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교도소 첫 4.3 희생자 유해 확인
고(故) 양천종 씨 유족 DNA 일치해
1949년 "잘 지낸다" 이후 사망 통보
유족, 시신 수습 힘 썼지만 75년 흘러
다음 달, 유해 봉환식 및 신원 보고회
제주4.3 희생자 유해가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공동묘지에서 확인됐습니다.
2019년 광주광역시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무연고자 유해가 대규모로 발견된 후 감식을 거쳐 제주4.3 희생자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179명의 제주도민이 재판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재판 기록이 있었는데, 유전자(DNA) 대조를 통해 제주4.3 희생자를 찾은 겁니다.
제주4.3평화재단 등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4.3 희생자 유해는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할아버지 고(故) 양천종 씨로 나타났습니다.
희생자를 찾기 위한 4.3 희생자 유족의 채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고 양천종 씨는 1949년 광주교도소에 끌려가 옥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 양천종 씨는 제주시 연동리 출신으로,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지역주민이 협조하도록 하는 선전, 원조활동)에 주정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생활했습니다.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해진 소식은 1949년 11월경의 안부 편지였습니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이 편지 이후, 가족들은 12월 4일자로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 하다 75년 만에 DNA 대조로 유해를 찾은 것입니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다음 달 16일 유가족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이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 후 화장될 예정입니다.
다음 달 17일에는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봉환됩니다. 제주도는 봉환식과 신원확인 보고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앞서 2019년 광주광역시 문흥동 소재 옛 광주교도소 터에 있던 무연고자 유해 261기에 대한 감식이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5.18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유골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제주4.3도민연대는 이 유골들이 4.3때 광주형무소에 끌려가 옥사한 수형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주도의 실태 조사를 촉구하며 지난달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광주형무소는 4.3 이후 제주도민들이 처음으로 수감된 육지부 형무소입니다. 재판 기록에서 최소 179명의 도민이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7월쯤 당시 광주형무소엔 약 3,000 명의 수감자가 있었습니다.
광주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전황이 불리해지자 퇴각하던 군경들이 광주형무소 재소자들을 학살해 암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된 제주도민도 여기에 휘말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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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양천종 씨 유족 DNA 일치해
1949년 "잘 지낸다" 이후 사망 통보
유족, 시신 수습 힘 썼지만 75년 흘러
다음 달, 유해 봉환식 및 신원 보고회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제주4.3 희생자 유해가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공동묘지에서 확인됐습니다.
2019년 광주광역시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무연고자 유해가 대규모로 발견된 후 감식을 거쳐 제주4.3 희생자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179명의 제주도민이 재판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재판 기록이 있었는데, 유전자(DNA) 대조를 통해 제주4.3 희생자를 찾은 겁니다.
제주4.3평화재단 등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4.3 희생자 유해는 양성홍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할아버지 고(故) 양천종 씨로 나타났습니다.
희생자를 찾기 위한 4.3 희생자 유족의 채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고 양천종 씨는 1949년 광주교도소에 끌려가 옥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 양천종 씨는 제주시 연동리 출신으로,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했습니다.
광주광역시 동명동 소재 광주형무소 옛터. 현재는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사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그러다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지역주민이 협조하도록 하는 선전, 원조활동)에 주정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생활했습니다.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해진 소식은 1949년 11월경의 안부 편지였습니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이 편지 이후, 가족들은 12월 4일자로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 하다 75년 만에 DNA 대조로 유해를 찾은 것입니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다음 달 16일 유가족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이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 후 화장될 예정입니다.
다음 달 17일에는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봉환됩니다. 제주도는 봉환식과 신원확인 보고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주4·3도민연대 기자회견에서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 신동원 기자)
앞서 2019년 광주광역시 문흥동 소재 옛 광주교도소 터에 있던 무연고자 유해 261기에 대한 감식이 이뤄졌습니다. 여기서 5.18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유골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제주4.3도민연대는 이 유골들이 4.3때 광주형무소에 끌려가 옥사한 수형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주도의 실태 조사를 촉구하며 지난달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광주형무소는 4.3 이후 제주도민들이 처음으로 수감된 육지부 형무소입니다. 재판 기록에서 최소 179명의 도민이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7월쯤 당시 광주형무소엔 약 3,000 명의 수감자가 있었습니다.
광주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전황이 불리해지자 퇴각하던 군경들이 광주형무소 재소자들을 학살해 암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된 제주도민도 여기에 휘말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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