지 법인세가 부과된 만큼의 규모를 갖춘 제주도내 기업체는 제주주정회사를 비롯해 40여 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았던 소주 공장 중 몇몇은 해방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70년대 정부의 '1도(道) 1주(酒)' 정책에 따라 통·폐합됩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국내 소주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이 정책으로 전국 200여개 소주 업체가 10개 내외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대선(부산), 화이트(경남), 잎새주(광주·전남), 참소주(대구·경북), 린(대전·충남) 등이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에서도 6개 소주 업체가 현재 한라산소주(당시 한일소주)를 중심으로 교통정리가 되면서 1970년 11월 3일 '제주소주합동제조주식회사'가 탄생합니다. 이로 인해 귀일소주(하귀), 명월(한림), 왕자소주(서귀포), 남일소주(성산포), 천일소주(표선)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 소주 마시고 "크~"... 이젠 옛말?
한라산 소주 (사진= 신동원 기자)
한라산소주의 알코올도수는 1993년 출시 당시 25도였습니다. 직전 한일소주와 같은 도수였는데요.
지난해 출시된 '한라산 순한'은 16도까지 도수가 낮아졌습니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 하향세는 2000년대 들어서며 시작돼 최근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국적 추세인데 주력 제품인 '한라산'의 도수를 기준으로 보면, 2000년 1월 23%로 단숨에 2도가량 낮아진 이 제품은 이후 2012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20.2도까지 낮아졌다가 2012년 들어 21도로 도수가 올라간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라산 순한소주는 2009년 1월 19.8도로 내려가며, 처음으로 20도 아래로 떨어졌다가 현재는 16도까지 낮아진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애주가들 사이에선 소주를 마시고 '크~' 하는 감탄사를 뱉기엔 술이 너무 약해졌다라고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업계에선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변화라는 설명입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인데요.
한라산소주의 한 임원은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요소가 반영된 저도주(低度酒) 시장 트렌드에 맞춰 전국적으로 제품 도수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현재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40년가량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 오고 있다는 상인 김모씨(80)는 "당시엔 소주가 한일소주밖에 없었다.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며, "나중에 육지 술이라고 진로가 들어왔다. 그것도 잘 나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상인 김모씨는 당시 시장에서 잔술을 파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한라산소주의 전신 한일소주 (사진= 신동원 기자)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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