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일) 거행된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사진, 정용기 기자)
"할머니는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제일 먼저 '음력' 동짓달 스무날 찾아보라'는 말씀을 하세요. 이날이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에요"
10대 손녀에 의해 전해진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에 추념식장 곳곳에선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제76주년 제주4·3 추념일인 오늘(3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4·3희생자 추념식이 엄수됐습니다.
추념식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1분간 울린 사이렌으로 시작됐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는 현장엔 백발이 되어버린 생존 희생자와 유족을 비롯해 2만여 명의 추모 인파가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했습니다. 비날씨에도 추모객들은 우의를 입고 엄숙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3일) 거행된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을 하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 (사진, 이효형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 대표,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한규 민주당 의원, 위성곤 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오영훈 제주도지사, 송두환 국가인원위원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대표로 먼저 헌화와 분향을 했습니다. 이어 추념사와 유족 사연 공개, 추모공연 등이 진행됐습니다.
유족 사연을 소개하는 순서에선 4·3 당시인 불과 5살 나이에 가족을 잃고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김옥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제주를 대표하는 배우 고두심씨에 의해 소개됐습니다.
특히, 김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양의 편지 낭독으로 이어진 사연 소개는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습니다. 한양은 4·3 당시 목숨을 잃은 할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세 살 남동생이 희생됐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유족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는 추념식 참석자 (사진, 정용기 기자)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조차 죄가 됐던 제주의 '가메기 모른 시껫날(까마귀 모르는 제삿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김 할머니의 부친의 모습을 AI 영상기술로 구현해 애잔함을 더했습니다. 바로 이어진 가수 인순이씨의 노래 '아버지'는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마지막 추모공연에는 성악가 김동규씨와 한아름씨, 도란도란 합창단의 '바람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화해와 상생의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피로 물든 한라산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4·3 광풍으로 떠났던 동백꽃은 끝내 제주섬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76주년 희생자 추념식으로 봉행하고 있다. 4·3영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4·3 광풍 속에 살아남은 유족들은 아무 이유 없이 '빨갱이' 자식으로 누명 씌워져 좌절과 절망의 긴 세월 속에 숨죽여 살다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아 4·3의 진실을 눈물로 통곡할 수 있었다"며, "그 모진 질곡의 세월을 견뎌내며 평화로운 제주 공동체를 일궈온 유족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했습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도정은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단 한 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챙기겠다"며 4·3수형자 보상과 수형 피해자 무죄 선고 등 그간의 성과에 대해 짚었습니다.
오 지사는 이어 "내년 4·3 역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새로운 출발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라며, "국가폭력에 의한 통한의 역사를 화해와 상생, 해원으로 극복해 낸 제주인들의 고귀한 평화정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며 "우리 정부는 4‧3사건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화합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총리는 또 "우리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굳게 지킬 수 있는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제주도민의 뜻을 받들어 4‧3사건이 '화해와 상생의 역사'가 될 수 있도록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의 섬 제주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 미래 성장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늘(3일) 거행된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사진, 윤인수 기자)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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