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인적사항 모를 때 위한 합의금 성격
도입 취지와 달리 감형 위한 꼼수 등 악용
유연수 선수 피해 준 음주운전자도 공탁해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선고 직전에.. "거부"
"강력, 중대범죄 양형에 공탁 배제해야"[법잇수다는 별의별 사건 중 화제가 되거나 의미 있는 판결을 수다 떨 듯 얘기합니다. 언젠가 쏠쏠하게 쓰일 수도 있는 법상식도 전합니다.]
뒤늦게, 처벌이 두려웠던 걸까.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30대 남성은 법원에 700만 원을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축구선수에게 전달해달라는 돈이었습니다. 축구선수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30내 남성이 내민 돈, 바로 형사공탁금입니다.
■ 하반신 마비 초래하고.. 피고인이 내민 700만 원
30대 남성 A씨는 2022년 10월 18일 오전 5시40분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면허취소 수치인 0.117% 상태로 과속 운전을 하다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차량에는 제주유나이티드 골키퍼였던 유연수 선수를 비롯한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쳤습니다. 특히 유 선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유 선수는 25세 나이에 은퇴했습니다. A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위험운전치상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은 A씨가 피해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안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습니다.
A씨는 뒤늦게 유 선수에게 전달해달라며 700만 원을 형사공탁했습니다. 유 선수 측은 진정성이 없는 공탁이라고 보고 이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1심에서 피고인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과거 공탁서엔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가 필요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알아내는 2차 가해 위험이 있었는데 2022년 특례제도가 도입돼 쉽게 공탁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 ‘기습, 꼼수’ 형사공탁이 벌어지고 있다
형사공탁 제도를 규정한 법부터 볼까요. 공탁법 제5조의2에 형사공탁의 특례가 있습니다. 피고인이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해 하는 변제공탁이라고 돼 있습니다.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형사공탁을 한다면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겠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22년 특례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이게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감형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단 점입니다. 형사공탁은 합의금 성격을 띱니다. 재판에서 합의는 감형에 영향을 끼칩니다. 선고 바로 직전에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공탁금을 걸고 피해자가 이를 알지도 못한 채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점이라는 거죠.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손정아 검사 등 3명이 시행한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피고인이 길을 지나가다가 피해자를 추행한 사건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간 합의하지 않은 사안인데도 100만 원의 형사공탁만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판시된 채 원심 벌금형을 깨고 지난해 2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처벌의사도 고려한 사례도 있지만 분명 감형을 노린 기습, 꼼수 공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돈으로 용서를 구한다.. 형사공탁 정말 피해자를 위로하나
손정아 검사 연구팀은 “‘피해자 동의 없는 공탁’, 그중에서도 피해자가 동의 여부조차 밝힐 수 없도록 선고기일 직전에 행해지는 ‘기습공탁’으로 인한 감형 사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진은 “형사공탁에 대한 구체적인 양형기준 및 피해자에 대한 개별 통지 절차가 부재한 탓에, 재판부 성향에 따라 양형요소로서 반영 여부 및 반영 정도가 제각각 판단되는 실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강력범죄의 특별양형인자(형량에 큰 영향력을 갖는 요인)에 형사공탁을 완전히 제외하고, 강력범죄·성범죄의 일반양형인자(형량에 미치는 영향력이 특별양형인자에 미치지 못하는 요인)에는 피해자 의사에 부합하는 공탁만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 더불어 ‘상당한 피해 회복’의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심리절차도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제주지법의 전체 공탁금 납부 사건은 2,500여 건이었습니다. 이는 민형사 모든 공탁금을 합친 수치입니다. 2022년 2,000여 건과 단순 비교해도 증가한 만큼 공탁 제도에 보완할 점은 없는지, 도입 목적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입 취지와 달리 감형 위한 꼼수 등 악용
유연수 선수 피해 준 음주운전자도 공탁해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선고 직전에.. "거부"
"강력, 중대범죄 양형에 공탁 배제해야"[법잇수다는 별의별 사건 중 화제가 되거나 의미 있는 판결을 수다 떨 듯 얘기합니다. 언젠가 쏠쏠하게 쓰일 수도 있는 법상식도 전합니다.]
지난해 제주와 서울의 경기 하프타임에 진행된 유연수의 은퇴식 (사진, 유연수 SNS 갈무리)
뒤늦게, 처벌이 두려웠던 걸까.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30대 남성은 법원에 700만 원을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축구선수에게 전달해달라는 돈이었습니다. 축구선수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30내 남성이 내민 돈, 바로 형사공탁금입니다.
■ 하반신 마비 초래하고.. 피고인이 내민 700만 원
30대 남성 A씨는 2022년 10월 18일 오전 5시40분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면허취소 수치인 0.117% 상태로 과속 운전을 하다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차량에는 제주유나이티드 골키퍼였던 유연수 선수를 비롯한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쳤습니다. 특히 유 선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유 선수는 25세 나이에 은퇴했습니다. A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위험운전치상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은 A씨가 피해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안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습니다.
A씨는 뒤늦게 유 선수에게 전달해달라며 700만 원을 형사공탁했습니다. 유 선수 측은 진정성이 없는 공탁이라고 보고 이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1심에서 피고인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과거 공탁서엔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가 필요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알아내는 2차 가해 위험이 있었는데 2022년 특례제도가 도입돼 쉽게 공탁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 ‘기습, 꼼수’ 형사공탁이 벌어지고 있다
형사공탁 제도를 규정한 법부터 볼까요. 공탁법 제5조의2에 형사공탁의 특례가 있습니다. 피고인이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해 하는 변제공탁이라고 돼 있습니다.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형사공탁을 한다면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겠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22년 특례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이게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감형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단 점입니다. 형사공탁은 합의금 성격을 띱니다. 재판에서 합의는 감형에 영향을 끼칩니다. 선고 바로 직전에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공탁금을 걸고 피해자가 이를 알지도 못한 채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점이라는 거죠.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손정아 검사 등 3명이 시행한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피고인이 길을 지나가다가 피해자를 추행한 사건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간 합의하지 않은 사안인데도 100만 원의 형사공탁만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판시된 채 원심 벌금형을 깨고 지난해 2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처벌의사도 고려한 사례도 있지만 분명 감형을 노린 기습, 꼼수 공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돈으로 용서를 구한다.. 형사공탁 정말 피해자를 위로하나
손정아 검사 연구팀은 “‘피해자 동의 없는 공탁’, 그중에서도 피해자가 동의 여부조차 밝힐 수 없도록 선고기일 직전에 행해지는 ‘기습공탁’으로 인한 감형 사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진은 “형사공탁에 대한 구체적인 양형기준 및 피해자에 대한 개별 통지 절차가 부재한 탓에, 재판부 성향에 따라 양형요소로서 반영 여부 및 반영 정도가 제각각 판단되는 실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강력범죄의 특별양형인자(형량에 큰 영향력을 갖는 요인)에 형사공탁을 완전히 제외하고, 강력범죄·성범죄의 일반양형인자(형량에 미치는 영향력이 특별양형인자에 미치지 못하는 요인)에는 피해자 의사에 부합하는 공탁만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 더불어 ‘상당한 피해 회복’의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심리절차도 요구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제주지법의 전체 공탁금 납부 사건은 2,500여 건이었습니다. 이는 민형사 모든 공탁금을 합친 수치입니다. 2022년 2,000여 건과 단순 비교해도 증가한 만큼 공탁 제도에 보완할 점은 없는지, 도입 목적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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