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일) 아침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은 박계성, 박미영 자매 (사진, 김재연 기자)
"70년 만에 꿈에 나온 아버지에게 울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내가 가야 4·3을 해결할 수 있다'며 가셨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린 오늘(3일) 아침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은 박계성(77·애월읍), 박미영(74) 자매의 말입니다.
이들 자매는 교사였던 아버지가 예비검속으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수십 년째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박계성씨의 나이는 고작 3살. 박미영씨는 갓난아이였습니다.
매년 이곳 행방불명인 묘역을 방문하는 이들 자매는 이날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흐느꼈습니다.
박계성씨는 "어릴 땐 아버지의 역할이 뭔지 몰랐다"며 "자식을 키우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아버지가 정말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느 날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꿈에 나왔지만 그때 이후로 다신 꿈에 나오지 않으셨다"며 "너무 보고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날 행방불명인 묘역에선 손수건 등으로 비석을 닦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유족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3일) 아침 남편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은 이농춘씨 (사진, 김재연 기자)
고령의 유족들은 시신을 찾지 못한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4·3 당시 도내 최대 규모 수용소였던 주정공장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묘석을 찾은 이농춘씨(79·화북동)는 "내년이면 80세인데,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둘째 작은 아버지는 지난해 제주국제공항에서 유해가 발굴돼 DNA 검사를 거쳐 신원이 확인됐다"며 "아버지도 제가 죽기 전에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울먹였습니다.
4·3희생자 추념일이 어느덧 76주년을 맞았습니다.
4·3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희생자 명예회복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유족들의 가슴에 완전한 봄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과제는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정치권과 극우단체 등의 4·3 왜곡, 폄훼는 유족들의 상처를 후벼파고 있고, 4.3특별법 전부 개정에 뒤이은 후속 조치 역시 남겨진 과제입니다.
한편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오늘(3일) 오전 10시 4·3평화공원에서 거행됩니다.
오늘(3일) 아침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사진, 김재연 기자)
JIBS 제주방송 김재연(Replay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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