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JIBS는 어제(7일) 이 시간을 통해 4·3 당시 피난민들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동굴을 처음으로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이 곳은 7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당시 상황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요.
과연 이곳에 누가 머물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이 한둘이 아닙니다.
김동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깊은 숲 속에 있는 작은 구멍.
이 구멍을 통해 내려가면 또 다른 입구가 나타나고,
그 안쪽 넓은 공간에서 깨진 항아리들이 무더기 발견됐습니다.
곳곳에서 탄피와 탄두 뿐만 아니라, 정체 불명의 뼛조각도 눈에 띕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4·3 피난처로 추정되는 이윱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누가 피난을 와 머물렀을까?
한 주민은 4·3 당시 깊고 내부가 넓은 궤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다고 증언합니다.
그 곳의 이름은 '어오름궤'라는 곳으로, 피난민만 10명이 넘었다는 겁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궤가 깊다고 했고, 넓어. 한쪽 구석으로 가면 위에서 봐도 못 봐. (그 궤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요?)어오름궤"
이번에 발견된 현장 역시 깊이 3에서 4미터 가량되는 동굴 입구를 지나,
그 안쪽에 길이 7, 8미터 가량의 넓은 공간이 확인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증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강 할아버지의 아버지 역시 이 어오름궤 안에서 머물다,
지난 1949년 3월 4일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곡식을 가져다가 밥이라도 해 먹으려고 궤 밖으로 나와서 망을 보려고 나왔는데, 망을 보는데 총으로 쏴서 거기서 돌아가셨고, 궤 안에 있던 분들이 시신을 덮어줬다고..."
증언을 토대로 피난 동선을 재구성하면,
중산간 일명 '큰빅데기'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이 어오름궤로 피난을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봉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피난) 노선 상에서 제일 첫 번째로 맞닿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일대 화전민 사람들은, 목장 화전 사람들은 이 궤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곳이 맞는지 증언자와 현장 확인에 나섰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현장을 뚜렷하게 기억했습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네, 여기 어오름궤가 맞습니다. 여기. 우리 아버지가 이쪽에서 (돌아가셨고요?)"
제주자치도와 4·3평화재단 역시 이 어오름궤에 대한 현장 확인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김은희 제주 4·3 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조사2팀장
"전부 파괴가 됐잖아요. 식기 도구들이..파괴가 된 것으로 보면 토벌한 이후에 들어와서 다 파괴하고 철수했다고 생각됩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이 감춰진 이 어오름궤의 실체가 밝혀질지 주목됩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JIBS는 어제(7일) 이 시간을 통해 4·3 당시 피난민들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동굴을 처음으로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이 곳은 7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당시 상황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요.
과연 이곳에 누가 머물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이 한둘이 아닙니다.
김동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깊은 숲 속에 있는 작은 구멍.
이 구멍을 통해 내려가면 또 다른 입구가 나타나고,
그 안쪽 넓은 공간에서 깨진 항아리들이 무더기 발견됐습니다.
곳곳에서 탄피와 탄두 뿐만 아니라, 정체 불명의 뼛조각도 눈에 띕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4·3 피난처로 추정되는 이윱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누가 피난을 와 머물렀을까?
한 주민은 4·3 당시 깊고 내부가 넓은 궤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다고 증언합니다.
그 곳의 이름은 '어오름궤'라는 곳으로, 피난민만 10명이 넘었다는 겁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궤가 깊다고 했고, 넓어. 한쪽 구석으로 가면 위에서 봐도 못 봐. (그 궤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요?)어오름궤"
이번에 발견된 현장 역시 깊이 3에서 4미터 가량되는 동굴 입구를 지나,
그 안쪽에 길이 7, 8미터 가량의 넓은 공간이 확인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증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강 할아버지의 아버지 역시 이 어오름궤 안에서 머물다,
지난 1949년 3월 4일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곡식을 가져다가 밥이라도 해 먹으려고 궤 밖으로 나와서 망을 보려고 나왔는데, 망을 보는데 총으로 쏴서 거기서 돌아가셨고, 궤 안에 있던 분들이 시신을 덮어줬다고..."
증언을 토대로 피난 동선을 재구성하면,
중산간 일명 '큰빅데기'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이 어오름궤로 피난을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봉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피난) 노선 상에서 제일 첫 번째로 맞닿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일대 화전민 사람들은, 목장 화전 사람들은 이 궤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곳이 맞는지 증언자와 현장 확인에 나섰습니다.
강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현장을 뚜렷하게 기억했습니다.
강석두(81세)/서귀포시 안덕면
"네, 여기 어오름궤가 맞습니다. 여기. 우리 아버지가 이쪽에서 (돌아가셨고요?)"
제주자치도와 4·3평화재단 역시 이 어오름궤에 대한 현장 확인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김은희 제주 4·3 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 조사2팀장
"전부 파괴가 됐잖아요. 식기 도구들이..파괴가 된 것으로 보면 토벌한 이후에 들어와서 다 파괴하고 철수했다고 생각됩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이 감춰진 이 어오름궤의 실체가 밝혀질지 주목됩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저작권자 © JIBS 제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