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산간 일대에서 확인된 커다란 구덩이.
일제시대 영림서에서 조림했던 현장으로 4.3 당시 수많은 주민들이 피신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증언 조사를 토대로 이 곳에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난민은 인근의 봉개와 도련 주민 뿐만 아니라,
난산리 주민들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상봉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각지의 피난민들이 올라오죠. 심지어는 난산리 사람들도 올라옵니다. 난산리 사람 100여 명 정도가 올라와서 영림서에서 숨어 살았고..."
4.3 당시 오름 등 지역내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난산리 주민들이 영림서 조림 현장까지 몸을 피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난산리 주민 30여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성산포 터진목에서 집단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림서와 피난, 학살의 역사를 떼어놓고 볼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김동은 기자
"제주 4.3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한라산과 중산간 일대 피난과 토벌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JIBS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피난처인 한라산 종남궤에서는 최근 4.3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탄까지 발견됐습니다.
이 종남궤에서는 지난 1950년대 후반 사람 뼈가 여러개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자체 조사에서도 수많은 유물들이 확인되고 있는 겁니다.
배기철 전 주민자치연대 대표
"1948년과 49년 당시 산으로 올랐던 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나오고 있고 생활 도구나 토벌 과정에서 무기류, 총탄 등이 많이 나오는데..."
4.3 당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피난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선 일제시대 표고밭과 방목지, 화전민터, 영림서가 열쇠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관련 조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한라산 국립공원 일대 4.3 유적지에 대한 조사가 처음 이뤄지긴 했지만,
한라산 북서쪽 지역만을 대상으로 극히 일부에 그쳤고, 추가 조사는 현재까지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동현 제주 4.3 연구소 책임연구원
"그 분들이 은신했을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은 그 분들의 증언 밖에 없거든요. 이 증언자 분들이 연세가 높아지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계세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빠른 조사가 필요하고..."
명예회복과 배보상 등으로 4.3은 이제 정리됐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제주 4.3은 피난처와 이동 경로 등도 알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고승한)
JIBS 제주방송 김동은 (kdeun2000@hanmail.net), 고승한 (q890620@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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