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추석기획2-너에게 못다한 이야기,꿈에서라도 보고픈 어머니. 오인권 할아버지 이야기
(앵커)
추석을 맞아 마련한 기획 뉴스, 4·3을 겪은 세대가 MZ세대에 전하는 이야기를 웹툰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덧붙여 구성했습니다.
이번에는 4·3 당시 돌이 갓 지난 상황에서 어머니를 여의었던 오인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학생 현경준씨가 들어봤습니다.
신윤경 기잡니다.
(리포트)
4·3 추모길이 온라인에 펼쳐졌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현경준씨.
영상과 책으로만 접했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직접 들어보려 합니다.
현경준 / 제주대학교 학생
미래 세대가 어떤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는지 이런 이야기를 주로 들어보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4·3 공부하러 왔습니다."
오인권 / 4·3 후유장애인
내가 1947년. 9월 15일에 어디냐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서 태어났거든. 내가 할머니로부터 4·3에 대해들은 이야기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오인권 할아버지의 4·3은 4·3 발발의 원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 통일된 나라를 꿈꾸 기념행사가 관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응원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별다른 조치 없이 지나간 경찰에 항의하는 군중들은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무고한 시민 6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3월 10일부터는 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이 제주 전역에서 시작됐습니다.
각계각층의 참여한 파업에는 제주출신 경찰관들도 동참했고, 인권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경찰을 그만둔 것도 이때쯤입니다.
오인권 / 4·3후유장애인
말하자면 국가의 폭력 이런 거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그런 것은 못하겠다고 해서 정부의 잘못된 명령(부당한 명령)이랄까 그런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만 둔 이후로.
1948년 11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주의 민란을 진압하라는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강경진압작전이 시작됐고,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앗아가는 대살’도 무참히 자행됐습니다.
1949년 2월. 바람이 거센 바닷가
성산포 터진목.
돌이 갓 지난 아들을 품에 안고 있던 인권 할아버지의 어머니도 이곳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경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참히 총을 쏘아댔습니다.
터진목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도피자 가족 집단 학살사건은 이날 발생했습니다.
17개월의 인권 할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어 다니다 발견돼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고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 희생자입니다.
부모의 부재 속에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소년은 70년의 세월을 담아선 얼굴로 그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팔에 남아있는 총상의 흔적처럼 기억을 하지 못하는 과거의 슬픔도 그대로입니다.
오인권 / 4·3후유장애인
"(4·3이) 완벽하게 되지는 못하겠지만 정리가 돼야 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모두가 개설될 수 있도록 노력 해 나가야 겠지..”
JIBS 신윤경입니다.
영상취재 - 고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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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경(yunk98@jib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