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청년단 대표 '서북청년단' 언급
백골단 운영 주장에 서청까지 소환
4.3사건진상보고서에 서청 정체는
제주4.3 학살 앞장 극우단체 명시
제주서 지속적으로 논란 자초해['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그런 시대에서는 서북청년단 같은 과격한 보수단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행동하는 청년들이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하고.”
반공청년단 대표라는 A 씨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한 발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부당하게 탄핵시키려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시위 군중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의 별칭이자 경찰폭력의 상징이었던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최근 밝힌 A 씨.
논란 속에 서북청년회까지 끄집어내며 폭력성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는 제주4.3 당시 군경에 합류해 제주도민을 무차별 학살한 극우단체입니다.
서청이라고도 불리는 서북청년회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강경 진압작전에 투입돼 제주도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로 묘사돼 있습니다.
■ 진상보고서에도 ‘학살 가해자’격으로 표현.. 누구길래
그렇다면 서청은 누구일까. 또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걸까. 1948년 당시 주한미군사령부는 정기 보고서를 통해 서북청년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서북청년회는 이북에서 온 피난민이다. 과격한 반공주의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들은 오랫동안 경찰과 경비대의 작전에 가담해왔다.’
또 서북청년회 단원에게 급히 경찰복을 입혀 제주에 파견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며, 이들은 이북에서 내려와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공산주의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던 서북청년회의 처지를 이용한 게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나왔습니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서청은 악몽의 그림자’였다고 표현한 글이 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은 이보다 더 험악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서청이 누구인가보다 이들이 제주로 와 벌인 학살과 강경 진압이 큰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겠죠.
서청이 대거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이들이 전율할 학살극을 벌여도 제재할 기관이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 군경으로 둔갑한 서북청년회 잔혹 학살 앞장
서청의 규모는 그 유입 과정으로 추산해볼 수 있습니다.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서청의 제주 입도를 4.3 발발 직전, 4.3 발발 직후, 여순사건 직후 크게 3갈래로 나눕니다.
이렇게 제주로 유입된 서청은 최소 2,0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4.3 당시 제주는 ‘서청판’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4.3사건 가해자는 토벌대 1만여 명, 무장대 1,700여 명에 달했는데 서청은 토벌대로 분류됐습니다. 이들은 고문, 총살, 강경진압 등을 일삼았습니다.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 갈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중략) (서청 출신 경찰)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4.3은 말한다’ 경찰 특공대원 증언)
또 1948년 11월 9일 제주도 총무국장 고(故) 김두현 씨가 서청의 손에 고문치사 당한 사건도 서청의 위세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꼽힙니다.
서청이 제주도 공무원을 고문한 이유, 보급문제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미군은 이 사건에 대해 “서청 단원들은 총무국장이 알려진 공산주의자이며 자기들은 조사하려 했을 뿐이지 죽이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서청의 개입범위와 역할을 별도 목차로 둘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 서청이라는 단어만 보고서에 200번 넘게 언급됩니다.
■ 계속 소환되는 ‘악몽’ 2년 전에도 논란
서북청년회 주장 단체가 2년 전 2023년에도 제주에 등장하며 큰 반발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2023년 4.3희생자추념식 당일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 대장이라고 주장하는 B 씨가 2023년 제75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집회 개최를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북청년단 소속 회원들은 제주평화공원 맞은편에서 집회를 위해 차량 하차를 시도했으나 4.3유족회 등 유관단체의 큰 반발에 막혔습니다.
이에 서북청년단은 4.3희생자 유족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은 최근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민주노총은 "학살을 옹호한 서청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4.3 왜곡과 폄훼를 처벌하는 4.3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습니다.
■ 탄핵 정국서 소환된 폭력 극우단체 서북청년회
반공청년단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저지와 체포영장 집행 거부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까지 끄집어내며 단체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를 언급하며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A 씨 등과 이들을 국회로 데려와 기자회견까지 주선한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SNS에 "김민전 의원은 '백골단'이라고 하는 정치깡패의 부활을 알렸다. 백색테러를 무수히 자행하던 서북청년회 부활로도 읽힌다. 정치깡패를 부활시켜 결국 윤석열을 방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백골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의 용어인지 정말 모릅니까"라며 "이건 분뇨차 이전에 분변을 못 가리는 정치"라고 김민전 의원을 향해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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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 운영 주장에 서청까지 소환
4.3사건진상보고서에 서청 정체는
제주4.3 학살 앞장 극우단체 명시
제주서 지속적으로 논란 자초해['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4월 3일 75주년 4.3희생자추념식이 이뤄진 4.3평화공원 앞 도로에서 서북청년단이 승합차를 몰고 와 집회를 시도하자 4.3 유족회 등 유관 단체의 큰 반발이 일자 경찰이 승합차를 둘러 싼 모습
“법보다 무력이 앞서는 그런 시대에서는 서북청년단 같은 과격한 보수단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행동하는 청년들이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하고.”
반공청년단 대표라는 A 씨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한 발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부당하게 탄핵시키려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시위 군중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의 별칭이자 경찰폭력의 상징이었던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최근 밝힌 A 씨.
논란 속에 서북청년회까지 끄집어내며 폭력성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는 제주4.3 당시 군경에 합류해 제주도민을 무차별 학살한 극우단체입니다.
서청이라고도 불리는 서북청년회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강경 진압작전에 투입돼 제주도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로 묘사돼 있습니다.

■ 진상보고서에도 ‘학살 가해자’격으로 표현.. 누구길래
그렇다면 서청은 누구일까. 또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걸까. 1948년 당시 주한미군사령부는 정기 보고서를 통해 서북청년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서북청년회는 이북에서 온 피난민이다. 과격한 반공주의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들은 오랫동안 경찰과 경비대의 작전에 가담해왔다.’
또 서북청년회 단원에게 급히 경찰복을 입혀 제주에 파견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며, 이들은 이북에서 내려와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공산주의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던 서북청년회의 처지를 이용한 게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나왔습니다.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서청은 악몽의 그림자’였다고 표현한 글이 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상황은 이보다 더 험악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서청이 누구인가보다 이들이 제주로 와 벌인 학살과 강경 진압이 큰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겠죠.
서청이 대거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이들이 전율할 학살극을 벌여도 제재할 기관이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갈무리
■ 군경으로 둔갑한 서북청년회 잔혹 학살 앞장
서청의 규모는 그 유입 과정으로 추산해볼 수 있습니다.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서청의 제주 입도를 4.3 발발 직전, 4.3 발발 직후, 여순사건 직후 크게 3갈래로 나눕니다.
이렇게 제주로 유입된 서청은 최소 2,0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4.3 당시 제주는 ‘서청판’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4.3사건 가해자는 토벌대 1만여 명, 무장대 1,700여 명에 달했는데 서청은 토벌대로 분류됐습니다. 이들은 고문, 총살, 강경진압 등을 일삼았습니다.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 갈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중략) (서청 출신 경찰)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4.3은 말한다’ 경찰 특공대원 증언)
또 1948년 11월 9일 제주도 총무국장 고(故) 김두현 씨가 서청의 손에 고문치사 당한 사건도 서청의 위세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꼽힙니다.
서청이 제주도 공무원을 고문한 이유, 보급문제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미군은 이 사건에 대해 “서청 단원들은 총무국장이 알려진 공산주의자이며 자기들은 조사하려 했을 뿐이지 죽이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서청의 개입범위와 역할을 별도 목차로 둘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 서청이라는 단어만 보고서에 200번 넘게 언급됩니다.

2023년 4월 3일 75주년 4.3희생자추념식이 이뤄진 4.3평화공원 앞 도로에서 서북청년단이 승합차를 몰고 와 집회를 시도하자 4.3 유족회 등 유관 단체의 큰 반발이 일자 경찰이 승합차를 둘러 싼 모습
■ 계속 소환되는 ‘악몽’ 2년 전에도 논란
서북청년회 주장 단체가 2년 전 2023년에도 제주에 등장하며 큰 반발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2023년 4.3희생자추념식 당일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 대장이라고 주장하는 B 씨가 2023년 제75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집회 개최를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북청년단 소속 회원들은 제주평화공원 맞은편에서 집회를 위해 차량 하차를 시도했으나 4.3유족회 등 유관단체의 큰 반발에 막혔습니다.
이에 서북청년단은 4.3희생자 유족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은 최근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민주노총은 "학살을 옹호한 서청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4.3 왜곡과 폄훼를 처벌하는 4.3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습니다.

반공청년단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서북청년단을 언급했다 (사진, 유튜브 이봉규TV 갈무리)
■ 탄핵 정국서 소환된 폭력 극우단체 서북청년회
반공청년단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저지와 체포영장 집행 거부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까지 끄집어내며 단체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북청년회를 언급하며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A 씨 등과 이들을 국회로 데려와 기자회견까지 주선한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SNS에 "김민전 의원은 '백골단'이라고 하는 정치깡패의 부활을 알렸다. 백색테러를 무수히 자행하던 서북청년회 부활로도 읽힌다. 정치깡패를 부활시켜 결국 윤석열을 방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백골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의 용어인지 정말 모릅니까"라며 "이건 분뇨차 이전에 분변을 못 가리는 정치"라고 김민전 의원을 향해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정용기 (brave@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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