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부쩍 날이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12·3 내란사태'로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서며 8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의 힘이 되어 줄 좋은 전시 등을 정리해 봤습니다.
■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삶
'성적표'
학교는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전쟁이 시작돼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나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그해에 입학하기로 돼 있던 남동생이 계속 글자를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일종의 증거로 늘 내 성적표를 지니고 다녔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종이쪽지는 더는 기억나지 않는 인생의 한 시기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증표 중 하나가 됐다. - 세미르(1981년생, 전쟁 발발 당시 11세, 모스타르 거주)
전쟁의 참상을 마주한 어린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제주에서 열렸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이달 3일부터 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 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이 전시는 현대사에서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된 '사라예보 포위전'을 겪은 아이들의 기증품이 전시됐습니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지난 1992년부터 4월 6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1,425일간 봉쇄된 상태로, 학살의 광풍을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보스니아 내전'으로 잘 알려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기, 사라예보는 식량과 물은 물론, 전기, 의약품 등이 단절된 상태로 살았습니다. 거리엔 반군의 저격수들이 자리를 잡고 행인을 향해 흉탄을 격발했습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한 소녀의 발레슈즈, 포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만화책, 11개월 만에 처음 맛 본 오렌지 껍질을 붙여놓은 일기장, 포위된 도시에서 물을 떠서 나르던 물통. 전시는 전쟁기 어린이들이 힘든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어린이들이 썼던 실제 일기장이나 폭발물을 만지지 말라던 전단지 등 실제 물건을 통해 전쟁의 참상이 구체적으로 와닿도록 꾸며졌습니다.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3일 개막식에서 "전쟁의 고통을 회복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4·3 유족들의 어린 시절의 삶과 맞닿아 있다"라고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전시는 4·3평화재단과 세계 유일의 어린이 전쟁 박물관인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박물관'이 함께 준비한 것으로, 내년 어린이날 다음 달인 2025년 5월 6일까지 진행됩니다.
'저항의 파란 드레스'
"1993년 사라예보의 버려진 이 드레스를 발견했습니다.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밝은 색깔은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덕에 숨은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기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희미한 파스텔 톤의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었지만 나는 이 밝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이는 나의 저항이자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시였습니다." 에미나(1976년생, 전쟁 발발 당시 16세)
■ 행복을 찾아서…
제주시 원도심의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산지천갤러리에서 '행복'에 관한 기획전시가 마련됐습니다.
'우리의 내면 탐구: 행복을 향한 여정' 전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자주 언급되는 '자존감', '행복', '성공', '소통'과 같은 키워드가 왜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갤러리 2층부터 4층까지 마련된 전시회장에선 회화와 설치 미술작품, 미디어, 영상 등 2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박정근, 이인강, 이해강, 임형섭, 정주원 다섯 명의 작가는 각각 는 <비상, 평범한 영웅의 탄생>, <힘, 일상의 순간들>, <복잡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탄생>, <불완전하고 완벽한, 대화>, <확장, 연결의 삶> 의 다섯개의 소주제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작가들은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넘어 세상과의 복잡한 연결을 되돌아보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주최 측은 "각 주제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포괄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라며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보다 충만한 삶을 위한 요소들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오는 2025년 3월 16일까지 진행됩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입니다.
■ 3·1운동보다 앞선 제주 종교계 최대 항일투쟁 들어보셨나요
'국민 주권'이란 화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 1919년 3·1만세 운동에 한발 앞서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요?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역사를 기리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전시관'이 이달 초 문을 열었습니다.
제주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은 1910년대 전국 최대 규모의 종교계 무장 항일운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보다 5개월 앞선 1918년 10월에 일어났습니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과 제주인들이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맞서 항거한 이 운동은 제주인의 강인한 독립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주요 가담자 66명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송치돼 징역 등을 살았고, 재판 전과 수감 중 옥사한 이들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입구에 들어선 전시관은 기존 관리사무소를 리모델링해 126.72㎡ 규모로 조성됐습니다.
3곳으로 나뉜 전시 공간은 입체적이고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법정사 항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합니다. 제1전시실은 당시 작성된 격문 등을 통해 법정사 항일운동의 전개과정을 시간순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영상실에서는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다큐멘터리 '불씨' 전편(50분ㆍ30분ㆍ8분)을 원하는 버전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제2전시실에서는 일제의 탄압으로 왜곡된 법정사 항일운동의 실상과 의의를 재조명합니다. 특히 당시 기록과 전문가, 유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역사적 현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이 산길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산책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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