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가족끼리 싸울 거면 차라리 차례 안 지내는 게 낫지"
600년 넘는 제주향교 역사상 최연소 전교인 진인수(67) 전교는 지난 6일 설 명절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파격 발언을 했습니다.
이날 자리엔 50년 이상 제주향교에 적(籍)을 둔 고명수(81) 원로회장, 진병찬(82) 원로 등 두 원로 유림과 윤두호(72) 부전교, 김원순(72) 강사도 함께했는데, 모두 '맞다, 맞어', '그렇지'를 연발하며 격하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전교는 향교를 하나의 교육기관으로 봤을 때 총장이나 교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진 전교는 제주향교가 조선시대 원년(1392년)에 창건된 이래 첫 60대 전교라고 합니다. 이전까진 주로 70~80대가 전교를 맡아 왔다는 설명입니다. 원로는 향교 내 가장 큰 웃어른, 강사는 예법 등을 가르치는 담임교사 격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제주향교를 대표하는 유림 5인은 이 자리에서 "시대가 변했다. 차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과 정성"이라고 이구동성했습니다.
특히, 매월 두 차례 올렸던 '삭망일 분향례'를 이번 설부터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형식에 매몰돼 참가자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단 마음을 다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홍동백서, 조율이시? 예서엔 없어"
진인수 전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이시(棗栗梨枾)니 음식을 어떻게 놓으라는 진설 방식에 대해선 예서(禮書)에 적시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엔 지역마다 나오는 과일이 다르고, 구할 수 있는 생선의 종류가 다 달랐다며 근대에 들어서 정형화된 것처럼 여겨지는 차례 상차림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며 "각 가정에선 가족들이 모여 서로 의논해서 다툼이 없이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제주도의 경우에도 생선을 뒤집어서 올리거나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며 "제주도 안에서도 동서남북으로 상을 차리는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진설하는 것도 좋다"며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이 헷갈릴 텐데 굳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말고 지방이나 사진에 가까운 쪽에 고인이 제일 좋아했던 음식을 놓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진 전교는 "귀신이 와서 형제끼리 싸우는 걸 보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안 먹어가지"라고 말하자, 함께 있던 유림들이 공감의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고명수 원로회장도 "가가례라고 해서 진설 방식이 다를 수 있다"며 "옆집과 비교해서 어느 집이 더 화려하게 차례상을 꾸몄는가 보다는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향교도 변하는데.. 형식 절차에 얽매일 필요 없어
진인수 전교는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월 두 번 했던 삭망일 분향례를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삭망 분향례는 유교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매월 삭일(음력 초하루)와 망일(음력 보름) 등 한 달에 두 차례에 걸쳐 올리는 유교 제례입니다. 제례는 유림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전 8~9시 사이에 이뤄집니다.
진 전교는 "향교의 운영은 말 그대로 유림들의 자발적 봉사로 이뤄지는데, 예전엔 50~70대 은퇴자들이 제관으로 많이 참여했었다"며, "이젠 나이 70이 넘어서 은퇴를 해도 다시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 제관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으로 나와서 사람이 없이 두 번 제를 올릴 바엔 한 번을 하더라고 제례다운 제사를 지내자고 해서 바꾸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과거 여성이 제례의 제관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했던 관습에 대해서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 전교는 아울러 "예전엔 향교의 정문을 항상 닫아 놓았던 문도 이젠 열어 두고 도민들이 결혼식 등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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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주향교 진인수 전교 (사진, 신동원 기자)
"가족끼리 싸울 거면 차라리 차례 안 지내는 게 낫지"
600년 넘는 제주향교 역사상 최연소 전교인 진인수(67) 전교는 지난 6일 설 명절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파격 발언을 했습니다.
이날 자리엔 50년 이상 제주향교에 적(籍)을 둔 고명수(81) 원로회장, 진병찬(82) 원로 등 두 원로 유림과 윤두호(72) 부전교, 김원순(72) 강사도 함께했는데, 모두 '맞다, 맞어', '그렇지'를 연발하며 격하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전교는 향교를 하나의 교육기관으로 봤을 때 총장이나 교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진 전교는 제주향교가 조선시대 원년(1392년)에 창건된 이래 첫 60대 전교라고 합니다. 이전까진 주로 70~80대가 전교를 맡아 왔다는 설명입니다. 원로는 향교 내 가장 큰 웃어른, 강사는 예법 등을 가르치는 담임교사 격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제주향교를 대표하는 유림 5인은 이 자리에서 "시대가 변했다. 차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과 정성"이라고 이구동성했습니다.
특히, 매월 두 차례 올렸던 '삭망일 분향례'를 이번 설부터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형식에 매몰돼 참가자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단 마음을 다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홍동백서, 조율이시? 예서엔 없어"
(사진 왼쪽부터) 제주향교 윤두호 부전교, 고명수 원로회장, 진인수 전교, 진병찬 원로, 김원순 강사 (사진, 신동원 기자)
진인수 전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이시(棗栗梨枾)니 음식을 어떻게 놓으라는 진설 방식에 대해선 예서(禮書)에 적시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엔 지역마다 나오는 과일이 다르고, 구할 수 있는 생선의 종류가 다 달랐다며 근대에 들어서 정형화된 것처럼 여겨지는 차례 상차림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렸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며 "각 가정에선 가족들이 모여 서로 의논해서 다툼이 없이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제주도의 경우에도 생선을 뒤집어서 올리거나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며 "제주도 안에서도 동서남북으로 상을 차리는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진설하는 것도 좋다"며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이 헷갈릴 텐데 굳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말고 지방이나 사진에 가까운 쪽에 고인이 제일 좋아했던 음식을 놓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진 전교는 "귀신이 와서 형제끼리 싸우는 걸 보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안 먹어가지"라고 말하자, 함께 있던 유림들이 공감의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고명수 원로회장도 "가가례라고 해서 진설 방식이 다를 수 있다"며 "옆집과 비교해서 어느 집이 더 화려하게 차례상을 꾸몄는가 보다는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향교도 변하는데.. 형식 절차에 얽매일 필요 없어
제주향교 진인수 전교 (사진, 신동원 기자)
진인수 전교는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월 두 번 했던 삭망일 분향례를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삭망 분향례는 유교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매월 삭일(음력 초하루)와 망일(음력 보름) 등 한 달에 두 차례에 걸쳐 올리는 유교 제례입니다. 제례는 유림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전 8~9시 사이에 이뤄집니다.
진 전교는 "향교의 운영은 말 그대로 유림들의 자발적 봉사로 이뤄지는데, 예전엔 50~70대 은퇴자들이 제관으로 많이 참여했었다"며, "이젠 나이 70이 넘어서 은퇴를 해도 다시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 제관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으로 나와서 사람이 없이 두 번 제를 올릴 바엔 한 번을 하더라고 제례다운 제사를 지내자고 해서 바꾸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과거 여성이 제례의 제관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했던 관습에 대해서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 전교는 아울러 "예전엔 향교의 정문을 항상 닫아 놓았던 문도 이젠 열어 두고 도민들이 결혼식 등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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